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둔 요즘 정치권에서의 이슈적 화두는 단연 경제민주화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온 것이다. 여야는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도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경제의 민주화'를 정책으로 보여 주겠다고 경쟁적으로 공론화 했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는 10일 "5000만 국민행복플랜을 추진하겠다"면서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하고,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경제 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의 확립 등을 꼽으면서 특히 경제 민주화를 강조했다.
그는 경제 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공정성의 중요성을 간과했고, 그 결과 경제 주체 간에 격차가 확대되고, 불균형이 심화돼 왔다"면서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민주통합당도 9일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재도입 등 경제민주화 관련 9개 법률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재벌 총수가 1%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수십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기형적인 소유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재벌의 문어발식 업종 확대를 막는 다는 취지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 상위 10대 대기업 집단(공사 제외) 내 모든 계열사에 출총제를 적용하고, 출자 한도는 순자산의 30%까지만 허용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그룹의 연간 매출액은 GDP(국내총생산)의 77%를 점유하고 있다. 근로자 중 상위 소득 10% 계층의 평균 소득은 하위 10% 계층의 5.23배에 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7개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격차가 크다. 지난 60년 동안 한국경제는 주로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견지해 온 결과 우리사회에 심대한 양극화를 불러 왔고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심각한 사회적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공론에 대해 박재완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민주화’주장이 지나치면‘우물 안 개구리’신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정책은 세계 표준과 맞아야 한다”며“우리처럼 외교·통상이 중요한 나라는 글로벌스탠더드(국제표준)를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지나치면 외국인투자 저해와 무역장벽 등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역대 대선 때마다 재벌기업 손보기라는 단골 메뉴가 등장하곤 했다. 그 만큼 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선거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선거가 끝나면 누가 집권하든 재벌 손보기는 흐지부지 없었던 일 처럼 돼버리고 오히려 집권내내 친 대기업 방향으로 흐르곤 했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기업은 국가경제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 만일 기업이 잘 않 돌아가면 경기가 침체되어서 당장 내수가 줄어 들고 수출이 둔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하여 당장 정권에 큰 부담으로 돌아 오게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버클리대 ‘올리버윌리엄슨’교수는 대기업의 존재 이유는 바로 “시장이 불완전한 경우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데에 있다”하고 “대기업이 비록 지배구조상 문제는 있지만 그만큼 효율적이기 때문에 규제는 필요해도, 인위적인 분리나 규모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만약 정치권이 나서서 경제 민주화란 명분하에 재벌 개혁, 부자 증세만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다면 그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민간 기업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크게 훼손 될 것이다. 무작정 분배 우선, 복지확대를 밀고 나가면 자칫 성장의 동력까지도 소진될 위험성이 적지 않다.
물론 경제민주화는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대기업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동반성장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도외시하고 구태적인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하청업체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의 관행을 고치지 않는 한 경제 민주화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곧 한국의 경제시스템을 어떻게 변화, 발전시킬 것인지와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생차원에서 경제민주화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양극화, 청년실업 등 한국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을 방치하고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자신들도 사회적 합의 차원에서 경제민주화 개념을 어떻게, 어느 선까지 실질적으로 수용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성범모의 공생경제)
* 데일리리뷰 칼럼 전재한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