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내가 어찌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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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버나드 쇼 ;극작가)
시멘트나 살충제 속에서도 살아남은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에 한반 바궤벌레는 3억5천만년째
계속 진화중입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완벽한 적응력과 최고속도150Km로 이동하는 잽싼녀석 물만 먹어도 90일을 생존하며 머리가 잘려도 일주일 생존 가능하지만 혐오와 박멸의 대상일뿐 그런데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억마리의 바궤벌래중 유일하게 이름을 얻은 바궤벌레 한마리 그녀
의 이름은 “나테츠”다. 러시아 말로 “희망”이란 뜻이되겠습니다.
2007년9월14일 러시아가 생명과학 실험을 위해 우주로 보낸 무인캡슬 Fonton-M No3 그안에 60마리의 바궤벌레가 타고있었는데 가속도,무중력,급속한 온도변화로 절반이상이 죽었고12일후 살아남은 바궤벌레들만 지구로 귀환하게됩니다.
그런데 귀환후 무인캡슐안에서 벌견된 33마리의 새끼바궤벌레들이 우주에서 임신한 최초의 種으
로써 바궤벌레에게 “나테츠” 다시말해 희망이란 이름을 붙여다고합니다.
10억마리의 바궤벌레 요원들이 인간이 남긴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다가 결국에는 어느공장에서 그와같은 생의 길을 찾아가는게 그들의 또다른 생의 길이 되겠습니다.
2020년11월초 일본의 “츠구바대” 연구진은 바궤벌레에 카메라외 무선통신을 부착해서 재난현
장과 생존자를 찾는 “사이보그 바궤벌레”를 개발해내기도 했다고합니다.
“아무리 바궤벌레라 하더라도 빙하기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바궤를 굴리며 종족을 보존해온 최소한 생명의 不可思議 에대한 敬畏를 표해야합니다.”라는 “이외수”씨의 말 마따나 우리들 에게 있어서는 우리들도 아지못한 가운데 “젠장! 네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대해서도 무슨 의미가 있단말이요.”라는 질문에 대하여 무었가 끊임없이 준비하며 그와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진지한 우리들의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져서 이렇게 적어보았습니다.
이와마찮가지로 우리들 에게는 진지하게 생각하며 고민하는 자세속에서 무었가 새로운 창의적인 그리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발전할수있는 契機가 되어지기도 한다는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우리
들에게 항상 새로움으로 發展하는 契機가 되어질수있으리라 생각되어지는것입니다.
이전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알았다.”라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나타난 얘기대로 “우물 쭈물”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영어로 어뗳게 表現하는지가 상당히 궁금했던적이있었다.
그런대 진짜 원문대로 해석되어진 내용은 “나는 알았지 오래 살다보면은 이런날이 올것라는것을” “I Knew If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란것을 알았을때는 괜히 헛웃음이 나와서 괞스레 내자신이 한참 멍하니 아! 그렇수도 있겠구나!하며 그 內容에 同意
한적이 있었었던것입니다.
지난번 박태규씨가 보내온 카톡 內容가운데서 “세상에 딱 맞아 떨어지는것은 열쇠와 자물쇠 밖에 없다. 義人이란? 향과 부처처럼 自己를 찍는 도끼에게도 향을 품는 사람이다.”라는 內容을 쳐다 보면서 그것이 마음에 무언가 남아져 나도모르게 한참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다만 긍정을 물처럼 흐르게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하여라” 아모스 예언자의 외침과 같이 매순간에 우리들은 스스로 砲機할수없는 어떤마음에서 부터의 긍정의 마음과 하염없이 솟구치는
이름모를 옹달샘의 물들이 졸졸졸…소리를 지르며 정의의 강물처럼 넘치게 흘러감으로써 이세상
의 모든 存在는 부족한것이아니요.넘치는것도 아니예요. 存在는 다만 存在일 뿐이예요라는 법륜스
님의 법문을 통하여 내자신에게 새롭게 다짐을해봅니다.
“젠장! 내가 뭘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라는 외마디가 뭔지? 모르게 내마음 깊은곳으로부터 흘러나와 하염없이 깊은 想念가운데 잠겨봅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라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틀속에서는 시작과 끝이 있고 시작과 끝이라는 단어가운데 에서는 머무는 오늘의 日常속에서 누구나가 예외없이 현실가운
데 阿翁多弘하며 살아가는 日常的인 生活들이 차라리 普遍的인 內容으로서 常識으로써 살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치만 常識을 뛰어넘는 本質의 세계의 내 自身이 들어서게 됐을때 “믿음”이라는 또하나의 세계가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좋은것을 豫備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보존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니라.”라는 하나님의 시간 가운데 들어가게되는 히브리서11장40절에 부딪히는 내 自身를 發見하게되는것입니다.
다시말해 시간의 永續性 그속에서는 시작과 끝이라는 말이 없는 世界 하나님의 世界가 사도바울
이 느꼈던 하나님이 인간을 創世 전부터 택하셨다라는 사람에게서는 그 始作과 끝은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始作과 끝은없다. 단지 영원한 始作만이 존재하는 時制로 이동하는 그런 느깜입니다.
우리들이 지금으로 부터는 우리들의 모든 時間과 空間을 인간의 時制로부터 하나님의 時間과 空間속으로 옳기는 作業이 必要하리라 생각하는것입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옳기게 되었을때 하나님이 함께하실것이란게 저의 所見입니다.
부디 이아침 여러친구여러분에게도 새로움이 함께하길바램니다.
뉴욕에서 한 연 수 올림 2021년 8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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