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역사6. 오스만제국의 성립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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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역사6. 오스만제국의 성립과 발전
오스만 베이(Osman Bey)에 의해 1299년 오스만공국이 수립된 시점을, 술탄이 폐위되는 1922년까지 계속된 오스만제국의 시작으로 본다. 13세기 경 셀주크 세력의 와해로 몽골릐 종주권이 확립되어가자, 몽골 치하에 점령되지 아니한 아나톨리아 일부에서 여러 독립된 투르크멘 공국들이 등장했다. 오스만도 그러한 독립 공국들 중 하나를 통치했다. 그러나 동부의 보다 강력한 투르크멘 공국인 게르미얀에 포위되자, 오스만 세력은 보스포러스와 마르마라 해변으로 이주하여 비잔틴 영토를 잠식해 갔다. 오스만 주위에는 이주 유목민을 비롯한 도시 실업자들이 생게를 확보하고, 이슬람의 전파라는 종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 당시 문란한 내정으로 몰락의 길을 걷던 병든 비잔틴의 상황이 오스만과 그를 이은 후계자들, 오르한(Orhan, 1324~1360), 무라트 1세(Murat 1, 1360~1389), 바예지트 1세( Bayezit1, 1389~1402) 등에 의한 효과적인 비잔틴 공략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2대 술탄 오르한 통치가 시작되는 1324년에 부르사를 점령함으로써, 공국에서 하나의 국가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때부터 행정과 재정, 군대가 정비되어 국가의 체제가 기틀을 잡아 갔다. 특히 오르한은 비잔틴의 군대제도를 도입하여 기독교 용병을 모집하였다. 이는 유목 전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전통적인 오스만군의 약점을 보완하는 대신, 비잔틴의 공략에 전술적 . 심리적 상승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로써 아나톨리아 서북부의 주요 도시들이 오스만의 영토가 되었다.
오르한은 처음으로 발칸반도에 진입하게 되었다. 유럽 땅에 상륙한 오스만군은 비잔틴의 세력 약화와 그 실체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또, 오르한은 비잔틴 내분에 적극 개입하면서 비잔틴 황제 콘타쿠제누스의 딸 테오도라와 결혼 했다.
오르한에 이어 등극한 그의 아들 무라트 1세는 더욱 적극적인 유럽 진출을 시도하여, 1361년 에 아드리아노플을 점령하고 오스만국의 새 수도로 삼았다. 그는 에디르네로 개칭된 새로운 유럽 지역의 수도를 중심으로 트라키아 지역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마무리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사방에서 압박하였다. 특히 콘스탄티노플과 다뉴브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당한 비잔틴은 곡물과 조세 공급이 중단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이에 비잔틴 황제 요한 5세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 교회를 연결하여 오스만에 대항하기 위한 유럽의 지원을 호소했으나, 뚜렷한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이로써 무라트 1세는 도전적인 군소국가들을 복속시키면서 비교적 쉽게 발칸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그의 발칸지배는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발칸동맹 연합군을 격퇴함으로써 완성되었다.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중부, 세르비아가 오스만의 수중에 떨어졌고, 보스니아. 알바니아. 그리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성채가 오스만의 위협에 직면했다. 당시 유일한 저항 세력은 헝가리 정도 였다.
발칸에 오스만 세력을 구축한 무라트 1세는 직접 통치방식 보다는 연공과, 유사시에 군대지원을 조건으로 기존 군주를 인정하고 활용하는 간접 통치방식을 택했다. 이는 정복에 필요한 물자와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측면뿐만 아니라, 정복 후에 따르는 피지배 세력의 끈질긴 저항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기존 군주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해 주고, 정복지의 문화적 전통을 인정해 주는 무라트 1세의 통치방식은, 그 후 오스만 제국 시대의 기본 대외정책으로 정착 되었다.
무라트 1세를 이은 바예지트 1세는 유럽 공략보다는 아나톨리아에서 고조되고 있는 투르크멘 공국들의 봉기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바예지트는 1391년에 카라만을 공격하여 패퇴시켰고, 동부 아나톨리아의 투르크멘 공국들을 복속시켰다. 그러나 바예지트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강적을 만났다. 중앙아시아와 이란, 아프가니스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강력한 국가로 등장한 티무르의 서진(西進)이었다. 바예지트와 티무르의 대격전은 1402년에 앙카라 평원에서 이루어졌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군이 참패하고 바예지트는 생포된데 이어 사망하였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은 후계 술탄들에 의해 유럽의 발칸반도에 대한 공략을 본격화하여 많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제 서서히 유럽의 마지막 강자인 비잔틴에 대한 공격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1451년에 무라트 2세가 사망하고 메흐메트 2세가 정식으로 술탄 위를 계승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강력한 유럽 원정을 시작했다. 메흐메트 2세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정복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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