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배우자-연합정치 ......박명림
컨텐츠 정보
- 0댓글
-
본문
독일에서 배우자-연합정치 [중앙일보]
박명림
연세대 교수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연세대 교수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또다시 독일의 세기인가? 유럽을 넘어 세계가 다시 독일을 주목하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외국 학자와 언론들은 때 이르게 현재의 통일독일을 ‘제4제국’으로, 메르켈 총리를 ‘황제’(카이저)로 부르고 있다. 동독 재건을 위한 통일 부담으로 독일은 장기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라던 세계의 관측들은 크게 빗나갔다. 통일 후유증을 빠르게 극복함은 물론 유럽과 세계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유럽 최강의 영향력으로 통합유럽의 기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언론·국회·학계·지방자치단체·교육·통일운동·시민단체의 인사들이 ‘독일을 배우자’고, 주장하고 공부하며 또 방문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제·복지·고용·교육 정책과 통일 경험을 배우려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공부모임까지 만들어 독일의 여러 정책들을 학습하고 있다. 가위 ‘독일 열풍’이라고 할 정도다. 같은 분단국가로서, 또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위기를 노정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독일 바람은 대안체제 모색을 위한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의 독일 열풍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 따라서 초점도 크게 벗어나 있다. 독일의 경제발전과 복지체제와 통일 달성을 가능하게 한 제일요소인 독일정치에 대한 공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하며, 역량을 결집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정치는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한다. 오늘의 독일을 있게 한 골간은 바로 독일 정치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독일로부터 가장 시급히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일정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정치의 요체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연합정치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건국 이래 지금까지 독일은 모든 정부가 연합정부였다. 아데나워, 에르하르트, 키징거, 브란트, 슈미트, 콜, 슈뢰더,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22번이나 정부를 구성하는 동안 단독정부는 한 번도 없었다. 단독정부가 가능할 때조차 독일은 연합정부를 구성하였다. 놀라운 일이다. (이 칼럼을 쓰는 새벽 5시 방금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대연정 구성에 최종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예외가 없다면 그것은 법칙에 근접한다. 무엇이 이러한 법칙과도 같은 연합정치를 가능하게 했는가? 좌우 극단주의와 내부분열이 초래한 국가적 대실패에 대한 깊은 성찰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주도, 바이마르공화국 실패, 급진혁명 위기, 나치전체주의, 제2차 세계대전 도발, 분할 점령, 독일 분단으로 이어진 현대독일의 비극은 교만과 적대, 가치독점과 분열, 상대 배제, 극단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으로 연결되었다. 자기와 자기집단의 가치가 틀릴 수 있다는 자아성찰과, 타자와 다른 집단의 주장이 옳을 수 있다는 타자인정이었다. 자기 오류가능성에 대한 집합적 성찰은 겸양·관용·양보·대화·타협·공존의 정치로 연결되었다. 곧 연합정치였다.
한국의 많은 언론·국회·학계·지방자치단체·교육·통일운동·시민단체의 인사들이 ‘독일을 배우자’고, 주장하고 공부하며 또 방문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제·복지·고용·교육 정책과 통일 경험을 배우려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공부모임까지 만들어 독일의 여러 정책들을 학습하고 있다. 가위 ‘독일 열풍’이라고 할 정도다. 같은 분단국가로서, 또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위기를 노정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독일 바람은 대안체제 모색을 위한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의 독일 열풍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 따라서 초점도 크게 벗어나 있다. 독일의 경제발전과 복지체제와 통일 달성을 가능하게 한 제일요소인 독일정치에 대한 공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하며, 역량을 결집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정치는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한다. 오늘의 독일을 있게 한 골간은 바로 독일 정치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독일로부터 가장 시급히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일정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정치의 요체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연합정치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건국 이래 지금까지 독일은 모든 정부가 연합정부였다. 아데나워, 에르하르트, 키징거, 브란트, 슈미트, 콜, 슈뢰더,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22번이나 정부를 구성하는 동안 단독정부는 한 번도 없었다. 단독정부가 가능할 때조차 독일은 연합정부를 구성하였다. 놀라운 일이다. (이 칼럼을 쓰는 새벽 5시 방금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대연정 구성에 최종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예외가 없다면 그것은 법칙에 근접한다. 무엇이 이러한 법칙과도 같은 연합정치를 가능하게 했는가? 좌우 극단주의와 내부분열이 초래한 국가적 대실패에 대한 깊은 성찰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주도, 바이마르공화국 실패, 급진혁명 위기, 나치전체주의, 제2차 세계대전 도발, 분할 점령, 독일 분단으로 이어진 현대독일의 비극은 교만과 적대, 가치독점과 분열, 상대 배제, 극단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으로 연결되었다. 자기와 자기집단의 가치가 틀릴 수 있다는 자아성찰과, 타자와 다른 집단의 주장이 옳을 수 있다는 타자인정이었다. 자기 오류가능성에 대한 집합적 성찰은 겸양·관용·양보·대화·타협·공존의 정치로 연결되었다. 곧 연합정치였다.
‘연합’은 어원적으로 ‘함께 양육한다’ ‘함께 기른다’는 라틴어로부터 나왔다. 폴리스에 어원을 갖는 정치는 ‘자유시민 전체의 공동사안’ ‘공동체의 일’을 뜻한다. 정치 자체가 이미 연합을 필수요소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합정치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함께 공동체를 발전시키려는 겸허의 자세로부터 발원한다.
그렇다면 연합정치의 효과는 무엇인가? 우선 최고성이다. 연합정치는 연합을 위한 협상의 과정에서 당대에 제출된 대안·지혜·정책·인물 중에 최선의 것을 선택하게 한다. 한 당에서 고른 정책과 인물보다는 여러 당의 그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공동체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의 선택’, 여기에 연합정치의 궁극적 목적과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주요 정치철학들이 ‘혼합정체’를 최고의 정치체제로 강조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혼합정체는 오늘날 연합정치를 말한다. 실제로 전후 독일의 여러 핵심정책들은 연립정부의 구성 과정에서 ‘주고받기’와 ‘합의’를 통해 채택된 것들이었다.
둘째는 일관성, 지속성, 예측가능성이다. 연합의 결과 한번 채택된 국가비전과 정책은 장기간 지속되며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즉 정부 교체에 따른 정책의 급격한 폐기와 전환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 전후 독일을 상징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라인강의 기적, 복지정책, 동방정책, 과거 사과,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은 정책과 인물의 장기 지속성의 산물이었다. 이를테면 라인강의 기적, 동방정책, 독일통일은 에르하르트·브란트·겐셔가 그들 스스로 각각 경제장관·외무장관·부총리·총리로서 여러 내각에 걸쳐, 또 후임 정부 역시 연립정부로서, 장기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계속)
박명림 연세대 교수·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그렇다면 연합정치의 효과는 무엇인가? 우선 최고성이다. 연합정치는 연합을 위한 협상의 과정에서 당대에 제출된 대안·지혜·정책·인물 중에 최선의 것을 선택하게 한다. 한 당에서 고른 정책과 인물보다는 여러 당의 그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공동체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의 선택’, 여기에 연합정치의 궁극적 목적과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주요 정치철학들이 ‘혼합정체’를 최고의 정치체제로 강조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혼합정체는 오늘날 연합정치를 말한다. 실제로 전후 독일의 여러 핵심정책들은 연립정부의 구성 과정에서 ‘주고받기’와 ‘합의’를 통해 채택된 것들이었다.
둘째는 일관성, 지속성, 예측가능성이다. 연합의 결과 한번 채택된 국가비전과 정책은 장기간 지속되며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즉 정부 교체에 따른 정책의 급격한 폐기와 전환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 전후 독일을 상징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라인강의 기적, 복지정책, 동방정책, 과거 사과,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은 정책과 인물의 장기 지속성의 산물이었다. 이를테면 라인강의 기적, 동방정책, 독일통일은 에르하르트·브란트·겐셔가 그들 스스로 각각 경제장관·외무장관·부총리·총리로서 여러 내각에 걸쳐, 또 후임 정부 역시 연립정부로서, 장기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계속)
박명림 연세대 교수·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관련자료
댓글 2 개
이봉배님의 댓글
지극히 적절한 논평으로 봅니다. 사실 독일의 선진화와 통일의 길은 오랜동안 국민들의
한결같은 통일의 타당성 있는 생각과 지도자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일등 국민에로의
계도와 비젼이 오늘의 EU 체제 통합을 이끌었고 소리없이 정리된 국민들의 모든 영육간의 질서를
보면 배울게 너무 많고 당장 본받아 실천 해야할 많은 부분의 근원이 바로 정치에 있었다니
우리도 빨리 배워서 지금의 꽉 막혀 숨 막히는 우리 정치가 하루 빨리 개혁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982년도 뮌휀에 가서 6개월 넘게 생활 하면서 그들의 안정된 자세와 자신이 넘치는 사고와
행동 잘났다고 말하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건전하고 발전적 아이디어가 금방 이라도
튀어 나올것 같은 직장 에서의 진지함과 열정 ----- 이 모두를 우리가 꼭 배워 나가야 할 덕목으로
생각 합니다.
-
이전
-
다음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