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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8 < 歸蜀途>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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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8 < 歸蜀途>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춘추> 1943.10.

花 蛇 (화사)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니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석유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은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

--<시인부락> 1936. 12.

서정주 제1기 시대의 인상적인 시로 세기말적인 보들레르의 마성이 그의 힘찬 원생주의와 조화된 세계다. 난폭하다할 만큼 거칠은 육성으로 낭자한 사디즘과 관능을 보인다.

[서정주 1915~ 2000 ] 호는 未堂. 전북 고창 생. 중앙불교전문강원 수학. 해방 후 동아일보 문화부장. 문교부 예술과장. 동아대. 조선대. 서라벌 예대. 동국대 교수. 동인지 <시인부락> 주재함. 사상의 기조는 영원주의. 영생주의에, 사조상의 배경은 주정적 낭만주의에, 예술관은 심미주의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평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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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정해관님의 댓글

서정주
출생일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사망일 2000년 12월 24일
서울
직업 작가,교육인
국적 대한민국
장르 시
서정주(徐廷柱, 일본식 이름: 達城靜雄, 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는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한국의 이른바 생명파 시인이다. 호는 미당(未堂)이다.

생애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출생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36년에 김광균·김동리·오장환 등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고 당시,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해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고백을 한 바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되었다.[2]

해방 후에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파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여, 이른바 순수 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좌파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과 대결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줄곧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고택이 남아 있으나 2008년 현재 폐가로 방치되어 있다.[3]

미당의 시 경향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탐미적인 경향이 보인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수많은 시인, 문학가가 미당 서정주의 그늘 아래에 있느니 만큼, 그 평가는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진보 문학가 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미당의 영향을 받았다. 고은이 대표적이다. 미당 시의 특징은 바로 우리말을 다루는 그의 천부적인 감각이다. 그의 고향 전라도의 사투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미당의 시 언어는 민족어의 가능성을 한껏 키운 것으로 평가된다.[4]

시집
《화사집》, (1941)
《귀촉도》, (1946)
《시선》, (1955)
《신라초》, (1960)
《동천》, (1968)
《질마재 신화》, (1975)
《늙은 떠돌이의 시》, (1993)
번역 시집 《만해한용운한시선역》, (예지각, 1983) : 한용운의 한시를 가려 뽑아 번역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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