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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그의 인재 : 과학혁명의 초석을 다진 정초(鄭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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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그의 인재: 과학혁명의 초석을 다진 정초(鄭招)

세종은 과학발전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도 강한 왕이었다. 세종이 그토록 과학에 집착한 것은 과학이 곧 경제의 근간인 농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국방력을 증강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뛰어난 학자 중에 특히 과학 이론에 밝은 인물을 항상 옆에 두고 조언을 받았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정초(鄭招)였다.

정초는 경서에 통달했음은 물론이고 천체학과 역산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이었다. 세종은 그에게 내린 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일찍이 경제의 재주를 품고 성현의 학문을 연구하여 보고 들음이 넓고 충만하여 의심가는 일을 판단하는 일에 능했고 지식과 도량이 굳세고 밝아서, 어떤 것이든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단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 까닭에 近臣으로 뽑아서 오랫동안 모든 정무를 자문하였다. 정치에는 깊이와 명성이 있었고, 재주는 내놓는 것마다 적합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백 가지를 마련하고 지음에 있어서 한결같이 제대로 재단하여 이룩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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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보면 뭐든지 외운다]

정초는 사헌부 집의를 지낸 鄭熙의 아들이다. 본관은 하동이고, 자는 悅之다. 당대의 명유이자 고관대작을 지낸 인물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다만 <연려실기술>에 그의 총명함을 엿볼 수 있는 몇가지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는 어떤 서적이든 한 번 보면 당장 외어버리는 수재였다고 한다. 과거가 바로 닥쳐도 놀기만 했는데 당당히 급제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청년시절에 그는 <금강경>을 읽는 스님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그 경전을 한번 보고 외울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스님이 가당치도 않는 소리 말라는 듯 웃으며 대꾸 했다.

“그대가 만일 외운다면 성찬을 차릴 것이요, 못 외우면 그대가 성찬을 차리시오.”

그렇게 약속한 뒤 정초가 외우기 시작했는데, 북채를 잡고 북을 치면서 외우기를 물 흐르듯 하자, 질것을 염려한 스님이 줄행랑을 놓았다.

언젠가 군부의 직분을 수행할 땐 군사 수백명을 한번 보고는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여 사람들이 모두 감탄 하였다. 그는 외우는 데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적용하고 실천하는데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태종이 양녕을 폐위하고 충녕을 세자로 책봉할 때, 정초는 세자시강원에서 충녕을 만났다.

경연에서 세종이 정도전이 편찬한 <고려사>가 <고려왕조실록> 초본과 다른 곳이 많아 역사가 왜곡되었다고 말하자, 정초는 변계량과 함께 <고려사>를 개편할 것을 권해 실행시켰다.

[물시계 제작을 이끌다]

1419년 정초는 공조참의로 임명되었다. 당시 세종은 과학기술 개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정초의 역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큰 보탬이 될거라고 판단하고 기술개발을 주도하던 공조에 보낸 것이다. 당시 공조의 공장에는 뛰어난 기술자인 장영실이 있었다. 이때 정초는 장영실에게 시계제작에 대한 이론을 전수하고 물시계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1423년 정초는 함길도 감사를 역임했고, 1424년 승진하여 공조참판이 된다. 이 시기에 정초는 조선과학에 획을 긋는 중요한 성과인 물시계를 장영실과 함께 만들었다. 당시 명나라에 있는 물시계를 정초와 정인지는 이론을 익히게 하고 장영실을 은밀히 중국으로 보내 시계제작 기술을 배워오게 하여 거둔 과학적 쾌거인 것이다.

[농사직설 편찬을 주도하다]

물시계 제작에 성공한 정초는 1425년 형조참판으로, 다시 이조참판으로 승격되었다. 1429년에는 우군총제에 오르는데, 이때 그는 집현전 학자들을 이끌며 <농사직설> 편찬을 주도했다. 농사직설은 곡식재배에 중점을 둔 농서인데, 조선 농업의 기본서로 자리매김 했으며, 성종 때 간행된 내사본은 일본으로 전달되어 일본농업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정초는 이책의 서문에 ‘풍토가 다르면 농사법도 달라야 한다’고 썼는데, 이 점이 곧 농사직설의 가장 큰 특징이었고, 정초의 이러한 농업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는 중농주의 실학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혼천의 제작과 ‘칠정산 내.외편’ 편찬]

1432년 정초는 예문관 대제학에 임명된다. 이때 그는 또 하나의 과학적 업적을 이루어 내는데, 1433년 박연. 김진 등과 함께 새로 만든 혼천의를 세종에게 올렸던 것이다. 이때도 기술자는 이천과 장영실이었고, 정초는 그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고 작업을 지휘했다.

혼천의 제작은 1423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칠정산 내외편’ 편찬작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칠정’이란 해와 달, 목화토금수 5성을 합쳐서 이르는 말인데, 이 별들의 운행원리와 결과를 기록한 책이 바로 ‘칠정산 내외편’이다.

‘칠정산 내외편’의 해설작업이 끝난 것은 1433년인데, 이 작업에는 세종도 직접 참여했다. 이 해설작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됨으로써 조선 과학계는 칠정의 운행원리에 통달할 수 있었고, 혼천의. 혼상. 앙부일구 등의 과학적 성과물을 얻게 된다.

정초는 바로 이러한 과학발전을 이끄는데 구심체 역할을 했다. 특히 과학 이론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거의 그가 주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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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문정현님의 댓글

장영실님은 국사시간에 배웠지요.
이해가 빠릅니다. 과학혁명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 총장님의 18대 선조님... 정초 선생님 !!~

이존형님의 댓글

정해관 총장님께서 세종대왕을 그토록 사모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군요.
훌륭한 가문에서 훌륭한 인재가 탄생하여 천일국의 주역으로서
열심히 달리시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선조님들께서도
아주 반갑고 자랑스러운 후손에게 많은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필자의 18대 선조인 정 초 선생은 세종을 도와 과학혁명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였지만, 별로 알려지지 아니하여 여기에 소개하게 됨을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선조님께서 세종님을 모시고 저승에서도 섭리의 중심 한민족과 천일국의 창건에도 크게 공헌하시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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