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인용

황종택님의 新온고지신 5 편

컨텐츠 정보

  • 0댓글

본문

1. 思 鄕

고향은 모든 동력의 근원이다. 그 참담한 폭우·폭풍의 난장에도 끝없이 늘어선 귀성 행렬은 도시의 뿌리가 농어촌임을 새삼 실감케 한다. ‘향수(鄕愁)’란 말만 들어도 온몸이 짜릿해진다. 선산을 찾아 성묘하며 조상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옛정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추원보본(追遠報本), 얼마나 0아름다운 일인가.

자연, 고향은 시인묵객들의 주요 소재가 됐다. “평상에 가득한 달빛이 마치 하얀 서리 같구나. 머리 들어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고 머리 숙여 고향생각에 잠긴다(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이태백의 ‘야사(夜思)’란 시다. 굳이 이백의 시 구절을 꺼내지 않더라도 고향이란 말이 주는 의미야 새삼 논할 필요가 있으랴. 고향은 애틋하고 깊은 감상을 지녔다. 두보의 ‘귀안(歸雁)’ 역시 고향을 그리는 사향시(思鄕詩)의 백미다. “봄에 온 만리 타향의 나그네는 언제나 전란이 그쳐 고향에 돌아갈까. 강둑에 저 기러기는 높이 솟아 내 고향 북쪽으로 날아감에 애간장이 끊어지는구나(春來萬里客 亂定畿年歸 腸斷江城雁 高高正北飛).”

우리의 한시 또한 고향에 찾아가고픈 마음을 절절히 묘사하고 있다. 조선 영·정조 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서구는 저서 ‘강산집(薑山集)’에서 “짝 잃은 기러기는 석양녘에 날고(失次賓鴻經夕到) 붉게 물든 단풍잎은 바람에 나부끼네(偸紅晩葉側風飛)/ …/강가의 풀은 다 자랐는데 나는 어디로 돌아가리(江?初長我安歸) 나그네는 배에 올라 구름 속 숲 너머 고향을 그린다(行人?帆望煙樹)”고 애잔하게 노래했다.

현모양처의 귀감이자 여류 문인 신사임당의 한시 ‘친정생각(思親)’은
가슴 먹먹한 울림을 준다. “산 첩첩 내 고향 천 리이건만(千里家山萬疊峯)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歸心長在夢魂中)/ …/ 언제나 강릉 길 다시 밟아가(何時重踏臨瀛路) 색동옷 다시 입고 어머니와 함께 바느질할꼬(更着斑衣膝下縫).”

귀향은 생존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며,
부모형제는 생명력의 샘물 같은 존재다.

2 추현양능(推賢讓能)

세상사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첨단 과학문명 시대에도 중심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계책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뤄지는 바는 하늘에 달려 있어서 강제로 할 수 없다(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라는 제갈공명의 탄식처럼, 주어진 운명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일단 도모를 해야만 성패가 있는 법이다. 어느 조직이건 사람을 잘 써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공직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

주관(周官), 곧 주나라 성왕이 조정 관리들에게 훈계한 말을 사관이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어진 이를 밀어주고 능력 있는 이에게 양보하면, 모든 이들이 화합할 것이요(推賢讓能 庶官乃和)”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추천 받은 이가 그 직위를 감당할 수 있으면 그것은 그대들의 능력이지만, 추천 받은 자들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대들이 소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도 지적했다. 0

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인재를 얻고, 적재적소에 잘 써야 뜻을 펼 수 있는 것이다. 춘추시대 책사 관중이 “천하를 다스리려면 먼저 사람 얻기를 다투라(爭天下者必先爭人)”고 강조한 바와 맥을 같이한다. 인재 욕심에서 주나라 주공만 한 이도 드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아주 잘 맺었으며 인재라고 생각되면 그를 등용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보면 주공은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할 정도였다. 한 번 머리를 감을 동안이라도 인재가 찾아왔다는 말을 들으면 감던 머리를 움켜쥐고 물 묻은 채로 세 번이나 나가서 만났고, 밥 한 끼 먹는 짧은 시간에도 인재를 만나기 위해 먹던 음식을 뱉고 나가기를 세 차례나 했다고 한다.

추석 민심을 확인한 대선 캠프마다 인재 영입 등을 통한 인적 쇄신에 더욱 공들이고 있다. 인재를 골라 쓰는 안목이 요청된다. 또한 인재 영입 못지않게 명심할 게 있다. “나쁜 사람을 내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去邪勿疑)”는 서경의 가르침이다. 공익을 위해!

3 여민해락(與民偕樂)

태평성대는 무엇인가. 남녀노소 저마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라고 하겠다. 자발적으로 즐겁게 일해 개인의 성취와 공동체 발전에도 기여하는 이상적인 사회다. 주역에서는 이를 ‘지천태(地天泰)’ 괘로 풀이하고 있다. 상하 간 원활한 소통을 뜻한다. 최고 지도자가 백성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른바 ‘위아래가 원만히 교류하니 목표도 같아진다(上下交而其珍也)’는 논리다. 요·순·우·탕·주공 시대가 롤 모델로 꼽히기도 한다.

태평성대 건설의 방책을 묻는 양 혜왕에게 맹자가 “옛사람들은 백성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기에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與民偕樂 故能樂)”고 말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군림하지 않는 지도자를 의미한다. 순자가 “하늘이 땅 위에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들의 생활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天之立君以爲民也)”고 깨우침도 궤를 같이한다. 0

우리 역사에도 성군(聖君)이 적잖다. 세종대왕이 대표적이다. 대왕이 한글 창제, 측우기 발명, 아악 개혁, 역법 개정 등 수많은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백성을 위하는 위민(爲民) 철학의 발로였다. 백성을 사랑한 애민(愛民)이자 동고동락한 여민(與民)이다. 나아가 백성을 잘살게 하겠다는 뚜렷한 사명감과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不狂不及)는 ‘성공 DNA’의 입증이었다. 안질, 소갈병 등 모진 병마와 싸우면서!

무엇보다 세종임금이 앞장서 전문 인재를 적극 활용하고 문제를 철저히 분석한 뒤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장영실 같은 상민을 중용한 데서 보듯 대왕은 서구보다 먼저 민주주의와 인권에 가치를 두었다. 시대 변화를 선도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전국책에 이르길 “사물이 왕성해지면 쇠퇴하게 되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쇠하게 되니 천지자연의 변함없는 규율이다(物盛而衰 樂極則悲 天地常數也)”고 했다. 백성을 위해 시대를 앞서간 세종대왕의 뜻이 빛난다. 오늘은 세종대왕이 주도하여 창제한 ‘한글날’이다.

4 주무속신(綢繆束薪)

고대사회. 아직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틀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까마득한 시절. 여자는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소유물이었다. 전리품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남녀 간 사랑은 있었다. 순수함이 진하게 스며 있는 사랑, 오직 당신만을 위한 순애보다. 눈물도 배어 있다. ‘시경(詩經)’에는 이렇게 젖은 글씨로 쓴 시들이 많다. ‘강물도 때론 돌아보는데(江有?)’를 보자.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한 사내의 슬픔을 흐르는 강물에 하소연하듯 써내려갔다.

“강물은 갈라져 흐르고, 내 곁을 떠난 당신은 돌아보지 않는구나. 하지만 훗날 생각이 나겠지(江有? 之子歸 不我以 不我以 其後也悔)/…/ 강물은 굽이치고, 너는 끝내 나와 헤어지는가. 피리소리여 슬픈 노래여라(江有? 之子歸 不我過 不我過 其嘯也歌).” 0

신혼부부의 첫날밤 장면도 있다. 리얼한 묘사가 눈길을 끈다. ‘꽁꽁 묶어주세요(綢繆)’의 첫 장이다. “신랑신부, 장작을 묶은 듯 사랑을 나누는 이 밤. 하늘엔 삼성이 떠 있네(綢繆束薪 三星在天) 오늘 저녁은 어떤 저녁일까요, 아 나의 낭군(今夕何夕 見此良人) 그대여 그대여! 이처럼 좋은 분이 어디 있을까(子兮子兮 如此良人何).”

청춘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는 일은 인륜지대사다. 한데 짝을 구하지 못하는 ‘결혼대란’이 벌어질 조짐이다. 남아 선호사상에 따른 출생 성비 왜곡이 결혼 적령기로 이어지면서 신랑감이 신붓감보다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장래 인구추계에 따르면 올해 결혼 적령기를 맞은 남성과 여성은 각각 283만4000명, 255만7000명으로 나타났다. 28만명 정도의 신붓감이 부족하다. 해가 갈수록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아들을 귀하게 여기는 인식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아울러 총각들은 연인을 각별히 배려해야겠다. 떠나가지 말게. “선비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고 했잖은가. ‘사기(史記)’의 충고다.

5 양불능전(兩不能全)
인생은 기다림과 만남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짧은 기다림은 천박한 만남을 낳는다. 다 때가 있어 숙성된 시간이 필요하다. 오랜 인내의 기다림이야말로 삶의 빛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 시인 원매는 ‘속시품(續詩品)’에서 “빨리 달리는 것과 잘 가는 것을 동시에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疾行善步 兩不能全). 갑자기 성장하면 망하는 것도 졸지에 벌어진다(暴長之物 其亡忽焉)”며 매사 성급하지 말 것을 경책하고 있다.

‘참을 수 있으면 우선 참고, 경계할 수 있으면 우선 경계하라. 참지 않고 경계하지 않으면 작은 일이 크게 된다(得忍且忍 得戒且戒 不忍不戒 小事成大)’라는 ‘증광현문(增廣賢文)’의 가르침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0

한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무엇이든 ‘빠르게’와 ‘금메달’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기를 쓰고 해보려고 해도 때가 되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인위적 1등 지상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노자에 이르길 “까치발 하고 있는 자는 똑바로 서 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리고 발걸음을 크게 내딛는 자는 제대로 걸어갈 수 없으며, 스스로 잘난 척 뽐내는 자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企者不立 跨者不行 自矜者不長)”고 했다.

한 걸음 늦게 가도 괜찮다. 인위적으로 발돋움을 하고, 어색한 몸놀림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어보았자 오래가지 못한다. 괜히 속만 보이고 불신의 대상이 될 뿐이다. 냉철함을 잃고 허둥대다 쉽게 지치고 만다. 과한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채근담에 “탐욕스러운 자는 차가운 연못에서 물결이 끓어오르는 듯하여 산 속에서도 고요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이 비어 있는 이는 무더위 속에서도 서늘한 기운이 일어난 듯하여 저자거리에 있어도 시끄러움을 모른다(欲其中者 波沸寒潭 山林 不見其寂 虛其中者 凉生酷暑 朝市 不知其喧)”고 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서두름은 삶의 좌표를 잃어버리게 한다. 한 걸음 늦춰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끔은 하늘을 보자.

녹명문화연구소장

관련자료

댓글 1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