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朝時代의 最高權力 追求慾과 展開樣相-9 계유정난(癸酉靖難)과 세조의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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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朝時代의 最高權力 追求慾과 展開樣相-9. 계유정난(癸酉靖難)과 세조의 집권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세종·문종 때부터의 원로 신하들을 없애고 스스로 정권을 잡은 사건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중심으로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 등이 반역을 모의한 것을 평정했다는 명목으로 정난이라는 말을 붙였으나 실상은 수양대군이 왕이 되려는 야심에서 이들을 제거한 정변으로, 이 해가 계유년이어서 계유정난이라 한다.
1452년 즉위할 때 단종의 나이는 12세에 지나지 않았으나, 당시로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이 제도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단종의 모후(母后)인 권씨도 세자빈 때 단종을 낳은 뒤 바로 죽어서 수렴청정을 할 만한 사람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에 문종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영의정부사(영의정) 황보인을 비롯하여 남지(南智)·김종서 등 대신들에게 단종을 보필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단종이 즉위한 지 얼마 뒤에 좌의정 남지가 죽고 김종서가 좌의정, 정분(鄭苯)이 우의정으로 임명되었으며 이 상태에서 황보인·김종서 두 고명대신이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편 세종비 심씨의 왕자이자 단종의 숙부들인 대군(大君) 7명도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세력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으로, 안평대군의 집에는 많은 문신이 출입하고 있었고, 수양대군은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 등을 모사로 하여 세력을 모으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1453년 봄 고명사은사(誥命謝恩使)로 명(明)에 다녀왔는데, 이 동안에 김종서나 안평대군 등이 그를 제거하려 한 일이 없었던 것은 이들이 단종에 반역할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정변은 단종 즉위 직후부터 계획되기 시작하여 수양대군이 명에서 귀국한 뒤 뛰어난 무인 또는 문신을 본격적으로 규합함으로써 구체화되어 갔다. 그 결과 1453년 10월 즈음에는 수양대군 휘하에 홍달손(洪達孫)·홍윤성(洪允成)·양정(楊汀) 등 30여 명에 이르는 정예 무인들이 모이기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은 이들 심복 무사들을 거느리고 삼정승 가운데 가장 지혜와 용맹이 뛰어난 김종서의 집을 습격하여 그를 죽이고 나서 단종에게 "김종서가 모반하여서 죽였으나, 일이 갑자기 일어나 아뢸 겨를이 없었다"고 보고하고는 곧 왕명을 빌어 고위관료들을 불러들여서 사전에 계획한 대로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의정부찬성 이양(李穰) 등 반대세력에 속하는 중신들을 대궐 문에서 죽였다.
이어서 정분과 조극관의 동생 조수량(趙遂良) 등은 귀양을 보낸 뒤 목을 매어 죽이고, 김종서의 목을 저자에 내걸고 그의 자손을 죽였으며, 안평대군은 강화에 귀양보낸 뒤 왕명으로 스스로 죽도록 했다. 정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로서 국정을 총괄하고, 겸판이병조사(兼判吏兵曹事)를 맡아 문신·무신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는 한편 새로 내외병마도통사(內外兵馬都統使)를 설치하고 이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군사권까지 독점했다. 또한 권람·홍달손·한명회 등 정변을 이끄는 주요인물과 정인지(鄭麟趾)·한확(韓確)·최항(崔恒) 등 자기 세력이 될 만한 주요관료 등 43명(수양대군 포함)을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책봉하고 이들을 요직에 앉힘으로써 권력기반을 다져갔다. 이같이 정변에 이어 취한 여러 조치를 바탕으로 마침내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정변은 당시 재상 중심의 정치를 지향하던 정인지·최항·신숙주(申叔舟)·박팽년(朴彭年)·성삼
문(成三問)·하위지(河緯之) 등 집현전 학사 출신의 관직자들까지 김종서·황보인의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견제하려는 분위기가 고조된 속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정변이 난 뒤 수양대군이 권력을 독점하자 이들은 수양대군에 협력하는 사람들과 수양대군에 반대하여 단종을 보위하려는 사람들로 나뉘게 되고, 결국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뒤 1456년(세조 2) 박팽년 등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 제거 당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울러 김종서의 심복 무장으로서 함길도(咸吉道) 병마도절제사로 강력한 군사력을 거느리고 있던 이징옥(李澄玉)을 정변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파직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징옥의 반란이 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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