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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서신 3 철듦과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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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서신 3

철듦과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지난 가을비로 단풍이 ‘속절없이’ 떨어지며 날씨가 쌀쌀해지자 철이 바뀜과 함께

세월이 빨리 지남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속절(俗節)은 제삿날 외에, 철이 바뀔 때마다

사당이나 조상의 묘에 차례를 지내는 날을 말한다고 합니다. ‘속절없이’는 집안살림이

너무 궁핍해 음식차릴 형편이 되지 못하여 속절을 ‘단념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철이 바뀌고 세월이 감을 사람으로서 어찌할 것입니까. 단념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아무리 속절없이 가는 세월이라도 그 사이 사람들은 철이 들어가야 합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철 바뀌고

세월이 흘러 나이만 먹는다고 철이 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는 창조주 신의 심부름꾼이지 신자들에 권위적이거나

군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종교인들은 미망과 현혹에 빠지지 않는

올바른 신앙심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각자의 깨달음이고 철듦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 보아 ‘철이 든다’는 것은 우선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철듦입니다. 그리고 철이 들어 전기 수도 등의 편리한 시설과 환경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는 나라가 있음에 감사하고 보답하려 합니다. 더 나아가 사시사철 변하는

대자연속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창조주 신께 감사하고 경배함으로써

진정 철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종교인들은 교회나 절에 가서 깨우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작정 절하고

기도하며 헌금과 시주를 바친다고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걷거나,

일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병 고쳐 달라’는 기복신앙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돈 벌게 하고

병 고쳐 주어 감사하다’는 기도보다 쌀 한톨과 시원한 바람, 따듯한 햇볕을

주신 것에 한없이 감사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이며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깨달으면 도력(道力)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술, 마술,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도력은 아닙니다. 도의 완성은 깨닫고 철이 들어 사후 성숙한 영혼으로 창조주

신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부모의

마음이 되는 것이 철듦이고 한없는 사랑과 배려를 갖추신 창조주 신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깨달음, 도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사무실의 편액에 쓰인

글귀 ‘불심은 천심이요 천심은 효심이다’를 ‘불심은 창조주 신께 가는 것이

목표인데 그 지름길이 효심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도 아직 완전히 성숙해 철들고 깨달은 사람은 아닙니다. 단지

내 마음 안에 나름의 틀에 갖힌 일면이 있지는 않을까, 항상 정진(精進)하고 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화평서신’ 역시 정진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창조주 신(神), 사람, 만물이 다 같이 좋은 세상을 위해서’라는 취지의 창간글로

시작해 종교지도자와 종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65편을 써 왔습니다. 모든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루게 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았습니다. 때론 종교와 종교지도자에게

불편한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종교지도자에게는 창조주 신의 심부름꾼으로

신자들 앞에 나서야지 권위적이거나 군림하면 결국 세속적 권력, 금권 다툼으로 비춰 많은

사람들을 종교심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종교인들에겐

기복신앙 등으로 미망과 현혹에 빠지지 말고 올바른 신앙심을 갖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범종교신문 발행인 이옥용이 종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내려 그동안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글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성숙한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철들지 못한 내용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역시 철들고 깨달아 가는 성숙과정이라 생각하고 출판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선별하고 손질하여 내 철듦과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만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닌 배려의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을 발간하기 전에 조상과 부모님을 위한

‘속절’을 갖고 마음을 가다듬어 볼 생각입니다.

화 평 서신 2
보편적이고 성공한 종교의 정착을 

방해하는 정체는 무엇인가


범종교신문을 3년간 발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종교의 교리든 창조주 신의 뜻을 담은 좋은 말씀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불경 성경 코란 베다경전 등 모든 경전들이 모두 인류가 살아가야 할 태도와 지표를 담아 놓았습니다. 불과 백년 전, 50년전의 사람도 미개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천년을 넘긴 시대의 사람들이 경전에 담은 철학과 사상이 오늘날에게도 유효하다는게 경이롭습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오늘날 사람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원시적인 것으로 보며 그들 생각 역시 미개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수많은 세월 이어온 교리대로 살아왔다면 지금의 세상은 천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천국마냥 편리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과 생활환경은 답보상태이거나 퇴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멩이를 도구로 사용하던 원시시대에서 인터넷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시대로 발전했지만 사람과 삶은 여전히 아비규환(阿鼻叫喚) 상태입니다.

지난 10월 3일은 단군이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건국이념으로 ‘조선(朝鮮)’이란 나라를 세운 4345주년 개천절이었습니다. 그 좋은 이념으로 4천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 왔는데도 남북은 분단되어 전쟁과 전투상태이고 분단된 지역안에서도 지역과 빈부갈등, 이념투쟁, 정쟁, 살인과 폭행, 음욕과 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와는 거리가 먼 서로 피해주고 헐뜯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그러한 이념이 요구되는 시대일 것입니다. 물론 이념이 탄생된 시대에도 그러한 이념이 절실했을 정도로 사람 사는 세상이 평온치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4천여년의 교리에 의한 교화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대종교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은 환웅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와서 교화할 때, 우주 창조의 이치를 풀이한 81자로 된 참결입니다. 세계 종교와 사상의 원류라 할 만한 진경(眞經)이라는데 아직도 그 이치를 해독하지 못하고 이견이 분분합니다. 그 해석을 놓고 서로 진리라고 다투기도 합니다.

2000년이 넘는 성경과 불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경전의 말씀들을 사람들이 지켰다면 이 세상은 문명과 과학의 혜택으로 인한 생활만큼 삶의 질도 높아졌을 게 틀림없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가 자신의 교리로 조만간 세상이 교화될 것이란 장담을 해왔지만 어느 종교도 온 세상을 교화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종교의 교리든 창조주의 신의 뜻을 담고 있다. 교리에 의한 교화는 수천년 이어져 왔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과 생활환경은 여전히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상태이다. 이제 종교의 틀을 넘어 방해하는 정체를 추적해서 밝혀야 한다.

오히려 종교로 인한 전쟁과 다툼,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 국가간, 국가내에서 빈발해졌습니다. 같은 종교내에서는 큰 세력이 작은 세력의 성장을 막는 방편으로 이단으로 몰고 있으며 이단은 그에 대한 대응으로 극단적, 전투적 태세를 갖춥니다. 교회 울타리안에서도 권력과 금력싸움이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창조주 신의 말씀인 교리는 세상과 멀어졌고 단지 성전(聖戰)이란 명분으로 전쟁과 테러를 일으키고 권력과 세력다툼의 도구로 이용할 뿐입니다.

이렇게 좋은 뜻의 교리가 악용되어 창조주 신의 뜻 전파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창조주 신에 대적하여 종교를 그릇되게 만들고 조정하는 마귀, 악마, 사탄의 정체를 추적해서 밝혀야 한다고 주창(主唱)합니다. 각자 종교의 틀을 넘어 바르게 밝혀내야만 종교의 성공적인 정착도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입니다.

때마침 사시(社是)인 ‘天正知行 地正知平 人正知和(하늘을 바르게 알고 행하며, 땅을 바르게 알아야만 평화가 오고, 사람을 바르게 알아야 화목하다)’를 서예가 하담(荷潭) 전규호(全圭鎬) 선생으로부터 창간 3주년 기념 휘호로 받았습니다. 바르고 곧은 느낌을 주는 예서체입니다. 창조주 신의 뜻을 바로 알아 만물과 사람도 바로 보고 천지인(天地人) 모두에게 이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화평서신 1
통일교에 바란다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총재의 빈소와 장례식(천지인참부모 천주성화식)에 다녀 왔습니다. 13일간의 장례식 내내 신자들뿐 아니라 국내외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줄지어 조문했고 통일교 관련기사에 인색했던 언론들도 대대적으로 문 총재의 별세(聖和)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김일성, 고르바초프 등과 만나고 수천, 수만쌍의 합동(축복)결혼식을 할 때보다 비중을 크게 다루었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인터텟 검색어 순위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본지에서도 그동안 통일교에 인색했던 지면을 늘려 4개 면(17-20면)의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豹死留皮人死留名…

이름보다는 뜻이 전해져야

표사유피인사유명(豹死留皮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성어(成語)입니다. 살아있을 때보다 사후에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 영광스런 삶이란 뜻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문 총재는 별세 전보다 별세 후에 세속의 영광을 완벽하게 누렸다고 봅니다. 그의 지적· 영적 통찰력이 새삼 부각되어 통일교인들 뿐만 아니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상의 거인, 거물로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조문 온 사람이나 조문을 청해 온 사람이나 이구동성으로 그의 종교, 기업가, 평화운동가, 문화사업가로서의 족적을 칭송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위원회도 문 총재의 이름을 더욱 빛내기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마련했고 각계각층의 조문을 청했습니다. 이름을 빛내기에 충분하게 준비된 성공적인 장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차원에서는 이름보다 뜻이 중요합니다. 물론 내용(뜻)을 더욱 거룩하게 만드는 형식(이름)의 포장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면 우상화가 됩니다. 부처는 열반할 때 제자들이 ‘돌아가시지 말라’ 하자. ‘나를 믿지 말고 내가 한 말을 믿어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죽을 때 주변 여자들이 울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를 위해 울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상화로 일관된 종교의 역사

‘하나님 말씀 믿고 실천하는 삶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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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성숙치 못한 존재라 이런 과정에서 싸움이 생깁니다. 말씀보다 교권, 금권에 전력투구하고 죽기살기로 집착합니다. 모든 전쟁과 갈등의 원인이 종교에서 비롯된 역사적 사실이 그런 과정을 증명합니다. 약육강식과 생식의 본능대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종교가 나서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비종교인들의 염려와 비아냥이 날로 커가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안은 바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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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유노숙님의 댓글

내용ㅇ도 기가막힌 정곡이지만 진혜숙권사님이 그동안 얌전 하시더니
점점 보석같이 빛이 나네요
저도 교만 해서 예전에 테클많이 받았습니다.
역시 허물좋은 개살구 보다 속이 꽉찬 알곡 같은 분입니다. 언니~~점점 존경 시러워요..
남의 허물 바른말 한답시고 떠든 예전에 저는 정말 겁데기였어요....

정해관님의 댓글

\"수천년 종교의 역사는 우상화 작업으로 일관됐습니다. 불상과 탑을 세웠으며 예수의 형상과 십자가를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미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태초의 말씀이 하나님이고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함으로써 성숙하는 것이 인간의 길입니다. 강한 정신력과 영적 능력을 가진 종교지도자는 몸이 없는 창조주 신, 하나님을 대신해 그 말씀의 길로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보다 사람과 형상을 믿게 하여 우상화, 권력화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말이 쉽지, 어쩌면 모든 종교가 전통적으로 답습해온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본문의 필자는 그런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잘 새기자는 의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따라야할 말씀\'에 권위를 높여주는 방편의 하나가 \'우상화\'일수도 있는데, 그런 시도마저 무조건 \'문제되는 우상화\'로 비판함도 재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우상화는 인격. 행동이 미치지 못하는데도 없는 사실을 덧 씨워 포장하는 것이지(이적기사 등), 본인이 말한 내용 또는 그 가치에 대해 인용하고 강조함은 별개의 문제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방이 천편일률적으로 한 주장에만 모두 박수치고 공감한다는 모습도 썩 바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을 것 같고, 그 같은 생각들이 \'우상화 시도\'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음을 외롭게? 발언함이 이 댓글의 목적이기도 할 겁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며, 사족을 덧 붙인다면, 참아버님의 성화를 계기로 인류의 메시아. 구세주. 평화의 왕. 천지인참부모 되심을 새삼스레 밝히고 공표하였는데, 세상은 그 점에 대하여 \'우상화 운운\' 하는데 본글이 빌미가 되지 않기를 바람도 유념하고 싶은 대목입니다.

성범모님의 댓글

맹목적 신앙의 추구는 교만과 아집으로 비쳐진다고 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바른 자세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행동없는 구두적 신앙은 보는이로 하여금 경멸의 대상이 될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신앙인 이전에 인간이 되어라는 말과 같이 합목적적 사고와 위하여 산다는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음에 품고서도 말못하는 맻힌 체증을 시원하게 뚤어주는 좋은 글입니다.

진혜숙님의 댓글

악의 덩어리(사탄)는 교만합니다. 그것은 단단합니다. 그리하여 어느시기에 무엇인가에
강한 접촉이 이루어지면 ~ 지각변동으로 흔들리든지 밖으로 던져질 때 무능하고 보잘것 없는
파편조각이 되어집니다. 인생이 잘되었든지 못 되었든지 교만은 가까이하면 자기파멸이 있을
뿐입니다. 범종교신문에서 옆구리한쪽을 채워주었군요. 추모의 가을시간에 시린가슴을 덥혀줍니다.

홈짱님 감사합니다. 화요강좌에서 홈장님의 차례로 멘토의 시간을 출근하느랴 일찍와서
아쉬웠습니다. 통일교에 바란다. 알곡과 같은 말씀 참좋아요. 그리고 성호갑회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속시원한 말씀.

성호갑님의 댓글

아주 아주 귀한 글입니다. 신앙인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요 살아서 걸어다니는 하나님
생활자체가 신앙이면 전도가 필요없지요. 나를 보라 이렇게 살아왔더니 이렇게 되더라.
생활로 보여주고 완성되면 종교가 필요없지요 권위 위선 교만 특권 모두가 사탄입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통찰력에 시선이 꼿히는군요.
우리 모두 각성해야할 좋은 글입니다.

형식 속에 참이 있다고 하네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겉볼안\"이란 말도 있죠.

모두 격식이 중요함을 지칭합니다.
성숙한 통일교인이 되도록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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