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산책 : 위대한 스승, 孔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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偉大한 스승, 孔子
춘추전국 시대에 활동한 제자백가 중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상가 그룹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의 4학파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첫 번째를 장식하는 철학자 집단인 유가의 비조는 공자이다. 그에 대한 최초의 전기인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는 그가 송나라의 몰락 귀족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창고지기나 동산지기 등 천한 일에 종사했지만, 당시로서는 귀족 들에게만 전수되었던 육예의 과목을 제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3,000에 이르는 제자를 양성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는 주나라 문화의 부흥을 꿈꾸며 실제로 詩書를 편집하고 六藝를 완성하는 등 고문화의 복원에 힘쓰는 한편 그것을 제자들에게 전수함으로써 아무도 시행하지 못했던 사학을 창시하여 위대한 교육자가 되었는데, 그의 이상은 그의 사후 제자들이 기록한 최초의 어록인 <論語>에 잘 나타나 있다.
1. 차별 없는 가르침
“오직 가르침이 있을 뿐 부류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는 간명한 표현 속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공자의 문하에는 남궁괄이나 맹무백 같은 귀족의 자제들은 물론 번지나 안연 등의 평민 출신들 까지 참으로 다양한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심지어 그의 문하에는 절름발이 었던 민자건이나 천민 출신 이었던 염궁중 같은 이들에 이르기 까지 누구나 속수라는 간단한 예만 지키면 함께 공자의 문하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論語>에 따르면 그는 德行, 言語, 政事, 文學 이라는 4과목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뿐만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시서를 비롯한 고문헌의 전승자로서 六藝의 실천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君子論을 제기함으로써 이상적인 인격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치적으로 불행했던 공자는 앉은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도 없을 정도로 천하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등용해 줄 군주를 찾았지만 끝내 실패하고 만다. 결국 그는 만년에 고국 노나라로 다시 돌아와 어려운 시절을 함께했던 이들을 들면서, “德行에는 안연과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있었고, 言語에는 재아, 자공이 있었으며, 政事에는 염유와 계로가 그리고 文學에는 자유와 자하가 있었다.”고 회고 하였다.
이처럼 그는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의 4가지 중심 과목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그 중에도 德性의 涵養을 무엇보다 강조하였다. 그는 또 그러한 덕성의 함양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면서 이상적인 인간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적 인간을 ‘君子’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2. 君子論
공자에 의해 더없이 강조된 君子는 전혀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儒家 수양론의 근간을 이루는 仁의 실천과 함께 궁극적인 인간상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적 인간이다.
<論語>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군자라는 인간상을 생산물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노하우를 가진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군자는 이익을 함께 나누지만 소인은 이익을 독차지 한다.” “군자는 급한 사람은 도와주고 부유한 사람을 이어주지는 않는다.” “군자는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지만 이익을 위해 편 가르지는 않으며, 소인은 이익을 위해 뭉치지만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는다.” 고 한 것이 모두 그런 예 이다. 아울러 “생산량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생산물이 그르게 분배되지 않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하여 사회적 문제는 생산물의 부족이 아니라 생산물의 불공정한 분배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공자는 君子論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한편 그러한 사람이 다스리는 자율적인 공동체를 구상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통치자의 인격에 바탕한 덕치주의로 표현되었다.
3. 德治主義
공자는 물리적인 힘으로 백성들을 강제로 다스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공동체의 목적을 자연스럽게 달성하는 방안으로 덕치주의를 적극 주장하였다. 그는 “덕으로 정치를 펴는 것은 마치 북극성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해 도는 것과 같다.”고 하여 덕치를 ‘하는 일 없이(무위)목적을 이룰 수 있는 극대의 효용성을 지닌 통치방식’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행정적 명령으로 다스리고 형벌로 처벌하면 백성들이 도망치려고만 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고, 德으로 다스리고 禮로 인도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스스로 찾아오게 된다.”고 하여 덕치야 말로 강제적인 수단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법치보다 우위에 있는 최선의 통치방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곧 공자에게 바람직한 공동체는 행정적 명령이나 사법적 명령에 의해 강제로 유지되는 사회가 아니라 도덕적 양심에 입각한 자구력을 갖춘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지하는 사회였으며, 이는 <논어>의 또 다른 곳에서 고대의 제왕이었던 ‘순’이 실현했다는 ‘무위의 정치’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등 사회적 약자도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예를 들어 “일을 잘하는 사람을 등용하여 일을 잘못하는 사람을 가르친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부정직한 사람을 가르치면 부정직한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여 노나라의 계손씨를 비롯한 봉건사회의 상층부에게 사회적 약자를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엿을 뿐만아니라 “훌륭한 사람이 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 잔인한 사회 분위기를 극복하고 사형을 없앨 수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사람 죽이는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하여 사회적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사람조차 포기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를 지향했다.
4. 사람다움, 仁의 追求
공자는 개인에게 도덕적 수양을 통해 스스로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위정자들에게는 덕치를 통해 자율에 기초하는 이상사회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모든 사람은 仁으로 표현되는 인간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仁이란 곧 어진 마음,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자의 제자들이 가장 빈번히 물었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공자는 仁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제자들의 질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仁이라고 대답하기도 했고, 때로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 인이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심지어 말이 많았던 제자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仁한 사람은 말을 적게 한다’고 가르친 적도 있다. 또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인정 받았던 안연이 仁에 대해 묻자 그는 ‘克己復禮爲仁’, 곧 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여기에서 사욕은 자신만을 위한 배타적인 욕망, 곧 차지하고 싶은 독점적 소유욕을 지칭하며 禮는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공적인 가치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인은 이기심을 버리고 利他心을 발휘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대란의 시대를 맞아 14년 가까이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는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어져 제자들이 쓰러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군자는 본래 곤궁한 법”이라며 깜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로 제자들을 깨우쳤으며,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씨가 “무도한 백성들을 죽여 올바른 도리를 지키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한 제안에 대해 위정자로서 백성들을 죽인다는 것은 말조차 꺼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단호하게 반대하는 한편, “훌륭한 사람이 나라를 백년 동안 다스린다면 잔인한 사회 분위기를 이기고 사형제도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같은 孔子의 정치적 이상은 구현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제자들이 기록한 어록 <論語>를 통해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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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우리 동지 이창운 명강사의 ‘메시아강림론’ 대목입니다.
제사장, 교법사 : “얘, 니네 선생이 메시아라면, 그에 앞서 오신다고 기록된 엘리아는 누구며 언제 왔어?”
베드로 등 제자들 : “???..엘리아? 나도 잘 모른디. 그리고 그런 말이 어디에 써 있다고?
나, 일이 좀 바빠서 그런 내용은 아직 못 읽었는디...”
(‘바빠서’ 못 읽기는... 그 당시 어부들은 문자 해독도 어려운 일. 그저 생계에 관심만 있었지, 구약성경에 나오는 내용은 알리도 없고, 그러니 식자층과는 ‘대화’가 안 되었을 터)
메시아요, 재림주요, 인류의 참부모되시며 평화의 왕이신 참부모님을 아무리 자랑하고 소개해도 성서 좀 안다는 기성교인들이나 철학이나 신학 좀 했다는 식자층은 ‘믿는 우리’에 대하여 정상적인 시각이 아님을 느끼는 때가 더러 있었지요.
그럴수록 우리는 성서에 대하여도 많이 알아야 하고, 신학이나 철학에 대하여도 외면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뜻을 전하는 일이 꼭 이 일과 비례하는 것은 아닐 줄 압니다.
위에 글로써 관심을 표해 주시고 ‘과분한 칭찬’도 해주시는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삼고자 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 분들의 ‘신들메도 감당치 못할 정도의’ 훌륭하신 전문가들이 속속 입장하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박사님들, 교수님들, 목사님들, 교장님들, 선생님 등등을 비롯해서 천하의 1800가정 인데요!
이판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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