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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그리고 孝道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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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 [아우 세종에게 왕위 넘겨주려 일부러 미친짓]

그동안 양녕대군은 어려서부터 놀기만 좋아하여 글공부를 게을리 했고, 장성해서는 주색에 빠져 방탕한 세월을 보내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는 사실 당대의 명필이요, 문장가였으며, 학문이 깊은 천재였다. 단지 그런 사실을 가슴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기에 부왕인 태종도 잘 몰랐을 뿐이었다.

양녕대군은 자유와 왕좌를 맞바꾼 우리 역사에서 매우 이채로운 인물이요, 우리나라 풍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호걸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왕위를 두고 부자 간, 형제 간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골육상쟁은 비일비재했지만 임금 자리가 거추장스럽다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양녕대군은 부왕의 뜻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忠寧大君)에게 있음을 눈치 채고 일부러 미친 척하여 절대 권력이 보장된 세자 자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자유와 풍류를 찾아 대궐의 높은 담을 훌쩍 타넘었다. 그런 까닭에 왕조사의 국외자로서 주유천하로 일관했건만, 왕관과 자유를 맞바꾼 그의 통쾌한 용기와 풍류의 일생은 후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은 것이다.

국보 제1호 남대문의 본래 이름은 숭례문인데, 편액의 ‘崇禮門’ 세 글자가 양녕대군의 친필이다. 또한 서울 동작구 상도4동 221번지, 관악산맥이 한강변으로 뻗어 내린 국사봉 기슭의 장승백이약수터에 그의 묘소와 사당인 지덕사(至德祠)가 있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 한글을 만들고,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진 명군 세종대왕이 있기에는 큰형님 양녕

대군이 세자위를 미련없이 넘겨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양녕대군의 이름은 이제, 자는 후백(厚伯)으로 태조 3년(1394)에 뒷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李芳遠)의 맏아들로 개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방원이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것은 4년 뒤. 다시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 정종(定宗)마저 쫓아내고 스스로 왕좌에 오른 것은 6년 뒤인 1400년 11월이었다.

그때 태종은 34세, 양녕대군은 7세였다. 양녕대군은 태종 4년(1404) 11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태종은 왕비 원경왕후 민씨에게서 4남 4녀를 두었고, 많은 후궁을 거느리며 8남 13녀를 두었으니 자식이 모두 12남 17녀, 29명이나 되었다.

그런 부왕을 닮았는지 양녕대군 또한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격이 호탕해져 글공부보다는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고 즐기게 되었다.

[출처] 풍류의 향기(양녕대군 1)

[효도에 관한 시조 모음1]

1. 뉘라서 가마귀를

뉘라서 가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지은이 : 박효관(1781-1880)

조선 철종, 고종 때의 가객(歌客). 제자 안민영과 더불어 가집 <가곡원류(歌曲源流)>를 엮음

하돗던고 - 하였던고. 하더란 말인가?

반포보은(反哺報恩) - 까마귀(반포조,효조(孝鳥)라 함)의 새끼는 다 자란 뒤에는 제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가 먹여준다.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것을 말한다.

슬허하노라 - 슬퍼하노라.

♣미물인 까마귀도 효도를 행하는데 사람 가운데에는 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많다.

2. 반중 조홍감이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지은이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호는 노계. 그의 작품은 대개 고사(故事)를 많이 인용하고 한문을 많이 쓰는 흠이 없지 않으나,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오륜가>를 지었다.

반중(盤中) - 소반 위. 소반에 담은.

조홍감(早紅枾) - 일찍 익은 감. '조홍시'라 해야 옳은 듯함.

유자(柚子) - 추운 지방에 자라는 귤(橘)의 한 가지.

반길 이 - 반가워할 사람. 즉, 지은이의 어머니를 가리킴.

감상 :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성어(故事成語)

- 옛날 중국 오나라의 육적이, 6세 때에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귤 세 개를

슬그머니 품안에 숨겨 나오다가 발각이 되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대답하여, 그 지극한 효성이 모두를 감동시켰다.

- 이 시조(時調)는 한음 이덕형이 접대로 내놓은 감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조라 한다.

- 보통 조홍시가(早紅枾歌)라 불린다.

-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옛글귀를 연상케하는 시조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하며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3. 왕상의 잉어 잡고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같이 하리라.

지은이 : 박인로

왕상(王祥)의 잉어 - 옛날 중국의 왕상이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앓으면서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왕상이 옷을 벗고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려 하였더니, 두 마리의 잉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맹종(孟宗)의 죽순(竹筍) -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맹종은 늙은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니

대숲에서 슬피 울며 탄식하니, 죽순이 겨울에도 솟아 나왔다고 한다.

위의 두 효자의 이야기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고사(古事)이다.

노래자(老來子)의 옷 - 칠순(七旬)의 나이에도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면서

늙으신 부모님을 즐겁게 했다는 효자(孝子) 노래자의 이야기.

양지성효(養志誠孝) - 어버이를 잘 봉양하여 그 뜻을 기리는 정성스러운 효성.

공자(孔子)의 수제자인 증자(曾子)는 효자로서 유명하다.

♣'조홍시가(早紅 歌)'의 둘째 수이다. 중국의 유명한 효자인, 왕상, 맹종, 노래자, 증자 못지 않게 나도 그들처럼 효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기에 훌륭한 성현들은 모두 효자였다는 사실을 유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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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박신자님의 댓글

물고기는 바다에 살며 침묵을 지키고
동물은 땅에 살며 소리를 지르고
하늘을 날고 있는 새는 노래를 한다

침묵은 바다에 속한 것이고
소리는 땅에 속한 것이며
노래는 하늘에 속한 것이다

인간은 이 세 영역 모두에다 몸담고 있다

인간은
바다와 같은 깊이를 안고 있기에 침묵할 줄 알고
땅과 같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기에 소리칠 줄 알고
하늘과 같은 높이를 갖고 있기에 노래 부를 줄 안다

-마하트마 간디-

이존형님의 댓글

사무총장님!!! 사무총장님!!!
많은 사람들이 까마귀의 효심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입니다.

고향 선산의 어느 고목아래서
비오는 날이면
행여나 비 맞을세라.

눈 오는 날이면
행여나 미끄러질세라.

찬 바람 부는 날이면
자식의 옷깃을 여며주시려

가루가되어
고목의 영양제가 되어버린 몸이지만

그 영혼은
자식이 잘 살아가기를
하늘에서 비벼지지않는
손바닥으로

오늘도 빌고 또 빌고 계실
내 엄마 아버지의 영혼이
그립고 또 그리운 하루에 날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회를 뜨면 아주 맛있어 보이는 고기를 잡고 만면에 웃음을 보이시는 부자간의 저 위의 그림 장면이 사무치게 그립고 아름답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마음으로 이제부터 우리 사랑하는 2~3세들에게 孝道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話頭로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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