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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풀을 먹는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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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호 / 종교신문 논설위원


우리 인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평화를 원한다. 이상적 평화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간단히 말하면 질서 속에 공존하는 세계라 하겠다.

우주의 운행질서를 예로 들어보자.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달이 종적 질서를 이루고 있고, 역시 태양을 중심한 수성 화성 금성 지구 달 목성 토성 천왕성 명왕성 해왕성 등이 횡적 질서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종­횡의 질서를 지키며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힘이 강하고 약한 것도 아니다. 우주의 천리법도에 따라 운행하고 있다.

우주의 질서가 이러 하거늘, 우주 안에 사는 인간도 이러한 천리 이치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평화의 세계도 질서 속에 공존하는 세계라 하겠다. 이 공존과 질서의 틀이 깨어질 때 평화의 세계도 깨어지고 만다.

그런데 실제 인간세계는 어떠한가. 자고 나면 보고 듣는 것이 불화와 불평등, 전쟁, 불안의 연속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쳐서 집어삼키려 하는 냉혹하고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 그대로이다. 이는 개인으로부터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다.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이 세계가 완성된 인간이 사는 세계가 아님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에게 역사과정을 거쳐 부단히 깨침과 변화를 요구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 보다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라는 개체 속에 들어 있는 악의 요소를 제거해 버리고 오로지 선화(善化) 시키는 일이다. 자신 속에 내재한 사자, 독사 같은 악성(惡性)을 송아지, 양, 염소 같은 선한 심성으로 변화 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 말은 곧 가진 자와 있는 자 즉,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권력과 경제적 부를 취한 자 들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알아야 한다. 부정 부패로 썩은 윗물이 먼저 맑아야 하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평화의 이상은 어떠할 때 오는 것일까. 또 어떤 변화여야 할까. 성경 구약 이사야서(11장∼9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이나 상함도 없을 것이니…”

여기서 ‘이리와 어린양이 동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는 강한자가 약한자를, 악이 선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또 ‘송아지, 어린 사자, 살찐 짐승이 함께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라고 한 것은 강한자의 변화된 모습에서 평화와 화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 말로 이사야가 본 이상적 평화의 세계라 하겠다. 이처럼 이상적 평화의 세계는 가장 힘이 세고 무서운 사자가 풀을 먹는 변화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까지 고기 먹던 사자가 과연 풀을 먹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 최대의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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