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석 회장님 성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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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90여명이 있는단체카톡에 미국에서 올린글을 복사해 올립니다
이재석 회장님
바로 이틀 전, 가까운 선배 한분으로부터 회장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장님의 성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대하고 있는 저는 회장님의 성화를 대해 공경하는 마음으로 깊이 애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뜻길에 접어든 후, 줄곤 회장님을 우러러 존경해왔고, 우연찮은 인연으로 저희 부부는 회장님을 가깝게 모실 수 있는 기회까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베풀어주신 따뜻한 사랑을 받았고, 받은 그 사랑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7년부터 저는 시카고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었고, 회장님께서는 회의차 미국에 오실 때마다 자녀분들이 시카고에서 학업을 하고 있었던 탓으로 시카고를 들르시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회장님을 가깝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모실 수 있는 값지고 알찬, 정말이지 고귀한 기회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방문하셨을 적에 일요일이 낀 날은 주일예배를 반드시 참석해주셨고, 그것도 맨 먼저,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다른 식구들 모두 참석할 때까지 기도하는 자세로 기다려주곤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정말이지 몸둘 바를 몰라하면서 회장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주일 설교를 어떻게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만큼 허둥대기까지 하였고, 그후, 회장님께서 참석하실 때의 설교는 원고를 작성하여 그대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회장님께서는 저에게 먼저 다가오셔서"잘 썼어요" 라고 격력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회장님,
어찌 그같은 회장님의 따뜻한 사랑과 바른 매너, 그리고 겸손하신 그 신앙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실천의 본으로 일깨움을 주신 건 물론, 무언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주셨던 그 거룩한 행적을요.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잊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같은 생각으로 회장님을 그리워하면서 가시는 그 길을 한없는 마음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후, 그러니까 1996년, 저는 국가메시아를 명 받고 임지였던 캄보디아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집안 사정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여 끝까지 임지를 사수하지 못한 채, 2000년대 초반, 가족이 있는 시카고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피폐해진 살림살이를 회복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밤낮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그해 12월 11일 오후였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시카고를 또 방문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직접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그때 그러셨지요. 벨이 울리는 전화기를 켜고 제가 먼저 "여보세요" 라고 하였고, 그 소리를 알아들으신 회장님께서는 "여보세요? 전목사님이세요? 저 이재석입니다"라고 말이에요.
저는 그때, "저 이재석입니다" 라고 하신 수화기 속 정감어린 그 음성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까닭모를 눈물이 앞을 가려 눈조차 바로 뜰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흘러내렸으니까요. 정말 저는 울었습니다. 저는 그때, 비즈니스는 물론 부동산 에이전트와 상업용 부동산 관리까지를 병행하면서 무너져내린 가정 살림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휴일과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문에 교회와 다소 떨어져 소원해진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탓에 외로움과 서러움을 더욱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침 그때, 회장님께서 저를 찾아주셨고, 그때문에 회장님의 따뜻한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같이 눈물이 흘러내렸는지 모릅니다. 주신 사랑이 너무 크고 너무 따뜻했기 때문으로요.
그리고 그날 저녁, 회장님께서는 저에게 주실 손수 쓰신 저서 3권을 들고 사모님과 함께 음식점으로 나오셨습니다. 물론 저 또한 제 집사람과 함께 그 식당으로 갔고, 거기에서 두 내외분께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3권의 책은 "사람의 길을 찾아서" 와 "종교의 길을 찾아서",였으며, 그리고 또 한권은 "평화의 길을 찾아서"였습니다. 그 책을 친히 서명해주셨고, 그 날짜는 2008년 12월 11일로 돼있습니다. 책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정확하게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니까 2018년 11월 10일이었죠. 그때도 저는 전화기를 통해 같은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목사님이세요? 저 이재석입니다" 라고 흘러나온 그 음성을요. 그때도 저는 당황과 기쁜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하며 전화를 받았고, 당시엔 살아가고 있는 제 생활 형편도 많이 나아져 있었습니다. 그때문에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모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시카고에서 제일 편안하고 가장 좋은 한식당을 마음에 둔 채, 그곳으로 나오실 수 있는지를요.
그러나 그때, 막내 딸 승숙씨 댁에서 기거하고 계셨던 회장님께서는 차편이 없어 곤란하다 말씀하셨고, 저는 그러시는 회장님 내외분을 모시기 위해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셨습니다.
저를 보신 회장님께서는 저와 제 집사람의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으신 채로 그동안 잘 살았느냐며, 안부를 거듭 묻곤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축복가정이 귀하다며, "축복가정이 귀하죠? 축복가정이 귀해요" 라는 말씀을 가푸 해주시곤 하셨습니다. 막내 동생과 같은 저에게 그 부분을 더욱 상기시켜주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하면서 저는 그 따뜻한 사랑을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심정으로 저희를 대하시면서 축복가정의 소중함을 상기시켜주려 하셨던 그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을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깊이 추모하고 애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밤 늦은 시간, 저희는 회장님 내외분을 막내 딸, 승숙씨 땍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12월 초였던 탓으로 밖의 날씨는 상당히 쌀쌀하였습니다. 아니 매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님께서는 집으로 얼른 들어가시지 않고, 그 집 앞에 서서 제 집사람과 제 손을 꼭 붙들고 흔드시면서 아쉬움과 사랑이 담긴 말씀을 하고 또 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였습니다. 추운데 빨리 가라며 배웅을 해주셨습니다. 바로 그때, 회장님께서는 그 집 앞 도로에 서신 채로 손을 흔들어주셨고, 저희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같이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양 팔이 귀에 닿을 수 있을 만큼 큰 제스처로 팔과 손을 위 아래로 크게 흔드시면서 저희를 따뜻하게 배웅해주셨고, 저희는 그러셨던 회장님의 그 같이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습니다. 너무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정말이지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운전을 하느라 뒤를 돌아볼 수 없어 보지 못했으나, 조수 석에 앉은 제 집사람은 뒤로 돌아앉은 채 눈물을 흘리면서 답례의 손을 흔들고 또 흔들어드렸습니다. 한참 후, 나는 "지금도 흔들고 계신 거야" 라고 물었고, 그녀는 마치 몇십년 만에 만난 친정버지를 대하는 것 같다면서 아버지의 그 정이 느껴 온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다고 울먹이며 답하였습니다. 우리는 내처 차를 몰았고, 모퉁이를 돌아선 후에야 비로소 차를 멈추고 눈물을 닦아내며 울었습니다. 제 집사람이 더 많이 울었습니다.
아마도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신 듯 합니다. 여쭙지도 않았던 연세를 스스로 말씀하시면서 삶에 대한 진솔한 말씀과 속엣말까지도 해주곤 하셨고, 축복가정이 귀하다는 말씀을 하고 또 해주곤 하셨으니까요.
그러시면서 그러셨지요.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가시면 청심빌리지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요. 한국 나오게 되면 한번 들르라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회장님의 성화식을 먼저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눈물을 흘리면서 애도하게 됩니다. 그토록 따뜻하게 받았던 사랑을 잊지 못해서 입니다.
천상에 드시는 회장님의 성화를 진심으로 애도하면서 생시에는 존경을 받고 사후엔 추모와 애도를 받는다는 생영사애(生榮死哀)의 성어를 올려드립니다.
회장님 가시는 길이 생영사애의 길이 되길 바라면서 참아버님 계시는 천상의 천일국에 편히 안착하시길 깊은 마음으로 기원해올립니다.
회장님,
편히 가십시오.
천일국 9년, 천력8월30일 (2021.09.06)
전 캄보디아 국가메시아
전갑현 미국에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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