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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안타까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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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80대 노인이 200자 원고지 2천 매 남짓 되는 원고 보따리를

들고 찾아왔다.

강원도 모처에서 20여 년간 신의 계시를 받아 ‘통일을 위한 해법’에 대해

쓴 글인데 그걸 책으로 내고 싶다고 하였다.

원고를 대강 읽어 보니 안타깝게도 기준 미달이었다.

책으로 내려면 책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준이 있는데 그에 미달이었던 것이다.

글이란 필자의 사상과 신념이 담겨 있으며, 그것이 주관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그 주관은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상위 개념으로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독자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이 결여된 글일 경우 중언부언하는

헛주장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이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자기 신념, 자기도취에 빠져 10년 20년 죽을 고생을 해서 한 가지 물리를 터

본인은 기쁨이 충만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미 세상에 통용되고

있는 별 것 아닌 이치인 것이다.

정좌지와(井座之蛙) 격이라고나 할까.

그 노인이 통일을 염원하며 원고를 쓰기 위해서 20여 년간 얼마나 수고를

했겠는가. 생업인들 제대로 도모했겠는가.

그렇다면 그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고생을 했겠는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갈 안타까운 일이다.

정성을 드리는 데 있어서도 영․육계의 이치를 모르고 섣불리 시작했다가는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처음 정성을 드리게 되면 무언가가 조금 보이는 듯하다.

호기심에 정성을 더 드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보여 주는 것마다

딱딱 맞아떨어지니 신기하기도 하고 뭐가 통하나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쯤 되게 되면 거기에 현혹되어 자기를 끌고 다니는 존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생활에 전념하게 된다.

그렇게 끌려 다니다 보면 점점 고생길로 접어들게 되고,

결국 끝말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럼 끌고 다니는 그 정체는 무엇인가. 하나님인 줄 알고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했건만 그건 하느님이 아니다.

성인이라고 알고 받들었건만 그건 성인이 아니다.

하나님을 빙자한, 성인을 빙자한 다른 영인 것이다.

그래서 정성 드리는 사람들이 실족하는 경우가 많다.

신의 세계라는 곳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종교의 세계에서도 소문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공식 절차를 밟아 전달되기 전에 소문이 먼저 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가 듣고 판단한 것을 전하다가는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세상 이치가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인 경우가 많은지라 한 사람씩 거칠 때마다

전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조금씩 더해지고 빠지고 바뀌어져서 한 바퀴 돌아

다시 온 내용을 보면 본질과 사뭇 다른 사건으로 바뀌어 있다.

오해와 곡해가 벌어지는 이유다.

게다가 중간에 전달한 사람 중에 사건의 주인공과 불편한 관계인 사람이라도

있다면 사건 당사자에게 꽤나 불리하게 변질되게 된다.

‘똑똑히 알고 말하라’는 막말이 나오는 근원이 되는 경우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건이 작은 건인 경우 구설수가 되고, 큰 건인 경우에는 관재수가 되는

것이다. 작은 구설수라 해도 일일이 뒤쫓아 다니며 해명할 수 없는 일이요,

큰 사건이라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할 수도 있는 일이니 참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게 된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정성 드릴 때는 상황을 객관성에 비추어 사려 깊게

판단하면서 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식자우환(識字憂患) 격이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소문은 들어도 아예 전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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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고종우님의 댓글

세상을 살면서 글이나 말은 하루도 멀리 할수없는 삶 자체 이지요.
그 중요한 말이나 글 때문에 사람이 죽을수도 있고 살수도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무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말과 글 속에서 아무리 잘 살아 보려 해도 자신이 무지하여 한치 앞을 알수 없기에
본인도 모르는 실수와 그리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예가 많이 있지요.
점점 나이 들면서 심사숙고 하려고 하는데 어쩜 위 노인 닮은
삶을 살고있지 않는지 자신을 살피게 됩니다.

회장님께서 올리신 글이 많은 분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활력소 되리라 믿으며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번 정독을 하게 되는군요.
감사 합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모처럼의 회장님 글이 가르침으로 아주 고맙게 다가옵니다.
정말 깊고 정말 훌륭한 내용 입니다.

총칼 보다 더 무서운 것이 펜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요즘은 아주 조심 스럽게
하다 보니 수필도 잘 안나옵니다. 회장님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나오는 글 자알 이해 하고
공부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내가 만난 안타까운 사람들
가만 가만 속삭이는 소리도
만년 가고 억만년을 가더라도 바람결 따라서 퍼져나가고
난 아무 말도 안했다 하지만
안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들이지만 자기만 모르는 일들도 허다하고
타는 가슴에 촛불 댕기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운치를 아는 사람들은 시와 때를 잘 가리는 사람일 것이며
사람들마다 제 잘난 멋에 사는 게 사람 사는 맛인가 합니다.

~~그 노인 분께서는 많은 정성을 들였을 것인데
보는 사람의 눈에는 정도의 차이가 나겠지요.
하나의 일을 두고도 여럿이 본다면 제 각각 다른 맛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을 사는 이치이겠지요.~~

조항삼님의 댓글

만남의 인연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상념의 계절을 맞아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군요.

섭리의 중심에서 불철주야
수고하시는 회장님 좋은 글 잘 읽고
명심하여 실천하겠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칼이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네요.


나는 지나가는 말로
아무 생각없이 말을 하지만
그말을 들은 사람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들은귀는 천년이요,
말한입은 사흘이다"가 바로 그 뜻이겠지요.
들은귀는 들은것을 천년동안 기억하지만
말한입은 사흘도 못가 말한것을 잊어버리고 만답니다.


좋은말,
따뜻한 말,
고운말 한마디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씨앗처럼 떨어져

뜻밖의 시간에
위로와 용기로 싹이 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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