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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나 어느 촌로의 지조를 본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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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나 어느 촌로의 지조를 본받자!

1.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성서 기록과 전승]

1) 바리새인의 집에서 예수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

(눅 7:36~50)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장(눅 8:02~03)에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첫 공식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이 두 내용에는 어떤 연관성 이나 사건의 연속성은 없다. 이런 오류로 인하여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성화 중에는 향유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2)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 (마 26:06~13 / 막 14:03~09 / 요 12:01~08)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이며, 이다음 사건은 유다의 배반과 최후의 만찬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의 등장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므로 위의 여인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 요한복음서의 내용을 보면 베다니의 마리아(나사로와 마르다의 여동생) 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다만 마태-마가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머리에,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발에 붓는 것이 약간의 혼선을 주고 있으나 이 얘기의 주인공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3) 죄의 여자(the Sinner, 창녀, 매춘부, 간음한 여자)

(눅 7:36~39) - '죄를 지은 한 여자가'라고 서술되어 있으나 어떤 죄인지는 불명확하다.

(요 8:03~11) - 간음한 여자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유명한 설교가 나온다.

하지만 내용의 종합적인 판단으로 '막달라 마리아'라는 구체적인 정황은 없다.

4) 역사적 기록을 보면,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해 591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고 강론됐었다. 이 이미지는 로마 가톨릭에 의해 긍정적(회개)이든, 부정적(성차별)이든 의도적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이 최근의 기독교 내외의 다수의 인식이며,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도들의 사도'라고 격상되었다.

5) 예수와 결혼한 여인(전설, 소설-영화)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와 결혼을 하였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자 이집트로 도망쳐 예수의 딸인 사라를 낳은 뒤 다시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으로 건너갔다고 하는 주장(전설)도 있다.

2. 60년대 5.16쿠테타에 성공한 박통과 어느 촌로의 야기

-요즈음과 같은 칼라TV는 말할것도 없고 TV도 몇 대 안되고 라디오로만 뉴스를 전해 듣던 시절,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으로 시작되던 호랑이 담배피던 때의 이야기.

-모내기하는 농촌시찰에서의 한 장면이다.

농촌 사람들과 참모들과 함께 모내기를 한 후 준비한 막걸리를 한잔 씩 건낸 다음,

박의장의 기분을 좋게 하려는 염원을 갖고 참모가 나이든 촌로에게 한마디 물었다.

“어르신! 구악을 일소하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로를 넓히고 농지정리를 단행한 혁명정부의 지도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

.

(막걸리 한 사발을 다시 들이킨 후 결심했다는 듯)

“그 뭣이냐...그래도 대통령 감은 이승만 박사제...!”

3. 일반적으로 알려진, 몸을 팔아서 생계를 이을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여인’ 막달라 마리아는 비록 몸을 팔았던 적은 있었지만 진리의 음성을 듣고 나서 부터는 오로지 일편단심 섭리의 중심과 하나 되는 모범을 보였고, 그 결과 성경이 읽혀 지는 동안 영원히 주님과 함께 기억되는 義女로 기록되었다.

뒤에 인용한 이름 없는 어느 촌로도, 막걸리 한두 사발에 자기의 지조를 팔 수는 없었다.

우리들 거개가 저 마리아나 촌로처럼 이름도 빛도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고맙고 황공하게도 참부모님을 만나 하늘의 새로운 섭리를 알게 되었고, ‘축복중심 가정’이라는 은사도 입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에 가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성서의 기록처럼, 우리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특히나 호구지책 때문인지 양심과 지조를 ‘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성서에서는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실족하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함께 깊이 새겨들을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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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이창배님의 댓글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종이라고 하지않았지요

스스로 종이되었기에 타락됐다고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요 사람은 형제자매로서 먼저나고 늦게낳은 선후는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모습으로 개성진리체로 가치는 평등하다고 보아야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종처럼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은 또 하나의 타락이지요

복귀다 구원이다 수십년을 듣고 배우고 외웠잖아요

물에빠진자의 구원은 물밖으로 나오는 것이구원이지 겨우숨쉬게하는 것이 아니지요

종인 천사의 종이되어 주인의 자리를 이탈한 사람은 주인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는 평등한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 천국이 아닐까요~~~

이봉배님의 댓글

이 아침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에 숙연한 맘 갖고 정몽주 충신의

단심가를 되뇌어 보면서 점점 책임자의 자리가 밥통이 되어 가는

현실을 숨길수 없지만 "축복 중심가정" 의 자리를 잘 지켜야 된다는

큰 교훈을 얻고 갑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어떤 상황에서라도 신앙의 중심은 굳건히 지켜야겠습니다.
올려주신 글 내용을 음미하노라니 경각심도 되고 시사하는 바
새겨들어야 할 귀한 글이군요.

만고불변의 뜻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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