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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역사5. 압바스 왕조(750~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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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역사5. 압바스 왕조(750~1258)

우마이야 왕조에서 압바스 왕조로의 변화는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그것은 단순한 군사적 음모나 쿠데타가 아니라, 강력한 하부조직과 선전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왕조의 수도를 아랍 중심의 다마스커스에서 페르시아 문화의 바탕인 바그다드오 옮긴 사실에서도 나타나지만, 압바스 지배층은 아랍게와 비아랍계 무슬림의 조화로운 융합을 꾀하였다. 따라서 압바스 왕조는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범이슬람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이리하여 후대 역사학자들은 흔히 우마이야 왕조까지를 아랍인이 이민족을 지배한 “아랍제국 시대”로 칭한 반면, 압바스 왕조를 “이슬람 제국”이라고 부른다.

이 왕조에서는 비아랍인들의 아랍화가 활발히 추진되어 아랍, 시리아, 페르시아적인 요소들이 골고루 융합된 보다 폭넓은 이슬람 문화가 발전하여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정복민으로서의 아랍 민족 우월주의는 퇴색하고 이슬람의 전파자, 수호자로서의 아랍인, 즉 인종적 의미의 아랍인에서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을 믿으며 스스로 아랍인으로 자칭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문화적 개념의 아랍인이 보편화 되었다. 이런 아랍화 물결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전역에 번져, 오늘날의 아랍권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압바스 왕조는 5대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Harun al-Rashid, 786~809)와 그의 아들 마문(Ma'mun,813~832)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바그다드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과 함께 세계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성하였고, 활발한 육해상 실크로드의 개척으로 동서문물이 물밀듯이 유입 되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제지술이 도입되자 종이혁명을 가져와, 그리스. 로마의 고전이 번역 및 재해석 되고, 학문이 꽃을 피워 이슬람의 르네상스를 맞이 하였다. 제지술의 도입은 751년 압바스 군대의 이븐 살리히(Ibn Salih) 장군과 당나라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탈라스 전투의 결과인데, 중국이 이슬람군에 패함으로써 포로로 잡힌 중국의 제지기술자에 의해 종이가 이슬람 세계 전역에 확산 되었다. 더욱이 이 시기에 저술된 많은 아랍 사료에서 신라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어, 우리나라와 아랍 세계의 긴밀한 교류와 폭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압바스 왕조는 제국 영토의 방대함, 중앙정부의 내분과 지방 총독들의 할거, 이민족의 잦은 침입 등으로 9세기 중엽부터 급격히 쇠약해졌다. 우마이야 왕조가 망한 뒤 그 일파가 스페인에 세운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자가 969년 스스로 칼리프로 자칭하며 바그다드에 맞섰고, 이집트에서는 시아파의 새로운 이슬람 국가가 독립하여 파티마 왕조를 열었다.

또한 바그다드의 약화는 중앙아시아 지방에 할거하던 이란께와 투르크계 군소 국가들의 성장을 자극 하였다. 소그드 지방의 사만조와 카스피해 남쪽의 브와이브조는 이란 문화를 표방하였다. 투르크계로서는 카라한조와 가즈나조가 특히 중요한데, 이 왕조가 이슬람화됨으로써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종족들의 이슬람화가 가속화되었다.

[투르크 이슬람시대의 개막과 압바스 왕조의 멸망]

9세기 이후 압바스 왕조의 약화와 내분으로 이슬람세계는 여러 군소국가로 분열된다. 이들 국가들은 11세기 셀주크투르크가 이슬람세계를 통일할 때까지 지역별로 왕조를 이루면서 서로 쟁패하였다. 이 시기의 여러 군소 이슬람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1)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

스페인 ; 후 우마이야조(756~1036)

모로코 ; 이드리스조(788~974)

튀니지 ; 아글라브조(800~909)

이집트 ; 툴룬조(868~905), 익시드조(935~966), 파티마조(909~1171), 아유브조(1169~1252), 맘룩조(1250~1517) 등

2) 동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

타히르조(821~873), 사파르조(867~1495), 사만조(819~1005), 카라한조(922~1211) 가즈나조(977~1186), 브와이브조(945~1055), 셀주크조(1037~1194), 하레즘샤조(1077~1231) 등.

분열되었던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세계는 11세기 투그릴 베이(Tugril Bey)가 이그는 셀주크투르크 왕조에 의해 재통일 되었다. 그들은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압바스 제국의 칼리프로부터 술탄(Sultan)의 칭호를 받았다. 셀주크투르크는 3대 술탄 말리크 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시리아, 팔레스타인, 소아시아를 포함하여 동쪽으로는 텐샨산맥에서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였다. 특히 명재상 니잠 알-물크(Nizam al-Mulk)의 여러 뛰어난 개혁정책은 셀주크조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 하였다.

한편 1071년 셀주크는 비잔틴군을 격퇴하고 아나톨리아와 소아시아 지역에 진출함으로써 이 지역이 이슬람화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셀주크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비잔틴제국에 대한 압박은 십자군 전쟁을 유발하여, 이후 이슬람세계와 기독교 세계가 근 200년 동안 서로 치열하게 격돌하게 되었다.

셀주크조는 1157년 술탄 산자르(Sanjar)의 사후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면서 급격히 쇠퇴하였다. 셀주크조는 아나톨리아의 터키 셀주크조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다가 당시 새로운 세력으로 진출해 오던 몽골에 예속되었다. 한편 1256년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몽골제국의 대캉인 몽케의 동생 훌라구가 사마르칸트 총독으로 부임한 후, 1258년 2월 대규모 군대로 바그다드를 함락 시켰다. 이로써 500년 역사의 압바스 제국이 멸망하였다. 이는 다시 말하면 아랍이 주도하던 이슬람시대의 실질적이고 공식적인 종말을 의미하였다. 이제 이슬람 세계는 오스만 제국이 관장하는 터키인 중심 체제로 변환되었다.

그 후 이슬람 세게는 16세기에 들어 이란지방의 시아파 사파비조(1501~1732)와,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가 인도에 건국한 무갈제국(1526~1856), 이스탄불의 오스만 제국(1281~1924)으로 크게 3분되었다. 칼리프직을 승계하여 이슬람세계의 실질적 지도국이 된 오스만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풀을 점령하고 비잔틴 제국을 멸함으로써 유럽에 대한 이슬람세계의 우위를 결정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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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고선지 [高仙芝, ?~755]
고구려 출신의 당(唐)나라 장수. 톈산산맥 서쪽의 달해부를 정벌했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사라센제국과 동맹을 맺은 72개국의 항복을 받고 사라센제국의 동진을 저지했다.

고구려가 망하자 아버지 사계(舍鷄)를 따라 당나라 안서(安西)에 가서 음보(蔭補)로 유격장군(遊擊將軍)에 등용되고, 20세 때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안서 절도사(安西節度使) 부몽영찰(夫蒙靈)의 신임을 얻어 언기진수사(焉耆鎭守使)가 되었고, 740년경 톈산산맥[天山山脈] 서쪽의 달해부(達奚部)를 정벌한 공으로 안서 부도호(安西副都護)에 승진하고, 이어 사진도지병마사(四鎭都知兵馬使)에 올랐다.

747년 토번(吐蕃:티베트)과 사라센제국이 동맹을 맺고 당을 견제하려고 동진(東進)하자,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에 발탁되어 군사 1만을 인솔, 파미르고원을 넘어 사라센제국과 동맹을 맺은 72개국의 항복을 받고 사라센제국의 동진을 저지, 그 공으로 홍려경어사중승(鴻'A卿御史中丞)에 오르고 이어 특진 겸 좌금오대장군동정원(特進兼左金吾大將軍同正員)이 되었다. 750년 제2차 원정에 나가 사라센과 동맹을 맺으려는 타슈켄트[石國]를 토벌하고 국왕을 잡아 장안(長安)에 호송한 공로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되었으나, 장안의 문신들이 포로가 된 타슈켄트 국왕을 참살했기 때문에 이듬해 서역 각국과 사라센이 분기하여 연합군을 편성, 탈라스의 대평원으로 쳐들어왔다.

이를 막기 위해 다시 7만의 정벌군을 편성, 제3차 원정에 나갔다가 크게 패하고 후퇴, 귀국 후 밀운군공(密雲郡公)에 봉해졌다. 755년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토군 부원수로 출전, 선발군으로 나가, 패전한 우군을 구원하기 위해 방어 담당지역을 무단이동한 사실에 대하여, 평소 사원(私怨)을 품고 있던 부관이 과장하여 밀고(密告)함으로써, 진중에서 참형되었다.






정해관님의 댓글

[탈라스 전투]
장소 : 카자흐스탄 탈라스
결과 : 아바스 왕조의 승리

교전국
아바스 왕조 : 당나라
지휘관
지야드 이븐 사리프 :고선지
병력
정확한 숫자는 알려져 있지않음
중국쪽 기록에는 15만명이라 주장함 30,000명(이중 20,000명이 당나라군, 나머지는 주변 동맹군)

탈라스 전투 (Battle of Talas)는 751년 7월~8월사이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군 티베트가 압바스 왕조, 카르룩 연합군을 상대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영토인 타쉬겐트 부근 탈라스 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투였다.

배경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로써 서역(동 투르키스탄)에 주둔한 당나라 장군 고선지가 서쪽의 소그디아나(서 투르키스탄)에 압력을 가하자 샤슈(현재의 타슈켄트)의 왕은 시르강 서쪽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 요청에 응해 747년 우마이야 왕조 세력을 메르부에서 몰아낸 아바스 왕조의 호라산 총독이 된 아브 무슬림은 부하인 지야드 이븐 사리프을 파견시켜 시야드가 이끄는 아바스 왕조군과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은 텐산산맥 서북쪽 기슭의 탈라스강에서 격돌했다.

전투 중 당나라군에 속해있던 텐산 북쪽에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 카르르크가 아바스 왕조로 돌아섰기 때문에 당나라군은 괴멸하고 전투는 패배했다. 고선지를 비롯한 지휘관 및 소수의 병사만이 탈출했다.

결과
압바스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세력의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당나라는 상당수의 병사가 포로로 붙잡히게 되었고, 그둘중에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는 기술자가 포함되어 있기에 제지술이 이슬람세계에 퍼지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는 이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면서 국력이 쇠퇴해 더이상의 서역경영은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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