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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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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벼랑 끝서 불러보는 마지막 희망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5>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감칠맛 나는 평안도 방언 토속 정취 압권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출처 : 고형진 엮음,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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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 기행(夔行) ▦오산중학,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 학원 졸업 ▦1935년 시 ‘정주성(定州城)’ 조선일보에 발표 등단 ▦1936년 유일한 시집 <사슴> 간행 ▦해방 이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 별세

◆해설

백석은 일제 강점기 시인 중 가장 독자적인 개성을 드러냈다. 1935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36년에 시집 <사슴>을 출간했고 한글작품 발표가 가능하던 1941년 4월까지 지속적으로 시를 발표했다.

평안도 산골 마을의 토속적 정취를 감칠맛 나는 소박한 방언으로 표현한 백석은 점차 마음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민을 시에 담아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1948년 10월 <학풍>지에 게재되었는데 해방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와 ‘유동’은 지명이고 ‘박시봉’은 사람의 이름이다. ‘방(方)’은 편지를 보낼 때 세대주 이름 아래 붙여,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제목은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뜻이다. 제목의 평범한 뜻과는 달리, 이 시는 소중한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외로운 떠돌이가 되어 바람 센 거리를 헤매는 화자의 가련한 처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첫머리에 나오는 ‘어느 사이에’라는 말은 화자의 가혹한 운명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자신도 지각하지 못한 사이에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실의 끝판으로 내몰린 자의 뼈저린 탄식이 이 말에 응축되어 있다.

화자는 다가오는 추위를 피해 가까스로 누추한 방을 하나 얻어 몸을 눕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밀려드는 공허감과 무력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슬픔과 회한이 가슴에 사무쳐 종국에는 죽음까지 떠올린다. 그 위기의 순간에 화자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행동을 취한다.

이것은 상실의 끝판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삶을 운명에 귀속시키고 체념한 화자는 다시 고통을 안겨줄지 모르는 외부의 시련에 맞서 자신을 지켜줄 상징적 표상을 설정한다. 그것이 바로 ‘굳고 정한 갈매나무’다.

‘먼 산 뒷옆에 바위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둠 속에 눈을 맞으면서도 의연한 자태를 유지하는 갈매나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이 시는 평이한 언어와 표현으로 인간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여기 담긴 감정의 추이 과정은 인간 체험의 보편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기에 이 시는 상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위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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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정해관님의 댓글

길상사
■ 자연의 적막과 침묵을 즐긴 길상사

“오랜만에 오신 김에 인근에 있는 길상사 한번 구경하고 가지요?”
자주 만나지 못해도 든든하게 떠올려지는 오래된 친구의 권유에 따라 난생처음 길상사에 들어섰다.

길상사가 유명한 것은 알지만, 촉촉한 비를 맞으며 들어선 길상사의 분위기는 도심과 종교를 잊어버릴 만큼 깊은 초록의 운치가 느껴졌다. 마치 청정 오지의 수도 도량에 몰래 들어선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곳은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삼대요정중 하나인 대원각이었는데,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감화를 받은 대원각 주인 김영한 여사가 7,000여 평에 이르는 대원각 터를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시주하면서, 법명인 길상화를 딴 길상사를 탄생시킨 것이라고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빗소리, 새소리, 계곡물 소리가 도심의 모든 소음을 잠재운다.
특정 종교인들만의 절이라고 하기보다는 누구든 목마른 사람이 목을 축여갈 수 있고, 영혼에 굶주린 사람이 깊은 침묵의 사색에 잠길 수 있으며, 지치고 힘겨운 사람이 편안한 휴식을 갖게 하는, 마치 정원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길상사 개원식에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께서 경축사를 시작했던 것처럼, 길상사는 타종교 사람들을 위해 침묵의 집과 찻집을 개방하고 있다. 편협하지 않은 종교 본연의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을 보는 듯하다.

오늘 이곳을 찾은 나도 불교신자가 아니고, 나에게 길상사를 방문을 권유했던 분 또한 타종교의 지도자이시다.

“자비심이란 이웃으로 향한 따뜻한 그 마음이 아니겠는가?”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닌 하나이며, 어렵고 외로운 이웃들과 더불어 살며, 각자의 마음을 항상 맑고 향기롭게 지니고 살아가자는 길상사의 근본취지가 오래도록 실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촉촉한 비를 맞으며 초록 숲과 야생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극락전, 범종각과 찻집, 침묵의 집, 길상선원과 적묵당, 참선방 등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짧은 산책과 묵상의 시간을 통해 나뭇가지에 다가앉는 비둘기들처럼 평화와 행복이 빈 가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삶의 무게에 힘들고 지친 사람이 있다면, 비 오는 날의 길상사를 천천히 걸으며 무거운 마음을 비우고 자연 속의 적막과 침묵을 즐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해관님의 댓글

♣ 아름다운 인연사[人緣事] ♣

우리네 인연사의 아름다운 사연[事緣]이다.

전남 목포의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고은시인이 승려[일초화상]로서 전국을 돌며 법회를 펼치던 때,
우연히 그 강론을 듣고 대오각성하여 속세를 등지고 말았다.

백석시인의 시를 늘 암송하던 학생은 나중에
법정[法頂]스님으로 세상에 맑은
글을 많이 쓰시는 존경받는 학승으로 널리 유명해지신 스님이시다.

승려였던 고은은 오히려 환속하여 뛰어난 일가를
이룬 시인이 되기도 하였으니, 아기자기한 인연의 고리가 아닌가!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백석시인의 작품들에
열렬히 매료되었다는 점이리라.

이 백석이 시인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다가,
어느 고운 기생하고 로맨스가
생기었는데......식민지시절, 해방정국,

전쟁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개인사는 철저하게 유린이 되었고,
백석도 평북 정주로 돌아간 이후로
소식이 아득하게 끊어지고 말았다.

사랑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하던가!
이 기생은 백석을 사모하는 마음만으로 정조를 지키며,

늙어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끝났으면 아무도 몰랐을 터이나......

후반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백석의 아주 많이 늙은 기생은,
여전히 백석의 연인으로 마음이 변하지 않아

연인의 시를 좋아하는 법정스님을 찾아가,
한 채의 아름다운 절을 기증하였으니
그 절이 바로 "길상사"이다. 법정스님이 회주로 계시다가

그도 벼슬이라 무겁다며, 물려주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백석의 늙은 여인과 잘 어울리는 하모니를 이루니
메마른 세상사에 이런 소중한 로맨스에다, 선행이니
누구에게나 정담[情談]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기로 하였다.
백석이 월북시인으로 남쪽에서는 잊혀진 시인이 되고 말았지만 ,

미당 서정주의 시에 백석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작은 모임이지만 "조선의 가장 천재적인 시인" 구락부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국내에서 가장 애송되는 시집”으로
백석의 “사슴”이 당당하게 추천받았다는 기사를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조라가망도 아주 서투른 시를 쓰면서도,
마음의 눈높이는 늘 백석의 그늘에서 서성이었으니.....
≪ 조라가망 ≫


정해관님의 댓글

◈ 정주성[定州城] ◈







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심지에 아주까리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던 무너진 城[성]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魂[혼]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커다란 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城門[성문]이

하늘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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