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 김상헌(金尙憲)과 지천 최명길(崔鳴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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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김상헌(金尙憲)과 지천 최명길(崔鳴吉)
때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섣달의 찬바람이 견딜 수 없는 혹한의 인조 14년(1636. 병자년) 어느 날, 척화파의 두령 김상헌의 집에 화친파의 화신 최명길이 방문하여 입을 연다.
“대감과 절교를 할까하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절교, 좋겠지. 그래야 될 일이 있다면 그래야 할 수 밖에....”
김상헌(당시 예조판서)은 최명길(이조판서)의 진의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담담하게 수긍한다.
“그 대신 청이 하나 있습니다.” “청이라....?”
“대감의 목을 가져 갔으면 합니다.”
“내 목을..., 하면 지천은 내게 무엇을 주시겠소?”
“저는 명예를 내놓겠습니다.”
“허허허, 목숨과 명예라면 한쪽이 너무 기울이겠는걸....”
참으로 대인다운 모습이다. 두 사람은 가슴 섬뜩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태연하고 격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최명길이 다시 입을 열어 속내를 털어 놓는다.
“지금의 추세라면 오랑캐와의 접전은 불가항력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길 수 없는 병화를 자초하고 있음이지요. 지난 정묘년에 겪은 호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김상헌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최명길의 말을 경청한다.
“그렇게 된다면, 조정 중신들은 저들 오랑캐의 땅으로 잡혀가서 짐승보다 못한 종살이를 하게 될 터가 아니겠습니까. 마땅히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하면, 지천이 화친을 내세워서 병화를 막아 보겠다는 뜻인가요?”
“바로 보셨습니다.”
“그건 당세에는 물론이고 후세에 이르기까지 ‘배덕과 치욕’의 이름을 남기게 되는 일일 것이요!”
“당연하지요. 그래서 명예를 걸겠다고 했습니다.”
“또 지천이 나서서 화친을 주장한다 해서 이미 눈앞에 와 있는 병화를 막을 수 있다고 봅니까?”
“막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걸 아시는 지천이 어찌하여 되지도 않을 일에 명예를 더럽히려고 하시오?”
김상헌은 추궁하듯 묻는다. 그가 최명길의 진의를 모를 까닭이 없다.
“싸움을 시작하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자명하다면, ‘진 다음의 일’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 오랑캐가 싸움에 이긴 다음에 조선 조정의 척화정책을 추궁해 올 것으로 보는데... , 그때 조정에도 최명길과 같은 화친론자가 있었음을 내세운다면 피해를 줄이게 되지를 않겠습니까. 또 누군가가 나서서 오랑캐에게 간과 쓸개를 모두 내주고서라도 임금의 성덕에 누를 끼치는 일만은 막아야 하지를 않겠습니까!”
“허허, 지천이 몸소 그 일을 감당하시겠다는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들 오랑캐는 척화를 주장한 중신들의 처단을 요구해 오리라고 봅니다. 그 때 누구 한사람이 나서서 저들에게 목을 내주는 것으로 많은 중신들의 희생을 막아야 하리라고 봅니다. 제가 대감과 절교를 하고 대감의 목을 갖고자 하는 것은 그 일을 대감께서 맡아주셔야 하겠다는 뜻이오이다.”
“지천은 오랑캐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충신이 된다. 그렇다면 내게는 이로운 것이 분명하나 지천이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이오?”
“종사를 구했다는 자부심이지요. 비록 아무도 인정해 주지는 않겠지만, 대감 한 사람의 진심이나마 이 지천이 종사를 구하기 위해 씻을 수 없는 오명을 혼자 뒤집어쓰고 가는 것을 알아주시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저는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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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은 가슴 속에서 욱 하고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아 삼킨다. 아무리 나라에 힘이 없기로 어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러야 하는가. 최명길과 같은 지혜로운 선비가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자청하면서까지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데, 과연 자신을 비롯한 척화론자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김상헌은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최명길을 한참동안이나 쏘아보다가 쥐어짜듯 입을 연다.
“알겠소. 지천과는 절교를 해야겠어요. 이젠 서로 원수지간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이만하면 대답이 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대감!”
두 사람은 서로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한참 동안을 놓지 못한다. 가는 길은 정반대였으나 어느 길 하나 충성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조선 정치의 꽃 정쟁> 신봉승 지음---에서.
[후기] 당시 국제정세에 둔감한 조정과 임금은 속수무책으로 청 태종 홍타이치의 13만 대군 앞에 파죽지세로 침공 당한다. 오직 척화론 만이 국론의 전부라던 일부 문신들이 나아가 싸우자는 결기를 세우기는 하였으나, 이미 도성 안에는 거느릴 군병이 없다는 현실을 감안 한다면 이 역시 탁상공론에 불과 했다. 결국 조정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몽진 밖에 없었다.
중신들은 일단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기회를 보아 다시 강화도로 옮긴다는데 의견을 모았지만, 이미 홍제원까지 와 있는 적병 때문에 이마저 난제 였다. 이 때 최명길이 나서서 단기로 적진으로 달려가 시간을 벌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국 최명길의 손으로 화의문서는 작성되고, (이 때에도 김상헌은 화의가 아니고 굴욕적인 항복문서라며 이를 찢었고, 최명길은 다시 주어서 작성했다고 함) 삼전도(지금의 송파)에서 인조가 청태종 앞에서 이른바 ‘삼배구고두례’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라는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치욕적인 수모를 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화냥년’으로 알고 있는 여성 수난사도 겪게 된다.
청음 김상헌이 청나라에 압송되어 가면서 조국의 산천을 돌아보며 남긴 시조가 널리 회자되었다.
“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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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명님의 댓글
낭송해 드리오니 모두 마음을 다잡으고 평정심을 지니시길 기원합니다.
그날이 오면!
심 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짚혀 용솟음 칠 그말이
이 목숨이 끈지기 전에 와 주기면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려받아 울리우리다.
두개골은 쪼개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원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넒은 길을 울며 불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이 가슴이 미어지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크다란 북을 만들어 둘쳐메고는
여러분의 행열에 앞장서 오리이다.
우렁찬 그 소리른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구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김동운님의 댓글
아름다운 얘기는 누가 더 당면한 시대의 지혜로운 의인이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다소 방향이 다른듯 하나 다함께 우국 충절의 의기가 넘쳐나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살아 있는 선비 정신을 소개해 주신 해관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다만 오늘의 우리의 상황은 올바른 정보와 판단의 부재로 인한 갈등이 가슴을 저미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도 논리보다 아름다운 형제정신(선비정신)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저들 오랑캐가 싸움에 이긴 다음에 조선 조정의
척화정책을 추궁해 올 것으로 보는데...
그때 조정에도 최명길과 같은 화친론자가 있었음을 내세운다면
피해를 줄이게 되지를 않겠습니까.
또 누군가가 나서서 오랑캐에게 간과 쓸개를 모두 내주고서라도
임금의 성덕에 누를 끼치는 일만은 막아야 하지를 않겠습니까.~~
좋은 이야기를 올려 주셨군요.
몇 밤을 지나고 나면
우리들의 역사에는 그 이름도 거룩한 성전의 결과가 나옵니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고 부끄러운 성전입니다.
전쟁을 걸어온 처지도, 앉아서 당하고 만 처지도,
모두가 불명예스러운 그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화친을 생각했냐고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과연 하늘과 땅은 어디에서 숨죽이고 있었나요?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과연 우리들은 하늘과 땅을 진심으로 사랑을 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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