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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 본부 방문 취재기 ---고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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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 본부 방문 취재기 ---고종원
정명석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 본부

월명동 방문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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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仙境)을 방불케 하는 풍광

정명석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 본부

월명동 방문 취재기

나는 어제(2009.7.31) 충남 금산에 있는 월명동엘 다녀왔다.

월명동은 기독교 복음선교회 정명석목사가 자신의 고향 산간벽지를 개발하여 자연성전을 꾸며 놓은 곳이다.

정명석목사는 기독교의 이단자로 비판을 받아왔고, 내부자의 고발에 따라 재판을 받고 형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그가 감옥에 간 이후 성령운동 등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고 있다니 그 원인이 뭘까 궁금해 진다.

나는 지난 7월 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천국성령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현장답사에 나섰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단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려면

이단의 본거지를 찾아가 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반면에 실체가 왜곡되게 알려진 것이라면

그 원인을 진단해 보기 위해서라도 현장답사를 꼭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월명동을 한 나절 돌아보고 느낀 소감은

각자의 신앙에 관계없이 누구나 한 번쯤 구경삼아 가 볼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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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동 정문

이번에 내가 월명동을 방문하는 길에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천안교회 정한영 목사와 전모집사가 안내를 맡아 주었다.

일행이 천안에서 출발하여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두 시간 30분 가까이 걸렸다. 나는 월명동을 오가는 긴 시간에 복음선교회의

실상을 알아 보기 위해 정목사에게 거북한 질문도 많이 하였다. 그는 어떤 질문을 해도 안색이 변하거나 숨기려는 기색이 없이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연세가 많고 인생 경험이 많으신 어른께 많이 배워야죠."라며 내 이야기도 진지하게 잘 들어주었다.

전집사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면서도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을 이용하여 장애우를 돕는 일을 해오고 있다.

장애우 네 명의 가정을 돌며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 주기도 하며 재활을 위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녀는 "저는 겉으로 보면 사지가 멀쩡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저 또한 장애인이 이닐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장애우를 위해 정성껏 서비스를 하면 보람을 느끼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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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과 팔각정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그 앞에는 커다란 연못과 팔각정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단의 본거지(?)로 알려진 이곳에 와서 맨처음으로 본 것이 선녀와 같은 여인이다.

팔각정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둘러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듯 했고

그 앞쪽에는 젊은 여인이 서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울려 선경(仙境)으로 느껴졌다.

북한에 가면 경승지마다 인민들을 동원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연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난 팔각정의 정경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저게 혹시 동원된 배우들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웃음이 나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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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큰 팔각정

자연성전쪽을 향해 걸으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팔각정을 바라보니

연못에 투영된 그림자까지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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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쪽에서 바라본 팔각정

팔각정과 주위 풍광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 보아도 아름답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이 팔각정은 한국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였다.

팔각정 아래에는 대리석에 새겨진 12지장상 기둥이 받치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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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나무

오른쪽에 연못과 팔각정을 끼고 운동장에 올라와서 뒤를 보고 찍은 사진이다.

소나무는 금강송처럼 쭉쭉 뻗은 소나무와 뒤틀어질대로 뒤틀어진 소나무가 보기 좋은데

월명동에서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소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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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 나실희양과 정한영목사

여기서부터 나는 안내원 나실희양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경내를 돌아 보았다.

그녀는 시종 밝고 맑은 미소로 매우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이곳에는 현재 50명의 식구가 살고 있고 그 중 3명의 안내원이 있다고 했다.

이곳의 운영 비용은 전 세계 회원들이 한 달 수입, 봉급 가운데

하루 분을 보내와 그것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월명동'의 원래 이름은 '달밝골'이었다. 볼거리없는 해발 420m의 고지대로 개구리도 버리고 간다는 희망이 없는 절망의 땅이었다고 한다.

정명석목사는 이런 산골짜기의 빈농에서 태어 났고 학교도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께 기도를

통해 간구하는 생활을 하며 성경을 많이 읽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내용과 주님을 통해 계시 받은 내용을 대학가를 중심

으로 펼치는 활동을 전개 하였다. 큰 교회를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가를 돌며 하루에 6~7시간 이상 말씀을 전파하였고,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이 날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웅장한 성전을 건립해야 한다는 꿈을 품고 기도를 하니

하나님은 "달밝골에 가서 그 일을 시작하라."는 계시를 내려 주셔서 고향인 이곳으로 다시 돌아 오게 되었다.

정목사는 다시 고향에 돌아 오기는 했으나 이곳은 여전히 첩첩산골, 희망이 보이지 않는 땅이었다.

그는 몇일동안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러던 중 1984년 어느날 기도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지금 이곳은 쓸모없는 땅이지만 앞으로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갖고 이곳에 너와 나의 동산을 만들자"라는 내용이었다.

역사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월명동'이란 이름은 원래 '달밝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달밝골'이라고

불리워온 이름이 부르기가 어려워 정명석목사가 그 뜻을 살려 개명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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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규격의 축구장 만한 운동장

안내원을 따라 이곳을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아 본 내용을 그 순서대로 정리해 본다.

정명석목사가 귀향하여 기도 정성을 드리자 그동안 인연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로 몰려들었다.

정목사는 기도, 정성, 예배, 말씀 등을 수행하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육신의 건강 또한 중요시 했다. 그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최소한 배구장 정도의 작은 운동장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터를 닦기 시작했다.

그 때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입장이라 지금처럼 규모를 크게 할 생각은 아예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다.

처음 공사를 시작한 것은 1989년이고, 본격적으로 대토목공사를 벌린기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 이다.

기본 설계도 없이 조그만 배구장을 하나 만들려던 공사는 130m x 60m의 국제축구장 규모의 큰 운동장으로 커졌다.

산골짜기 13개의 논배미를 평탄작업을 통해 합치고, 자연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산자락을 잘 정리하여 친환경적으로 운동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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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조경

운동장에 진입하여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왼쪽 산에 조성된 돌조경 이다.

월명동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 마다 이곳이 돌조경으로는 세계최대라고 자랑을 한다.

이곳은 가로가 140m에 이르니 세계최대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을성 싶다.

정목사는 이곳에 300 명씩 일곱 줄로 2,10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콩크리트 계단을 만들 생각을 했단다.

웅장한 성전을 지으려면 엄청난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만들어 집회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주님이 기도가운데 커다란 돌로 조경을 하라고 하시어 계획이 바뀌었단다.

이런 거대한 돌조경은 이 일대가 석막리라는 지명처럼 커다란 돌이 많아 가능한 일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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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조경 사이 길

돌 조경을 책임지고 왔던 조경업자는 큰 돌은 세우는 게 아니라며 작업을 하던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갔다. 난감해진 정목사가 땅에 엎드려 3일동안 기도하니 "그럼 네가하거라."라는

음성이 들리더란다. 그 때부터 정목사는 젊은 신도들과 함께 직접 이 대공사를 했는데

중심부분이 네 번이나 무너져 내렸다. 정목사는 너무나 지쳐 포기하고 싶었다.

그가 엎드려 통곡을 하며 기도하니 "돌은 무너졌어도 너는 무너지면 절대로 안된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 다시 용기를 내어 공사를 시작하여 끝내 성공을 거두었다.

네 번 모두 밤중에 무너졌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바로 이것이 주님의 보호하심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자랑한다.

돌조경 사이에는 가로지르는 사이 길이 있다. 이 길은 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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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성전

월명동에는 사람이 지은 큰 건물성전이 없다. 대신 아주 커다랗고 아름다운 자연성전이 있다.

이곳은 형편없는 갈대밭과 가시덤불로 이루어진 골짜기를 개간 정비하여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최대 20,000명까지 들어가 집회를 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구두를 신은채 잔디밭에 들어갔는데 안내원이 질색을 하며

"이곳은 성전이니 신을 벋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해 얼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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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성전 앞 무대

자연성전 앞에는 대형 야외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저녁에 전국에서 모여온 예술단 공연이 열린다고 했다.

이곳에서 문화 예술행사를 중시하는 것은 선교의 대상을 젊은 대학생,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이란다.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지역별로 예술단을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도시 교회는 거의 예술단이 있다.

정명석목사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예술이다."라고 한단다. 문화선교의 중요성을 설파한 명언이다.

정목사는 1983년, 강원도 용평에 가서 큰 감동을 받았다.

아무런 쓸모없는 땅도 개발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돌아올 때 돈이 없어 비싼 건 사지 못하고 마이크를 하나 사왔다. 그로부터 토요공개방송이 시각되었다.

1989년에는 트롬펫을 갖고 있는 회원이 건의하여 관현악단을 조직 하게 되었다.

관현악단을 처음시작할 때는 멤버들이 다 완전 아마추어들이었고 소속교회와 직장도 다 달라서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출발한 관현악단이 지금은 완전 프로가 되었고, 전국의 각 지역과 큰교회에서는 모두 그를 모델로 예술단을 조직하였다.

이 예술단들은 예배를 신선하게 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단다. 베토벤바이러스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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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바위

자연성전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낙타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가 있는 일대는 경사진 산비탈 밭이었다.

군데 군데 농부들이 이 돌을 캐내려 쪼은 흔적이 보인다. 월명산의 돌들은 하나하나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낙타 바위'도 정명석목사가 기도 중 계시를 받고 5년동안 하나도 상하지 않게 흙을 털어냈는데,

나중에 보니 낙타 3마리가 서로 방향을 달리하여 자연스럽게 서 있는 형상이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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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바위로 오르는 길

자연성전은 안에 깊숙히 들어가보면 양쪽으로 산을 정비하여 만든 넓은 공간이 있다.

잔디성전과 그 주위의 나무그늘 아래에는 이곳 저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홀로 조용히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이 몹시 평화롭게 느껴졌다.

월명동 전역에서는 뛰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전반적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경건한 분위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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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성전에서 바라 본 운동장

이곳에는 정명석 목사를 따르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니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누구나 올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회원이 아닌 일반 관광객을 여러 명 만나 보았다.

자연성전이 있는 산 너머에는 이곳에서 운영하는 승마장이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월명동 입구에는 정문이 있는데 여기서는 입장하는 사람 수 대로 1,000원씩 돈을 받는다.

정목사에게 물어보니 이건 입장료나 주차료가 아니라 환경보호를 위한 관리비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작은 휴지 하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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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 샘물

월명동의 또 하나 자랑거리는 '약수 샘물'이다. 자연성전 아래 오른쪽에 있는 이 샘물은 약효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있다.

암병환자가 이 물을 먹고 나은 사람도 많단다. 이곳에서 만난 김대덕 목사는 탈모증이 심하여 고민을 많이 했는데

"선생님이 이 물을 먹고, 이 물로 매일 머리를 적시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이렇게 머리가 새카맣게

많이 났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여 보여 주었다. 내가 직접 물을 마셔보니 물이

무척 부드럽고 고로쇠 물'처럼 약간 달작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무기미네랄이 몸에 들어가면 몸에 흡수가 되지 않고, 그게 굳으면

담석이나 요석이 된다는 과학적인 상식을 갖고 있는 나도 이 물이 맛있어 몇 컵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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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 옛집터

월명동은 운동장 주변과 모든 시설 주변에 큰 돌을 쌓아 조형미를 돋구고 있다.

정목사는 사람은 변해도 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돌을 무척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위 사진은 정명석 목사 생가터인데 이 주위에는 정목사의 생가를 비롯하여 초가집이 서너 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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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형 돌

정목사의 생가터 오른쪽에는 커다란 화강암 위에 '초가집 모양의 돌'이 하나 올려져 있다.

정목사는 자기의 생가는 이미 헐리고 없지만 마치 이 돌이 자기의 옛집과 똑 같이 생겼다하여 무척 좋아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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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상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명석씨에 대해 선생님, 정목사님, 정총재님, 총회장목사님 등 여러 가지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결같은 것은 "정목사가 나무 한그루를 심고, 돌 하나를 쌓는데도 다 예수님께 보고하여 허락을 받고,

기도를 통해 계시를 받아 행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예수님과 심정적으로 일체를 이루면

예수님의 뜻이 곧 내뜻이 될터이니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게 아닌가!"라고 물어 보았다.

암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과 정목사를 동일시하진 않지만 그에 대한 존경과 믿음은 대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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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집

예수님 상이 서 있는 데서 오른쪽으로 좀 떨어져 청기와집 한 채가 있다. 정목사의 아버지는 몇 년전에 돌아가시고

이 집에는 91세 되신 어머니가 살고 있다고 하였다. 실례를 무릅쓰고 한 번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와병 중이라고 하여 그만 두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영어살이를 하고 있는 줄 모르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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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에서 바라 본 어머니집

정목사의 어머니가 사신다는 집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외돌아 올라가 보았다.

그 앞에 서 있는 소나무가 마치 허리 구부러진 어머니가 지팡이를 집고 서서 아들을 기다리는듯 보였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돌 조경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안내원이 작업 중인 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 분이 정총재님의 둘째 동생 정범석선생이라고 귀뜸해 준다." 그는 이어서 "가족들이

저렇게 우리들과 똑 같이 먹고 함께 땀흘려 일을 하니 다들 존경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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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를 새겨 놓은 돌

청기와집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니 돌에다 정명석목사를 그럴듯하게 새겨 놓은 것이 보였다.

그 앞에는 또 외국 돌 처럼 보이는 괴석이 두 점 있었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이곳에는 총재님을 통해 은혜를 받은

분들이 기증한 돌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돌들을 값으로 계산하면 얼마 정도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만약 이 돌들을 다 제값을 주고 사오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 엄두도 못낼 겁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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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미술관 입구

한 바퀴 돌다보니 '구상미술관'이란 안내석이 있어 놀랐다.

정명석 원장이 문화 예술을 무척 사랑하는 가 보다싶어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정명석선생 기획전"이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정목사는 평소 "예수가 살아야 예술이 산다."고 했단다.

미술관에 들어가 보니 한 벽면에는 정목사의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사진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정목사가 그린 그림과 서예작품, 그의 글씨를 넣어 구운 도자기, 수석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정목사의 서화, 도자기 등 작품이 지닌 예술성은 보편적 가치기준으로 볼 때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이곳 회원들이 각지역에서 사회봉사활동을 많이 하여 충남도지사, 대전광역시장, 인천광역시장 등

지자체장과 사회단체장들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것도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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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미술관.

영상관에 들어가니 월명동의 개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영상물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영상물을 지켜 보면서 정목사가 젊은이들과 함께 완전 노동자가 되어 피땀을 흘리며 일하는 광경을 보았다.

이곳 회원들은 정목사가 종교지도자이면서도 일을 시켜 놓고 구경하며 감독,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증거 했다. 나는 영상물의 말미에 정목사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내가 학창시절 농촌계몽운동 대원들이 즐겨 부르던 '애향가'의 타이틀을 "밝게 비추자"로 바꾸고

곡은 그대로 활용하고 가사만 좀 개작하여 불렀기 때문이다. 애향가와 바뀐노래를 비교해 보자.

애향가

조상들이 터를 닦은 이좋은 산수 개척하자 한데 뭉쳐 지와 성으로

새역사의 깃발도 우릴 부른다 이 생명에 불을 달려 밝게 타보자

아름다운 산과 바다야 정든고향아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세의 낙토

.................................................

밝게 비추자

하나님이 자리잡은 이 좋은 성지 개척하자 한데 뭉쳐 지와 성으로

새역사의 사명자 우리들일세 이 심정에 불을 붙여 밝게 비추자

아름다운 산과 계곡아 정든고향아 하나님이 자리잡은 만세의 터전

조상들이 터를잡은 이좋은 산수 개척하자 한데 모여 피와 땀으로

새역사의 주인은 우리들이다 이진리의 증인되어 모두 전하자

뜻이어린 섭리사여 정든고향은 하나님이 자리잡은 영원한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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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바위

월명동에는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많다. 이 돌은 썩은 나무처럼 보이는 돌이다.

사람들이 별폼없는 돌이라며 버리자고 했는데 정목사가 정성스럽게 흙을 다 털어내고 나니 호랑이 같은

형상이 들어 나서 귀하게 보관하게 되었단다. 앞쪽에서 보면 범이 포효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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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톤짜리 돌, 큰 바위얼굴

정목사가 어렸을 때 동네 어른 한 분이 밭농사를 하면서 이 커다란 돌 때문에 지장이 많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소년 정명석이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옮겨드릴께요."라고 하니 그 농부가 기가막혀 "네가 이 큰 돌을

어떻게 옮긴다는 말이냐"하고 코방귀를 뀌었다 한다. 그로부토 몇 십년 세월이 지나 정목사는 그 돌을 이곳으로

옮겨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다. 여하튼 정목사의 집념은 대단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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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돌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

자연성전 입구에는 커다란 돌과 그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소나무가 돌위에서

어디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삶을 지탱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정목사는 이곳에서 생명의 가치에 대해 말씀을 했단다.

정목사는 이토록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삶의 교훈이 되는

말씀을 했는데 회원들은 그를 묶어 '잠언서'라 부른다. 잠언서는 현재 7권까지 발행 되었다고 한다.

책 한 권당 1,000개의 잠언이 실렸다고 하며 앞으로 5권 분량의 원고를 탈고 출판 예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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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 산정의 팔각정

나는 해방 600고지의 감람산에 오르면 가까이 있는 대둔산은 물론, 멀리 계룡산, 서대산, 칠갑산, 덕유산 등 명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안내를 부탁했다. 찌는듯한 삼복더위였으나 이곳에서 시무하는 김대덕목사의

안내를 받아 등반을 하였다. 이곳을 오르는 데는 자연성지로부터 30분 정도 걸렸다.

감람산은 정목사가 이곳에서 기도 정성을 드리며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코스는

길이 가파라서 로프를 잡고 올라 갔다. 정상에 거의 다 올라갔는데 부인 두 사람이 어린이 대여섯 명과 함께 땀을

흘리며 가파른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보니 제주도에서 왔다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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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서 이뤄진 4개국 국제 모임

감람산 산정을 오르다 보니 그곳 정상의 팔각정에도 신선들이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는듯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외국인들이서 더욱 놀랐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 보고난 후 인사를 청했다. 남자는 독일사람 헨드릭(Hendrik Neuhaus)으로 City Music Trang Co. 매니져였으며

14년 전에 독일 뮌헨에서 한국복음선교회 멤버가 됐다고 했다. 여자 두 사람 중 하나는 영국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 동경에서 왔다고 했다. 위의 사진은 일본 여인이 찍어준 것이다.

처음에 영어로 인사를 걸었더니 헨드릭이 빙그레 웃으며 "한국말로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복음선교회와 인연이 된 후 대학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성령의 역사가 뜨거운 한국에 관심이 많아

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이번에 독일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이참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됐는데

당신도 한국 여자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실력발휘를 하며 살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자기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하나님 뜻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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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가 기도했다는 토굴

감람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는 김대덕 목사에게 정명석씨가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기도 했다는 토굴을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목사는 "저는 기쁜 맘으로 안내해 드릴 수 있지만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닙니까?"라며 흔쾌히 앞장 섰다.

감람산에는 다리굴, 천덕굴, 양합판굴 등 정목사가 기도했다는 토굴이 3개가 있다는데 나는 그 중에 다리굴을 가보았다.

이곳은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판 굴이라고 했다. 나는 한 번 들어 가 보고 싶었는데

김목사가 위험하다고 만류를 하는 바람에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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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에서 바라 본 월명동 전경

감람산에서 바라 본 주위 경관은 사방이 온통 산이었고 7월의 마지막날 푸른 녹음으로 온통 푸른 빛이었다.

그 가운데 가운데 한 점 희게 보이는 보이는 부분이 '월명동'이고 그 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충남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이다.

나는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김대덕 목사에게 보통 묻기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하였다.

특히 인터넷 상에 떠도는 이야기와 영상물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물어 보았다.

다음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나는 대학에 다니다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아 따라 와서 15년간 그 분을 모시고 신앙지도를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생님이 그토록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인 사람이라면 내가 옛날에 그분과 결별을 했을 겁니다.

회원가운데도 별사람이 다 있습이다. 좋은 사람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사람 사는 사회가 다 마찮가지 아닙니까?

젊고 인생경험이 적어 순수한 구도자의 자세를 이탈해서 이 안에서도 헤게모니를 쥐려는 사람도 있고요,

사랑을 쟁취하려고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여럿이 있었습니다. 그런 무리들이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 지지 않게 되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이 어려움을 겪으시는 것은 모든 짐을 홀로 지고 가시겠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치받기도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분입니다.

선생님은 너무 순수한 분 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하나님과 주님 외에 세상을 잘 모르시는 분 입니다.

그분은 염치 체면 가리지 않고 어린이가 됐던, 청년들이 됐던, 장년이 됐던, 노인이 됐던 누구를 만나던지 그들과 함께

어울려 인간적으로 아주 소탈하게 지내십니다.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때로는 품위가 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누구와 신앙상담, 인생상담을 해도 그 내용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옮기는 일이 없는 분 입니다.

선생님은 직접 하시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선생님이 하루에 3시간 이상 주무시는 것을 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분이 여자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나돌아 다니는 동영상은 무더운 중국 남방에서 찍힌 것입니다.

중국의 남방은 기온이 너무 덥기 때문에 주민들이 모두 옷을 그렇게 가볍게 입고 삽니다. 선생님은 반대 역사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온갖 협박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 정황 속에서 선생님을 해코지하려는 자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친 상황이라 선생님도

무척 놀랐던 것입니다. 그 장면을 카메라에 잡은 것이지 사람들이 오해할만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되어 오셨지만 중국 공안에서도 아무런 물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국에 와서도 재판을 받고 형을 살고 계시지만 재판부에서도 아무런 물증이 찾을 수 없어 정황판단에 의해 언도를 했습니다.

솔직이 말하여 재판관들이 판단하기에 애매모호한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이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님을 믿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여러차례에 걸쳐 그토록 나쁜 죄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벌써 다 망하고 지리멸렬 흩어졌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수난을 당하자 여러 명이 이곳을 떠난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그 분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분을 사랑해 주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반대파들이 잘못을 회개하기를 위해 기도 합니다. 선생님을 잘 모시지 못한 것을 뜨겁게 회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영어의 몸이 되셨으면서도 그 안에서 몸소 전 세계에서 진행중인 섭리를 진두지휘 하고 계십니다.

매주 주일날과 수요예배의 설교 내용까지 다 작성하여 보내 주십니다."

☆ ☆ ☆ ☆ ☆ ☆ ☆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각기 나름대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정리하였을 뿐 속으로 생각하는 주관적 견해는

그들의 주장을 다 동의하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를 연구하는 학자나 신학도에겐 있는 실상을

가감없이 그대로 정리해 놓은 이 글이 중요한 연구 재료가 될 줄 믿는다.

아무튼 월명동은 설혹 종교적 성지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관광지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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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윤덕명님의 댓글

그곳이 월명동이라면 청평은 일명동인가 하오이다^^.
존형님의 말씀처럼 서구는 양력이니 태양이고 동양은
음력이니 달인가 봅니다. 그런데 천지인참부모님께서는
달과 해를 아우르시니 인류의 참부모이신가 하오이다.

언제나 해박한 지식과 유머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 교수님의 취재기에는 풍부한 해학과 감동적인 성과가
있었을 것으로 사료되기도 하오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종우님의 댓글

주변에 특별한 분들이 계신 덕분에 현장에서 특별한 체험과 감동을 함께 할수 있습니다.
홈의 위력이기도 하지만 타종교 탐방기를 만드신 분이나 옮겨오신 분의 노고도 크셨습니다.
감사한 맘으로 방문기를 읽었습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정명석목사라면 항간에 소문께나 날렸든 JMS이야기 같은데......
그 나쁘게 생각 할 것이 못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나도 몇번쯤은 나쁘게 말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니 청평은 서구적 냄새가 나는데
그기는 우리와 친근 한 동양적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정감이가는 그런 풍경입니다.
구경삼아 한번정도 가볼만 한 곳 같기도하구요.

조항삼님의 댓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입니다.
각양각색의 인간의 마음을 얻는 것은 -
순간순간 바람같이 바뀌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문정현님의 댓글

아!~ 월명동!~
처음 접하는 기행스케치 고맙습니다.

자연성지에 갈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애향심과 신앙심.....
자연과 더불어 이웃에 복음을 쌓아온 행적의
일부분을 만난 기분입니다.

아들이 영어살이를 하는지도 모르는
어머님의 근황에 가슴이 아프네요!~

정해관님의 댓글

존경하는 고종원 박사님을 이곳으로 모셔오고자 관련 블로그를 뒤지다가 흥미있는? 기사가 보여 옮겨 보았습니다. 다른 뜻이 있지 아니하고 호기심 차원의 정보이오니 대충 넘어 가시면 좋겠습니다. 본인의 허락도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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