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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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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숙 / 430축복가정, 1999년도 해동문학 수필작가로 등단

우리 말(語)은 뜻과 표현이 너무나 다양하고도 적절하여 재미있다.

바람. 공기의 유동이란 일차적인 뜻 말고도 ‘바람을 피우다’ 또는 ‘바람이 나다’하여 한 이성(異性)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이성에게 정신이 팔려 일시적으로 이성(理性)을 잃는 모습을 말한다. 그럴 경우 개인도 가정도 위기에 처한다. 선배나 경험자들이 ‘바람은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라고 하는 말인 즉, 바람은 스치고 지나가면 다시 올 리 없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 고비를 넘기라는 뜻이다.

‘신바람이 나다’ 신나는 일이 있거나 마음이 들떠 흥겨워지면 온 몸으로 들썩거려지는 어깨 바람으로 보는 이가 눈꼴이 시더라도 바람처럼 잠시겠거니 싶어 좋게 넘기기도 한다.
‘바람을 맞다’ 즉 중풍이나 풍병(風病)에 걸렸을 때 일컫는다. 미풍을 동반한 정월 바람은 새로운 시작의 신호도 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독이 되어 전신이나 부분 마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아이 셋을 정월에 낳은 탓에 정월은 몹시 고달픈 달이다. 특히 올해는 회갑의 해요, 막내딸이 졸업과 동시에 출가를 한 해다. 이런 저런 일로 바람이 싫어도 실눈을 뜨고 계속 돌아다녔더니 초저녁부터 오한이 나는데 이건 몸살정도가 아니라 얼음 속에 들어간 것처럼 춥고 죽을 것처럼 오른쪽 머리가 아팠다. 큰 타월을 푹푹 삶아서 비닐 봉지에 넣어 찜질을 해도 아픔이 수그러지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샌 후 한의원으로 달려갔다.

이것저것 얼굴운동을 시켜보더니 “아주머니, 구안와사증이네요” 아주 예사롭게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판사의 무서운 선고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다. 서둘러 거울을 보니 무서운 태풍이 지나간 뒤의 폐허처럼 밤새 아픔이 낳아준 일그러진 내 모습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없애고 싶었던 그 많던 주름이 다림질한 것처럼 쫘악 펴져서 턱 밑에 늘어져 있고, 반쯤 내려앉은 눈동자도 맛이 간 동태눈처럼 희멀건 한 데다가 움직이지도 깜빡이지도 못한 것을 보니 불구자가 따로 없구나 싶었다.

앞장서서 가는 며느리를 따라 가는 내 모습도 볼 만하다. 누웠던 그대로에다 안대에 마스크까지 하고 머리 전체를 겨울 목도리로 미라처럼 칭칭 동여매고서는 겨우 눈 한 쪽만을 빼꼼이 내어놓고 다녀도 부끄럽지도 않고 오히려 바람이 스밀 틈이 없으니까 안방처럼 아늑해 창호지 문구멍으로 추운 바깥을 구경하는 것 마냥 좋았다.

어느 누가 바람이란 이름을 맨 처음 붙였을까. 말 그대로 바람이 화근이 되어 생기고 좀 나아졌다 싶다가도 바람을 쐬면 악화가 된다. 아마 이병에 걸려 본 사람이 붙인 듯 싶다.
집에 와 천천히 거울을 보면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입운동을 하다 보면 돌처럼 굳어버린 오른쪽 얼굴도 밉지만 더 미운 쪽은 왼쪽이다. 입만 벌리면 휙휙 당기는 것처럼 끌고 올라간다.
“뭐가 좋다고 생 오도방정을 떨고 자빠졌네” 밉살스러워서 욕이 나오고 운동이고 뭐고 숫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만다. 내 짐작이지만 양쪽에 마주 당겨주는 신경 한 쪽이 역할을 못하니까 균형을 못 잡아 왼쪽은 왼쪽 데로 오그라드는 것을 전들 어쩌겠나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대체 이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며 무슨 활동을 하겠는가! 잠은 오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져 얼른 일어났다. 눈, 코, 입이 제대로 움직여 줄 때는 한 번도 고마운 줄 모르다가 잘못되어서야 울고불고 한다는 것은 뭔가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을 바꿀 요량으로 회갑 때 찍은 사진첩을 들고 마루로 나와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내가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웠는지 저절로 마음이 밝아지더니 황홀해졌다. 60년을 이렇게 미인으로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 성품과 개성을 닮아난 얼굴을 그것도 불평 없이 움직여 주었는데도 부끄럽게 여기고 열등감마저 느꼈다는 것이 계면쩍고 어쩌면 벌받는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했다.
와사증이나 어떠한 병도 누구에게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건강을 조종하는 중추신경이 여러 가지 적신호를 알려주었어도 알아채지 못하고 억지로 돌아다니자 더 큰 해를 당하기 전에 안면 한 쪽을 마비시켜야겠다고 하자 안면 말초신경이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주느라 그 날 밤의 죽는 것 같은 고통과 오한을 주었는데도 의사를 찾지는 않고 찜질이나 하고 잠으로 아픔을 잊겠다고 끙끙거리며 미련을 떨었으니 삐뚤어진들 어느 기능을 원망할 것이며 누굴 탓할 것인가!

신경도 한 번 틀어지면 사람의 마음처럼 갖은 공을 들여도 쉽게 풀리지 않는가 보다. 어떤 중풍 환자들은 아예 마네킹처럼 꼼짝도 못하기도 하고, 말이 나오지 않아 우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하면서도 몇 달 동안 조금도 차도가 없는 환자도 있다. 나는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적은 경험으로 전신마비는 미리 예방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한 느낌도 들었다.
곧 봄바람이 지나고 나면 무서운 바람이 아닌 싱그럽게 느껴지는 바람을 쐬며 손녀랑 옥상 위 텃밭에 호박씨랑 덩굴콩을 심어 부서지는 은빛 물방울로 새 생명을 키우며 웃는 모습이 반듯해진 미인이 되겠지 싶은 소망이 꽃망울처럼 커가느라 몹시 설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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