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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성 회장의 사모님 이길순여사의 고향 함안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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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의 유물·유적·관광

군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2, 사적 3, 천연기념물 3, 중요민속자료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5, 무형문화재 1, 기념물 4, 민속자료 1), 문화재자료 11점이 있다. 옛 아라가야의 도읍지로 알려진 함안 땅에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꽃피었음을 보여주는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이 군내 전역에 산재해 있다. 함안면·칠원면·군북면 등지에 고인돌군이 있으며, 가야시대의 유적으로는 가야읍의 함안 도항리고분군(사적 제84호)·함안 말산리고분군(사적 제85호) 등이 있다. 성곽으로는 아라가야의 옛 궁터로 추정되는 가야읍 광정리와 함안면 괴산리에 걸쳐 있는 함안성산산성(咸安城山山城 : 사적 제67호), 함안면에 동지산성(冬只山城)·함안읍성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군북면 하림리의 방어산마애불(防禦山磨崖佛 : 보물 제159호)을 비롯하여 함안면의 함안 대산리석불(보물 제71호), 군북면 사촌리의 원효암칠성각(元曉庵七星閣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칠북면 영동리 장춘사의 장춘사석조여래좌상(長春寺石造如來坐像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호)·장춘사5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8호)·장춘사대웅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호) 등이 있다. 이곳에는 많은 전적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칠서면 무릉리의 무릉잡고책판 및 수구집구봉집책판(武陵雜稿冊板─守口集龜峰集冊板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대산면 장암리의 간송문집책판 및 금라전언록책판(澗松文集冊板─金羅傳言錄冊板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0호), 산인면 모곡리의 백운래홍첩(白雲來鴻帖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등이 대표적이다. 유교문화재로는 칠서면 계내리에 우리나라 서원의 창설자인 주세붕의 묘역(경상남도 기념물 제33호)이 있고, 무릉리의 무산사(武山祠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3호)에는 주세붕영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2호)이 보존되어 있다. 그밖에 함안면 봉성리의 함안향교(咸安鄕校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1호), 칠원면 용정리의 덕연서원(德淵書院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 등이 있다. 건축물로는 칠원면의 함안무기리연당(咸安舞沂里蓮塘 : 중요민속자료 제208호)·함안무기리주씨고가(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0호), 군북면 원북리의 어계생가(漁溪生家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칠원면 용산리에 함안층의 새발자국화석(천연기념물 제222호), 칠북면 영동리에 함안칠북면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9호), 법수면 대송리에 함안법수면의 늪지식물(천연기념물 제346호) 등이 있다.

아라가야의 도읍지로 일찍이 문화가 발달하여 각종 고분을 비롯한 역사적인 유물·유적 등이 산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낙동강과 남강을 끼고 아담한 산들이 솟아 있어서 잔잔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대표적인 관광지는 대산면 서촌리의 악양루와 백사장, 군북면 월촌리 남강변에 자리한 와룡정(臥龍亭), 칠서면 용성리의 경양대(景釀臺), 가야읍 말산리의 아라공원 등이 있고 군내의 많은 저수지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함안차사(咸安差使)

확실한 연대와 인물은 알 수 없으나 고려말기의 일인 듯 짐작된다. 그 당시 한 사람이 대벽죄(大璧罪)를 지었는데 조정에서 안핵사까지 내려보내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 죄인에게는 노아(蘆兒)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천하 절색일 뿐만 아니라 가무(歌舞)며 학문에 능하고 구변이 청산유수이어서 한번 본 남자는 그녀의 치마폭에 놀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노아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의 생명을 구하고자 생각하던 중 스스로 기적(妓籍)에 입적(入籍)하여 관리들을 홀려 그들의 약점을 이용, 아버지를 벌주지 못하게 하였다.

안핵사가 내려올 때마다 지방 관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핑계로든 잔치를 베풀게 하였고, 그 자리에는 반드시 그녀가 참석하여 미색과 가무, 그리고 모든 아양을 떨어 그때마다 수청을 자청하여 안핵사로 하여금 본분의 일을 잊고 주색에 빠지게 하여 차일피일 하다가 돌아가거나 봉고파직(封庫罷職)케 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성품이 강직, 청렴하고 과단성이 있는 젊은 관원을 뽑아 안핵사에 임명하여 그 죄상을 낱낱이 밝히도록 하였다. 이에 신임 안핵사는 호언장담 하기를 "일체 기생을 점고치 아니하고 술을 멀리 하여 관리들을 희롱한 노아부터 처벌한 다음 그의 아비를 다스릴 것이다."라며 안핵길에 올랐다.

한편 노아는 밀정을 풀어 신임 안핵사의 일거일동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는 계획을 마련, 안핵사가 칠원현(漆原縣:당시에는 함안군과 분리되어 있었음) 웃개나루(낙동강이 함안과 창녕을 경계지은 나루터, 지금의 칠서면 계내리)에 당도하여 객주집에 들어 점심을 들게 되었다. 노아는 계획이 적중함을 기뻐하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지점에서 소복단장으로 구경꾼 속에 끼어 들랑 날랑하여 안핵사의 시선을 끌기에 노력하였다.

안핵사는 낯선 고장의 산천경개(山川景槪)와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노독을 풀던 중 무심코 구경꾼들을 쳐다보니 멀게 가깝게 아른거리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는데 천상의 선녀가 하계(下界)하여 노니는 듯, 백학이 알을 품고 구름속에서 춤을 추듯, 벌 나비가 꽃밭에서 춘광(春光)을 희롱하듯하여 정신이 아득하고 눈 앞이 삼삼하여 황홀경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이 곳은 타 고을이라 잠시 방심한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하룻밤 유숙하기를 명하고 주인을 불러 넌즈시 소복여인에 대해 물었다. 주인은 한숨만 쉬면서 말이 없더니 「그 아이는 노구(老구)의 딸이온데 박복하게도 얼마전 남편과 사별하고 시가에서도 의탁할 길이 없어 잠시 소인에게 돌아와 있는 중이옵니다.」하였다. 안핵사는 속으로 "옳다구나!"하며 무릎을 치고는 슬그머니 주인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며 오늘밤 상면케 해줄 것을 청했다. 주인은 딱 잡아떼며 말하기를 「여식은 비록 비천한 소인의 소생이오나 내칙제서(內則諸書:여자의 행실과 법도를 적은 책)며 일반 학문을 익혀 정절을 소중히 하고 있사오니 천부당 만부당 한줄로 아옵니다.」하였다. 더욱 초조하고 마음이 들뜬 그는 애원조로 거듭하여 간청하자 못 이기는 체 하는 말이「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하였으니 부디 버리지 않는다는 약조만 하신다면 한번 권하여 보겠나이다.」하니 그는 그러마고 거듭 다짐하며 멋모르고 좋아했다.

일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니 능청스런 노구와 간교한 노아는 기뻐 어쩔 줄 몰라했는데 이윽고 해가 지고 밤이 이슥하자 주안상을 곁들여 안핵사의 방을 찾아 들었다. 낮에는 먼 발치로 어름어름 보았으나 곱게 단장하여 촛불 앞에 앉은 노아를 본 순간 빼어난 절색에 그만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으며, 무상한 인생과 덧없는 세월로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하였다. 그럭저럭 회포를 풀고 동침을 권하자 노아는 안색마저 변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럴수록 애간장이 탄 그는 세게 쥐면 다칠세라 적게 쥐면 날아갈까 두려운둣 섬섬옥수를 부여잡고 간청하니 대장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러자 노아는 이제는 되었겠지 생각하고 마지못하는 척하며 응하면서 다시는 버리지 않겠다는 자문(刺紋)을 받은 후에 원앙금침 속에 들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노아는 말하기를 「사또는 지중한 왕명을 받은 분이시니 간밤의 일이 발설되면 사또의 체면은 물론이거니와 소첩의 노모에게까지도 벌이 미칠 것이오니 미진한 인연은 왕명을 마친 후로 미루심이 어떠하올런지?」한다. 안핵사 역시 그러함이 좋을 듯하여 함안을 향해 나아갈 때 노아는 지름길을 택하여 먼저 함안으로 돌아 왔다.

함안에 도착한 안핵사는 왕법을 문란케 한 요녀 노아를 대령시켜 극형에 처하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동헌(東軒)앞 뜰에 끌려온 노아는 「능지처참의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마땅히 공사(供辭:변명서)를 보시고 결정함이 국법이온데 무조건 벌 주심은 과한줄 아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공사를 먼저 보시옵소서!」하니 안핵사가 그 말을 옳게 여겨 공사를 보니 아비의 사연을 먼저 쓰고 끝에 시 한 구절을 적었는데,

「노아옥비 시수명(蘆兒玉臂 是誰名)

각입기부 자자명(刻入肌膚 字字明)

영견낙동 강수진(寧見洛東 江水盡)

첩심종불 부초맹(妾心終不 負初盟)

(노아의 옥같은 팔에 그 누구의 이름인고,

살갗에 깊이 새겨 자자이 완연하다.

차라리 낙동강 물의 마름을 볼지언정

이 몸이 맺은 맹세 변할 줄이 있으랴)」 하였다.

안핵사는 깜짝 놀라 바라보니 이무슨 변고인가? 지난 밤에 만나 백년 천년을 같이 하자던 그녀가 아닌가? 비로소 그녀의 간계에 속은 것을 알았으나 엎지러진 물이니 한탄한들 무엇하랴. 안핵사는 갑자기 병을 빙자하여 치죄를 중지하고 영원히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강원도 포수나 함흥차사와 같이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함안차사’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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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정해관님의 댓글

저도 이번에 새로 배웠습니다. '강원도 포수, 지리산 포수' '함흥차사, 함안 차사'라는 말.
그런데, 자기 고향을 소개하는 시리즈가 몇번 나갔는데, 그곳이 고향이신 분들의 관심좀 끌까 해서의 목적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군요. 가타부타 언급이 없어요. 여기서 접겠습니다. 그분들의 관심 여부를 떠나 이 홈의 공로자분들에 대한 '예우'차원 이기도 했으니까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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