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도순
글마당
[초대글] 분류

古典漢詩11. 野步(야보) ...李仁老

컨텐츠 정보

  • 0댓글

본문

                 古典漢詩11. 野步(야보) ...李仁老

<들판을 거닐며>

十里煙村際碧蕪(십리연촌제벽무) 십 리 연기 낀 마을은 푸른 들에 닿았는데

獨遊仍佩紫微壺(독유잉패자미호) 혼자 노닐다 이내 자미의 술병 차나니

雲拖雨脚斜陽外(운타우각사양외) 구름은 사양 밖으로 비를 끄어

掩却前山半有無(엄각전산반유무) 앞 산을 반쯤이나 가리워 놓는다

 

郭外人家路盡蕪(곽외인가로진무) 성 밖의 인가 거리에 모두 풀이 났는데

隔林啼鳥勸提壺(격림제조권제호) 숲 너머 우는 새는 술병 들어 권하는구나

未成數句前山暮(미성수구전산모) 몇 귀의 시를 이루기 전에 앞산은 저무는가

老覺詩情澁欲無(로각시정삽욕무) 늙어서 詩情이 무디어 없어지려 하네

 

1. 작자 소개

이인로(李仁老)의 호()는 미수(眉叟)이고 고려 중기에 활동한 시인(詩人)이며 정치가이다.

정중부의 난에 삭발하고 중이 되어 피신하였다가 난이 평정된 뒤 귀속(歸俗)하였고, 명종(明宗) 10년에 괴과(魁科)에 뽑히어 벼슬하였다. 신종조(神宗朝)에는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에 이르고 고종(高宗) 때에는 비서감간의대부(秘書監諫議大夫)가 되었다.

해좌칠현(海左七賢)의 가장 대표적 인물이며, 한림별곡(翰林別曲)인로시(仁老詩)’라고 일컬어질 만큼 시()로 일세를 풍미하였다고 한다.

 

이인로는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성품이 편벽하여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서 크게 쓰이지는 못하였다.

 

문집으로는 은대집(銀臺集)20, 후집 4, 쌍명재집3, 파한집(破閑集)3권이 전하나, 현재까지 문집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2. 작품해제(作品解題)

 

이인로는 능력에 비해서 높게 쓰이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현실 비판적이면서도 죽림고회(竹林高會)의 대표답게 이상향을 추구하면서 소극적인 은둔사상을 겸한 낭만주의적인 성향을 많이 보여준다.

 

()라고 하는 것은 고전적인 표현의 전례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작품을 지을 때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특히 용사(用事)를 많이 사용했다.

 

위의 시()는 저물녘에 들판을 거닐면서 지은 작품이다. 저녁연기가 날 때까지 들판에서 거닐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작자의 생활이 그림을 그리듯이 잘 묘사되는 데서 시상이 시작된다. 그러면서도 구름이 앞산을 가리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 시인의 마음이다.

 

구름에 가리운 세상은 아직 혼란스럽기만 한데,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 구절에서 역력히 나타난다. 성 밖의 거리에 모두 풀이 났을 정도로 어지러운 세상인데 이제는 늙어서 시도 잘 짓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년의 작가가 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紫微(자미)의 술병 : 당 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를 두자미(杜紫微)라 하는데,

그의 시에 술병을 가지고 논다[携壺]는 말이 있다.

해좌칠현(海左七賢) : 고려 후기, 청담풍(淸談風)의 일곱 선비. 곧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임춘(林椿),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李湛之)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서로 의를 맺고 망년지우(忘年之友)로서 시와 술을 즐겼다 한다.

죽림고회(竹林高會) : 명종 때 문인들의 모임인 죽림고회에는 이인로, 조통(趙通), 임춘, 오세재,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李湛之) 7명이 참여하였다. 당시 이들은 망년우가 되어 꽃피는 아침이나 달 밝은 저녁이면 항상 같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즐겼다고 한다. 죽림고회는 중국 위(()의 정권교체기에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은거하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완적(阮籍), 혜강(),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영(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 등 죽림칠현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죽림고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죽림칠현과 같이 자의로 관직을 멀리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관직에 나아가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죽림칠현과는 달랐다. 죽림고회가 결성되었을 때 이인로와 조통은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간 상태였지만, 임춘은 급제를 못하였고, 오세재는 급제는 했지만 관직에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들은 스스로 남보다 문재가 뛰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쓰이지 못한 울분을 이렇게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보내면서 출세할 꿈을 버리지 못했다. 이중 이인로와 조통은 어느 정도의 꿈을 이루었지만 임춘과 오세재는 요절하는 비운을 맞았다.

관련자료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