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 유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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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슬픔을 삭이는 父情… 모던한 감각으로 형상화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4>정지용
유리창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 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 들은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 갔구나!
출처 : <정지용 전집 1>, 민음사, 2003
◆약력
▦1902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 휘문고보,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졸업. 유학 중이던 1926년 유학생 잡지 <학조> 통해 등단 ▦1929년 귀국해 휘문고보에서 교편. 광복 후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 역임 ▦1930년 박용철, 김영랑 등과 동인지 <시문학> 창간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일 때 이상(李箱)을, 1939년 <문장> 편집위원으로 청록파를 등단시킴 ▦1935년 첫 시집 <정지용시집>, 1945년 <백록담> 출간 ▦1950년 6ㆍ25전쟁 중 납북, 그해 9월25일 사망
◆해설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 시인이다. 그의 언어에 대한 감각은 시적 대상에 대한 과도한 감정의 투사 없이 그것을 선명한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1920ㆍ30년대 시단의 한 주류를 형성했던 김소월이나 김영랑류의 전통적인 서정시와는 다른 시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가 지향한 이 새로운 시적 흐름을 이미지즘 혹은 모더니즘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의 모더니즘은 초기에는 영미모더니즘의 모방의 냄새가 나지만 중기를 거쳐 후기 <백록담>(1941) 시대로 오면 동양적인 감각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시의 이 독특한 동양적인 감각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의 자연은 동화나 합일 같은 전통적인 자연이 아니라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한 대상화된 자연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거나 배제한 채 자연을 관조하고 대상화하여 그것을 균제되고 즉물적인 감각의 언어로 형상화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논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가 우리 현대시사에서 시적 정서와 언어에 대한 모던한 인식을 기반으로 그것을 한 극한까지 밀고 나간 최초의 시인이라는 점에서는 대부분 동의하리라고 본다.
정지용의 ‘유리창’은 시인의 이러한 모던한 감각으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시이다. 이 시의 모던함은 우선 감정을 절제하고 단련하는 방식에 있다.
그것은 ‘눈물을 비눗방울 날리듯 가볍게 날릴 수 있는’ 시인의 태도에서 기인하며, 그것의 구체적인 형상화 방식이 바로 ‘대위법’이다. ‘차가운 것과 슬픈 것’, ‘외로운 것과 황홀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각기 독립적인 정서가 하나의 선상에 놓임으로써 생경한 감정의 중화 내지 절제가 이루어진다.
감정의 대위법은 그의 시적 형상화 방식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하지만 그의 형상화의 탁월성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조형화하는 차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시를 보면 시인은 ‘창’을 통해 공간을 조형화한다. 창이 지상과 천상,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 사이에 놓임으로써 공간은 ‘어른거림’→‘파닥거림’→‘부딪침’→‘찢어짐’ 등의 아주 섬세한 파문과 균열을 통해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 공간의 조형이 빚어내는 순간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표현이 바로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이다.
그가 ‘유리창’에서 빚어내는 이러한 공간의 조형성과 대위적인 감각은 하나의 사물을 감각화하고 즉물화 내지 조형화하여 미적으로 형상화하는 모더니즘의 한 특장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 현대시에서 낯선 것이며, 그를 모더니즘의 기수로 혹은 실천자로 불리게 한 중대한 징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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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시란 무엇인가. 수많은 정의 중에서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라는 사상가 볼테르의 말을 들어 본다.
그러면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시인이란 가슴에 심각한 고민을 품고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천사만려하면서, 탄식과 흐느낌을 아름다운 노래처럼 부르는 입술을 가진 불행한 인간이다.' 염세적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다운 통찰이다.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최남선의 신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소년>지에 처음 발표된 날을 기념해 제정한 날이다. 올해 한국 현대시는 탄생 101년을 맞는다.
최근 한국시인협회가 특별한 '시의 날'을 앞두고 문학평론가 10명에게 의뢰해 10대 시인과 대표시를 선정한 것은 문학사적 의미가 작지 않다.
● 문학사적 의미 큰 선정작업
보도되었듯이 10대 시인과 대표시는 김소월 <진달래꽃>, 한용운 <님의 침묵>, 서정주 <동천>, 정지용 <유리창>,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수영 <풀>,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이상 <오감도>, 윤동주 <또다른 고향>, 박목월 <나그네>로 결정되었다. 대체로 문학성을 중심으로 편견 없고 공정하게 선정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시가 '위대한 영혼들의 음악'이라는 볼테르의 정의에 기대지 않더라도 선정된 시인에게 영예스러운 일이고, 각급학교의 시 교실에서도 기억되고 강의될 만한 작업이다.
특히 정지용의 <유리창>,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선정은 의미가 남다르다. 납북됐던 정지용과 고향인 북한에 머물던 백석은 6ㆍ25전쟁 후 30년 이상 우리 문학에서 증발해 버린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의 미아였던 이들의 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승리함에 따라, 문학적 복권이 이뤄져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를 잃고 쓴 시로 알려진 정지용의 <유리창>은 감정의 절제와 세련된 시어 등에서, 모더니즘 문학의 보석같은 결정체다. 이에 비해 1948년에 발표된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평안도 지방의 토속적 정서와 소박한 언어로 쓰여진 시다. 비교적 길고 산문체 문장에 의존하는 이 시는 그 시대 인간의 스산한 내면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지향성이 아픈 공감을 불러낸다.
10인 중에 김소월 한용운 이상 윤동주 등 우리가 아껴온 시인들이 포함돼 있는 점은 새삼 기쁨을 준다. 풍찬노숙의 생활 속에 독립운동을 지도했거나, 일제에 의해 고난 받고 옥사도 한 시인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기리는 일이다.
그러나 10인의 면면을 자세히 보면, 우리 시문학사는 영광 못지않게 불명예와 질곡으로 얼룩져 왔음도 부인할 수 없다. 친일 문학작품을 남기고, 광복 후에는 정통성 없는 군부독재 세력에 영합하여 영달을 누린 이들도 있어 우리를 신산하게 한다.
소설의 경우는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가 발표된 것이 1906년이고, 본격적 현대성을 갖춘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이 발표된 것이 1917년이다. 어느 작품을 기점으로 현대소설 100년과 대표소설가 10인을 정리할 것인가는 숙제이지만, 이 두 작가 역시 친일의 오점을 묻히고 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질곡과 부조리의 역사 속에서 이들의 좋은 작품도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순수한 믿음을 저버리고 문학에 대한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이런 대목에서, 문학적 평가와 역사적 평가는 길이 나뉠 수밖에 없다.
● 문학ㆍ역사의 평가 다르기도
이번 대표시인 10인 선정에서 문학 외적 요소가 개입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생존 시인은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 20년, 혹은 30년 후에는 지금 생존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다시 대표시인 10인을 선정해야 한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라도 시인, 혹은 지식인은 이름을 깨끗이 간직해야 한다. 이것이 대표시인 10인 선정에서 얻는 또 다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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