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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장> 그리고 <징계처분 결과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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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계처분 결과 통보 >

나는 지난 7월 17일 통일교 협회 징계위원회로부터 내용증명으로 보내온

<징계처분 결과 통보서>라는 우편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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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서는 이에 앞서 지난 5월 중순 경, 나에게 5월 25일까지 협회로 출두하라는

<협회 징계 위원회> 이름으로 된 소환장을 역시 내용증명으로 보내왔었고,

나는 즉각 두 차례에 걸쳐 공직자가 아닌 일반 식구에게 무슨 봉건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소환장을 보내는 근거가 무엇이냐? 고 공개 질의형식의 회신을 보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근거가 된다는 ㅡ 지금 이 시간까지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ㅡ

<정관>과 <내규>를 보내 준다면 성실히 소명에 응하겠다고 정중히 요구하였다.

그런데 예상했던 바대로 나의 정당하고 소박한 요구는 일언반구 없이 철저히 무시되었고, 아래와 같은 징계 결과를 통보 받았다.

< 징계 처분 결과 통보 >

대상자 : 김 동 운

징계결과 : 출교(협회원 자격 박탈)

“......중략 .... 2012년 7월 5일 오후7시 협회본부에서 실행위원인 협회장, 협회 실.국장 7명, 전국 교구장13명과 자문위원인 원로, 섭리기관 대표12명, 축복가정 회장대표7명 등 총 40명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 회의를 개정하였으며 회의 결과 징계위원의 만장일치로 귀하의 출교(협회원 자격박탈)가 결정되었습니다. ............. 중략 ........ 만약 귀하께서 자신이 행한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고 참부모님과 통일교로 돌아오고자 한다면, ....귀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예전 같아서면 이런 통보는 나에게 사망 통지서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미치고 환장하고 팔딱 뛸 노릇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나에게는 우리 교회와 협회의 일원임은, 긍지 그 자체요 자부심이었다.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1960년 6월 2일 중 3학년 때 입교하여 가정, 친척, 학교, 사회로부터 핍박과 멸시를 당해 오면서도 협회원 번호가 <1642번(?)>

으로 남들보다 좀 빠른 것에 대한 내심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니 그 자부심이 바뀐 것이 아니고 모든 가치의 본질이 되는 하나님과

참부모님을 향한 내 마음은 흔들림이 없이 그대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백번을 물어보아도

나는 떠난 사람이 아니다.

떠나지도 않은 사람을 보고 잡다한 이유를 붙여 조건부 소명의 기회마저 봉쇄당한 체 강제

추방해 놓고서 돌아오면 받아 주겠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오늘날 통일운동은 잘못되고 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

참부모님의 핵심 가르침이신 <참 사랑>과 <위하여 사는 삶>은 심하게 그 본질이 왜곡되어지고

있다. 아니 단순히 왜곡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함량이 모자라는 핵심 지도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훼손되어지고 있다.

참가정의 맏형님 위치에 계신 분을 타락한 아담으로, 모친을 고소한 불한당이며 패륜아로

몰아가며, 한평생 신앙의 모범으로 참부모님을 그림자처럼 모셔온 원로 선배를 사탄으로

음해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마수가 활개 치는 현실에서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과

시도도, 비 원리적인 교리 주입으로 지탄하거나, 반 신앙적인 적대 감정과 배역자의 오명을 씌워 격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이곳에,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할 수 있겠는가?

아~ 아~ 어찌 이런 일이 생겨 날 수 있단 말인가!

새삼 출교처분 통보를 받고 보니 지나간 반세기가 주마등처럼 눈가에 어린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만 52년간을 성화 학생시절인 61년, 62년, 63년, 그 놀기 좋아하던 소년

시절부터 여름 방학 겨울 방학 가리지 않고 굶주림도 불사하며 꿈에도 그려볼 수 없었던

재림 메시야의 지시와 말씀에 순종하여 계몽, 전도 가던 일이며,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전도 나갔던 일이며, 1년 쉬고 성균관 대학에 입학하여 전국대학

원리 연구회를 창립하고, 공부하러 왔는지 활동하러 왔는지 모를 정도로 미친 듯이 대학 4년을 오직 뜻 대한 심정 하나로, 교정 이곳 저곳을 휘젓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청파동 구본부 교회며,

명동 4거리 전도소며, 전단지를 나누어 주거나 친구들을 대동하여 안창성, 최용석, 황환채, 한인수, 이재석님, 등 대선배님들의 열강에 심취하여 눈물짓던 일도 전혀 옛일 같지 않다.

대학 졸업 후 직장도 관심 밖의 일이었고, 곧장 부산으로 내려가 나이도 몇 살 차이나지 않은 대학생 지도를 한답시고 몇 달 머물다 군에 입대하여 맹호 용사로서 월남 파병 경험도 하였고, 제대복을 입은 채로 황환채 선배님께 인사차 협회에 들렸다가 당장 울진교회 교역장으로 가라는 엄명에 순응하여 목회의 길에 접어든 후, 중앙대학교, 성균관 대학교, 등 서울에서의 학사 교회장 생활도 하면서 1975년, 1800가정 축복을 받는 은사도 받았다.

그 후 나는 얼마 전, 고인이 되어 영계에 가신 엄덕문 회장님을 모시고 정부로부터 당장에라도 여의도 성지 공사 허가가 날 것으로 기대되어져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창립된 현재의 (주)일성건설의 전신인 일성건업(주)에 창립 멤버로 입사하여, 통일재단 관리부장, 일성콘도 기획이사, 선도산업 대표이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도 직전의 통일중공업의 대표이사를 끝으로 직장 생활을 마감했다. 이것도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나는 지금 신용 불량자의 입장이다.

당시 회사 대표이사가 전임자의 모든 채무를 승계 받는 관행을 그대로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재산상의 많은 시련과 법적인 고통을 받았다. 가족에 끼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상황은 평생 갈 것 같다.

또한 나는 전과자이다.

전과자 치고 자랑스러운 전과자는 없는 법이다. 범법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여기서 전과자임을 거론하는 것은 직 간접으로 나의 징계처분 결과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전과자가 된 전말은 간단하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졌을 때, 나는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통일 중공업 마지막 사장으로

취임했다. 말이 사장 취임이지 죽음의 사자 문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나 같은 피라미 1800가정이 평상시 같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우리 그룹의

최고 최대의 회사에 대표로 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당시 부모님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은 모두 브라질의 <자르딘>으로 가시고 재단에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지켜내기도 벅찬 실질적인 재량권도 없는 신진젊은 인사들이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고 있는 터였다.

어찌 되었던, 내가 사장으로 부임한 통일중공업은 사장실이 극열 노조원들에게 점령당해 있었고 한달이 지났어야 간신히 사장 취임식을 할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한 악질 사업주의 대표로 낙인찍혀 민노총의 지원을 받는 노조원들의 고소로 <근로기준법위반>이란 죄목으로 새벽에 숙소에서 체포영장을 가지고 온 근로감독관에게 수갑이 채여저서 유치장으로 압송 된 후 재판을 받았고,

또 다른 하나는 역시 회사 일로 <증권거래법위반>으로 고발되어 특수부에서 수난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어 역시 실형은 면했으나 집행유예로 전과자가 되었다.

어찌 내가 물심양면으로 당한 고통을 새삼 밝혀 무엇하리요만, 이러한 시련도 내가 하나님과 참부모님이 당하신 수난의 만분의 일이라도 체험할 수 있다는 은사로 알고 견디어 왔는데, 위로와 포상은 못할망정 재단 책임자가 바뀌고 현 지도부가 자행하는 파행에 쓴 소리를 한다고 해서 출교 처분이라니!

이것은 나와 내 가족과 2세, 3세가 된 아들 딸, 사위, 손자, 손녀에 한한 아픔만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일가친척과 친지들이며 축복가정 선후배 모두의 아픔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픔은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어지면, 금방 지나갈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이러한 거짓된 허상들에 의해서 어두운 그림자로 가려지고, 숨 가쁘도록 시급하고 섭리의 완성을 향한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애절한 호소가 이들이

회개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한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데 있는 것이다.

2012년. 7월. 20일 (금) 김 동 운

<붙임말> : 어쩌면 이 글이 우리 홈페이지에 올리는 나의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출교 당한 사람의 글이니 당장 지우라고 주장하기도 하겠지만, 아버님만이

하실 수 있는 축복 가정으로서의 자격 박탈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두라고 주장하는 의롭고 인정 많은 형제 자매분도 더러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확실한 유권 해석이 내려지기 전에는, 가능하다면 강제로 이 사람의 글을 삭제하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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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이존형님의 댓글

ㅎㅎ 요즘 날씨가 하도 더워서 더위를 먹었나봅니다.
사람이나 무엇이든지 언젠가는 죽기마련인 것을요.
어떻게죽는가 그것이 문제지요.
이렇게라도 왔다갔다하니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으신지요.
고여있는 물은 썩는다고 하더이다.

이존형님의 댓글

김동운회장님 이렇게라도 사건의 글이라도
올려주시니 사이버공간이지만 대화가 되는군요.

무슨 일이든지 사람이 벌여놓은 일이라면 진지한 대화로서
풀지 못 할 사건이나 사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단절하고푼 마음이
굴뚝 같지만 사람은 인정의 동물인지라 오늘도 이렇게
휴대폰으로 이곳을 찾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죽었을 때 조문을 하는것이 아닐까요?
동물들은 죽은 동료의 시신을 뜯어먹지만
사람은 애도를 표하는 것이겠지요.

즉 어려워진 동료에게 위로는 가능하겠지만
돌을 던지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동료의 시신을 뜯어먹는
동물이나 진배없을 것입니다.

이런 글을 주고받으면 저에게도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를 압니다.
그러나 김동운회장이라는 사람이 저와 같은 형제이며
세상 어떤 사나이보다 용감무상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둡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김동운회장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시면 섭섭이의 결과뿐일 것입니다.

요즘 같은 불황에 어느 누가 마음놓고 쇼핑을 할까요.
겨우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아이쇼핑으로 마무리 짓는 인사가
많을 것 같으며 가솔이 수두룩한 인사들이야 가솔들 앞길도 생각하랴
자신의 앞날도 걱정하랴 당연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요.

그렇다고 회장님을 동정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퇴출을 바라서도
퇴출을 무마하기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것 같으니
몸조심들 하는 것일 터이니 회장님과 뜻이 다르거나 동일범이어서
숨는다고는 생각마세요.

이 나이 때 되면 용기도 정의도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그냥 보고만 가도 감사하다고 생각하시고 용기와 정의는 잠간 피서를 다녀오심이
어떠하실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러 드립니다.

언제 제가 초청할 때 수원으로 오시면 줄서서 기다려야 먹는
청학동 칡냉면이나 시원하게 한 그릇 드십시다요.

김동운님의 댓글

아주 상식적인 감정의 노출도 괜히 오해 받거나 동일범(?)으로 간주되는 척박해진 현재의
우리 풍토에서
그러나 존형님의 중립적인 작은 위로도 고마울 뿐입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우리는 크든지 작든지 간에
모든 일들이 아버님의 재가가 내려져야 한다고 봅니다.
축복을 주시는 것도 거두는 것도 아버님만이 가능합니다.
하늘이 내린 축복이니 하늘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견해이니 오해들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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