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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산책-6 [道家의 노자와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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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con_11.gif 老莊과 道家

1. 천의 얼굴을 가진 老子

<老子>와 <莊子>는 더불어 고대 중국의 도가를 대표하는 문헌으로 분류된다. 또 <노자>나 <장자>를 때때로 함께 묶어 이 두 문헌에 들어 있는 사상을 ‘老莊哲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노자’는 춘추시대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와 동시대인이었던 李耳가 지었다고 하고, <莊子>는 전국시대의 맹자보다 약간 늦은 莊周가 지었다고 전해 진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하였던 비운의 지식인 莊周의 저작으로 알려진 <장자>는 오늘날 책 전체가 장주의 저술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의 사상을 담은 철학 저술로 평가 된다.

특히 <老子>와<莊子>는 동아시아의 3대 종교이자 사상, 즉 3교 가운데 하나인 도가의 대표적인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0년 이라는 시공간을 거슬려 이 두 책의 사상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오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따라 두 책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문헌 형태, 시대적 해석의 흔적만을 남기고 있으며 일부의 해석 전통은 사라진 경우도 있다.

‘老子’의 ‘無爲自然’은 단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낭만적 주장이 아니며,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동일하다. 에를 들어 1973년의 馬王堆에서 발굴된 비단으로 된 <帛書德道經>이나 1993년에 발굴된 <郭店竹簡老子>의 발굴, 더 나아가 전국시대 ‘韓非子’의 <解老>, <喩老> 등 法家 문헌에 최초의 <노자> 해석서가 들어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이후 시대마다 달리 해석되었기에 <노자>에는 천의 얼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자>는 한권의 책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사유의 단초가 들어있는 智慧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시기인 기원 후 2~3세기에 성립된 <王弼老子注>나 <老子河上公章句>에서조차 해석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곧 ‘노자’에 관한 이야기는 시대마다 다른 ‘노자읽기’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를 읽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모험이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장자>의 경우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2. 이단의 책, <莊子>

<장자>는 그 첫 두편인 ‘소요유’와 ‘재물론’의 소요와 재물이 크게 유행될 정도로 동아시아 사상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특히 한 대에 발흥한 道敎 전통과 위진시대 이래 문학과 예술 분야에 미친 영향은 결코 필설로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가 늘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사랑받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또한 그에 대한 평가가 늘 호의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장주가 흔히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알려졌지만 <장자>는 전국시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 이었다.

어떤 이들은 <淮南子>를 지은 劉安이 <장자>를 편찬하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어도 유안 이전에 <장자>라는 책은 존재했을 가능성이 의심스럽고, 한 대 중국의 역사가 司馬遷의 <史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장자>라는 책이 역사 기록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행하게 된 것은 더 뒤늦은 魏晉시대인데, 파란만장한 영웅소설 <三國志>의 시대가 끝이 날 무렵 등장하는 ‘竹林七賢의 時代’에 이르러 <장자>는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장자>는 이 시대에 편집된 책이다.

전통사회에서 <노자>와 <장자>는 송대 이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 비운의 운명을 살아가는 절망한 지식인들의 위안, 예술적 해방의 정신, 도교적 양생의 선구자였다. <노자>는 道敎의 성경으로서 지고한 지위를 차지하였고, 지은이 노자는 神의 위치로 까지 격상되어 숭배 되었다. 조금 다르지만 <장자>는 절망한 난세의 지식인들에게는 친구이자 위안이었고 때때로 聖人 孔子의 정신을 계승한 ‘은둔의 사상서’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서구사상과의 만남이 이루어 지면서 <노자>와 <장자>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강력한 사회비판과 해방의 철학, 자유와 평등의 옹호자, 미신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난 합리적 자연관의 대명사로서 이 두 책은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화된 권위주의적 사상에 대한 비판이자 평화를 애호하는 철학으로 <노자>와<장자>는 거듭 태어나게 된다.

3. 無爲의 4가지 意味

흔히 ‘無爲’는 고대 중국의 諸子百家 가운데 하나였던 道家의 사상에서 核心的인 개념이라고 한다. 본래 잔혹하고 비정한 정치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으면서 인간사회의 갖가지 부조리와 부패를 고발하고 비판하였던 도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자연질서와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인위적 행동양식인 ‘有爲’에 대한 대안으로 ‘無爲’를 제창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제자백가의 문헌 속에 나타나는 무위는, 도가의 전유물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더구나 그 의미조차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었다.

무위란 대체로 4가지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1) 무위는 ‘帝王의 독특한 行動樣式’을 가리킨다. <장자> ‘천도’ 편에는 “帝王은 무위하고 臣下는 有爲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오늘에 대비하여 이해해 보자. 대통령은 무위를 한다. IMF 구제금융사태 당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제의 안정이다. 그렇다고 국가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자질구레한 일을 하면서 경제의 안정을 이룰수는 없는 일이다. 그에게는 이 일 말고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의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많다. 대통령은 단지 각 부처의 장관에 적합한 인물을 선임하여 각각의 일들을 맡기고,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들에 대한 자문을 받고 결정하는 일을 할 뿐이다. 이런 식의 행위를 옛날에는 ‘무위’라고 하였다. <老子>에서 ‘無爲를 행한다’ (爲無爲)라고 한 표현은 이런 맥락에서 가능한 것이다.

2) ‘主術的 無爲’

孔子도 <論語>에서 “無爲하면서 잘 다스린 분은 아마도 순 임금일 것이다. 그는 자기 몸을 공손히 하여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같은 정치적 성격의 無爲 라해도 그 내용은 판이하게 다른 점이 있다. 공자의 무위는 군주가 도덕적인 모범을 보임으로써 모든 신하들이 그의 덕에 감화되어 모범적으로 실무를 처리해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권장한다면, ‘韓非子’로 대표되는 法家에서는 엄격한 법을 제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상벌을 철저하게 집행함으로써 신하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통제를 권장 하였다.

즉 전자가 백성을 위주로 하는(爲民) 부드러운 道德的 統治方式이기 때문에 孟子의 용어를 빌리자면 ‘王道的 無爲’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의 무위의 의미인 것이다. 이와 달리 法家는 강력한 군주권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면서 효율적인 하위 통제 시스템을 주로 한다는 의미에서 ‘主述的 無爲’라고 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의 의미이다.

3) ‘자연스러운 행위 혹은 억지로 하거나 의식적으로 하지 않은 행동방식’의 무위이다.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여름이 되면 꽃이 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이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自然)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사람이 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가에서는 이런 본성을 ‘性’이라하고, 도가 에서는 주로 ‘德’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이 3번째 의미에는 문화적인 것 마저 포함된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듯 사람이 예절에 따라 사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세계든 인간세계든 그런 자연스러운 것은 하나로 꿰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옛사람들은 이를 ‘道’라는 한 글자로 표현하였다.

4) ‘多樣性의 尊重’의 意味이다.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 도가의 입장이었다. <장자> ‘소요유’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장자의 친한 친구였던 혜시가 말했다. “내게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옹이도 많고 줄기도 울퉁불퉁하여 도무지 쓸모가 하나도 없소이다(無用).”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 나 같으면 그 나무를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심어놓고, 그 주변에서 하는 일 없이(無爲) 어슬렁거리다 그늘 아래에서 낮잠이나 자겠소이다.”

이 이야기는 도가에서 말하는 無爲의 意味를 암시하고 있다. 커다란 나무를 보는 혜시와 장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가치기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혜시는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입장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고, 장자는 이와 시각을 달리한 것이다. 즉 관점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장자의 말 속에는 예리한 정치적 비판이 담겨 있다. 늘 전쟁에 골몰해야 했던 당시의 지배자들에게 인간이란 오로지 농사 짖는 노동력과 전쟁에 나가는 군사력으로만 볼뿐 그 각각의 삶은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대낮에 장정이 낮잠을 잔다는 것은 결코 국가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장자는 그런 한가로운 거드름도 삶의 일부분이며, 각자의 삶 속에서는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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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정해관님의 댓글

존경하는 모악산 도사님! 바쁘신 중에도 거의 유일하게 따분한 내용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지덕지 입니다.
이른바 노장사상의 대표적 화두인 '무위'에 대한 해석은 상기와 같이 4가지로 나타나는데,

"아니, 때가 어느때 인데, 하릴없이 타이완이나 나다닐 생각을 하고..." 라는 견해와
"성혼축복 33주년이야말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천주사적 의미의 중요 기념인데, 여행을 통해 우리들의 영원한 '대륙에의 꿈'을 구상하고 실현시킬 '뉴턴의 사과'나 '원효를 귀향시킨 해골바가지'라도 발견할지 누가 아나?"
와 같은 견해차도 각각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오늘도 '양성이씨 억만세!' 입니다요.

이판기님의 댓글

흠... 장자는 나무그늘에서 어슬렁거라다 느러지게 나자빠져 자고,
愚公은 山洞에서 거적대기 뒤집어 쓰고 하릴없이 느러지고
兩千年의 시공을 뛰어 넘어 닮은꼴을 찾았읍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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