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주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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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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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메시아의 탄생일
예수의 탄생일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어느 문헌에도 없다. 4복음서에서조차 탄생한 달과 날에 대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을 갖지 못했다.
예수 탄생일에 관해선 3세기 초부터 여러 견해가 있었다. 230년경 히폴리투스 교부는 1월 2일을 지지했고,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라멘스는 5월 20일을, 그밖에 4월 18일 또는 19일, 3월 28일 등 여러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모두가 근거가 없는 견해들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자료들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 못되어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뚜렷한 탄생일 기념은 태양 탄생 축제일로 기리는 12월 25일과 예수의 육신과 영적(세례) 생일을 결합해 기념일로 기리는 주현절(主顯節, 또는 ‘주의 공현대축일’)인 1월 6일이다. 예수 탄생일은 이 두 가지 설로 압축된다.
12월 25일은 예수 탄생일이 아니다
첫째, 12월 25일 설. 로마력서(歷書)에 따르면 336년경 이날을 성탄축일로 인정한 최초의 기록이 나온다. 12월 25일은 로마인들의 이교(비 그리스도교)적 축제일이었다. 농신제(12월 17일~24일)가 끝난 바로 다음날이 줄리안 달력으로 12월 25일, 지금의 양력 12월 22일에 해당하는 동지이다. 밤이 길고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그러나 이날 밤 0시를 기점으로 태양이 다시 솟아난다.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다. 그래서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e Solis Invicti)’이라고 불리 운 로마의 이교도 축제일을 예수 탄생일로 함께 기념해온 것이다.
이 농신제와 태양 탄생일 축제는 민간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영향으로 제거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었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 혁명조차도 그 절기를 어쩌지 못했다.
274년 로마황제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는 태양을 최고의 신으로 공경하고 태양신전까지 건립했으니 이는 당시 태양신 숭배세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354년경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태양신에 그리스도를 대치시켜 12월 25일을 성탄으로 판정, 그해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고 5세기 초에는 이날을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날로 정식 선포한 것이다.
동지(冬至)의 근거는 역(易)에서 ‘동지에 일양(一陽)이 시생(始生)이라’고 한 것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이날 붉은 팥죽을 끓여 먹고 사방에 뿌려 액(厄)을 제거하는 우리의 전통명절과 같다고 본다.
반면에 근동과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기독교인들은 서방의 기독교인들을 향해 이교의 축제를 기독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상숭배와 태양숭배를 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군다나 십계명에 있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계명을 스스로 어기는 꼴이 된다. 이처럼 동지 행사는 예수의 탄생일과 무관한 것이 확실하다.
1월 6일을 참부모님 탄신일로 예시
둘째, 1월 6일 설. 동방교회에서는 이 날을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생일뿐만 아니라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나타난 날(영적 생일)로 기리는 축일로서 4세기 초엽에 널리 일반화되었다. 이 주현절은 이미 2세기 바실리우스파 영지주의자(靈智主義者)들에 의해 기념되었고, 4세기 초에는 가톨릭 교인들에 의해 성수되었다. 예루살렘교회는 4세기 중엽에 이날을 축하했는데 6세기까지 행해졌다.
영지주의는 그리스 로마에서 두드러졌던 철학적 종교적 운동이다. 영지주의란 명칭은 그리스어 ‘그노스티코스(Gnosticos)’ 즉, 신적 계시에 의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초대 기독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을 가리켜 기독교 최초의 신학자들이라는 관점도 있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1월 6일 탄생 설은 성경적 역사적 근거에서라기보다 영적신비에 의한 계시적 관점이라고 본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4세기) 또는 투린의 막시무스(5세기)의 것이라고 짐작되는 두개의 라틴어 설교들에서 “동정녀로서든 세례로서든 간에 1월 6일이 그가 태어난 날”이라는 문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편, 동방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세례자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 등을 공동으로 기념하기 위한 특별예배의식을 채택, 주현절인 1월 6일에 거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12월 25일의 성탄축일 행사가 서방교회에서 동방교회로 퍼져 나가자 안디옥 교회에서는 386년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대하는 이단에 맞서 이 날에 지켜졌고, 콘스탄티노플이나 소아시아로 전해져 5세기 말에는 대부분이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기념하게 된 것이다. 단, 아르메니아교회는 지금까지도 1월 6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1월 6일일까. 신기하게도 참부모님 양위분의 탄생일이 1월 6일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 2세기나 지나 영지주의자들이 받은 예수의 탄생일이 예수 이후 장차 오실 재림메시아의 탄생일을 계시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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