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24. <푸른 오월> 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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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4. 푸른 오월
盧天命
靑瓷빛 하늘이,
六모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앞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 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머루순이 벋어 나오던 길섶
어디 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시집 <窓邊> 1945.
5월의 싱그러운 훈풍처럼 아름답고 시원스러운 시다. 감정이 풍부하게 빛나고, 계절 감각이 향수와 어우러져 感傷이 무슨 윤기처럼 흐르며 동적인 생명력이 구김살 없이 화려하다.
[盧天命 1912~‘57] 황해도 장연 출생. 초명은 基善. 6세때 홍역으로 사선을 넘기고 天命으로 개명. 진명여고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시원> 동인으로 데뷔. 중외일보 학예부 기자. 잡지 <여성> 기자로 활약. 독신으로 생을 마침. 시집에 <산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 수필집<산딸기>. 소설<사월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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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직업 작가,언론인
국적 대한민국
장르 시
노천명(盧天命, 1912년 9월 2일 ~ 1957년 12월 10일)은 한국의 시인이다.
생애
황해도 장연 출생이다. 본명은 노기선(盧基善)이나, 어릴 때 병으로 사경을 넘긴 뒤 개명하게 되었다.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밤의 찬미〉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조선중앙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시 〈사슴〉이 유명하다.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시에는 주로 개인적인 고독과 슬픔의 정서가 부드럽게 표현되고 있으며, 전통 문화와 농촌의 정서가 어우러진 소박한 서정성, 현실에 초연한 비정치성이 특징이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중에 쓴 작품 중에는 〈군신송〉등 전쟁을 찬양하고 전사자들을 칭송하는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화여전 동문이며 기자 출신으로서 같은 친일 시인인 모윤숙과는 달리 광복 후에도 우익 정치 운동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50년 북조선의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피신하지 않고 임화 등 월북한 좌익 작가들이 주도하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문화인 총궐기대회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가,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조경희와 함께 부역죄로 체포, 투옥되었다. 모윤숙 등 우익 계열 문인들의 위치를 염탐하여 인민군에 알려주고 대중 집회에서 의용군으로 지원할 것을 부추기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징역 20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했으며, 몇 개월 후에 사면을 받아 풀려났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총 14편의 친일 작품이 밝혀져[1]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보성전문학교 교수인 경제학자 김광진과 연인 사이였다. 노천명과 절친한 작가 최정희가 시인 김동환과 사귄 것과 함께 문단의 화제 중 하나였고, 두 사람의 사랑을 유진오가 소설화하여 묘사한 바 있다. 김광진은 광복 후 가수 왕수복과 함께 월북했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면의 천주교 묘지에 언니와 함께 묻혀 있다.
저서
시집
《산호림》(1938)
《창변》(1945)
《별을 쳐다보며》(1953)
《사슴의 노래》(1958)
《노천명 시집》(1972)
수필집
《산딸기》(1948)
《나의 생활백서》(1954)
《사슴과 고독의 대화》(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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