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양령대군의 형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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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령대군(讓寧大君)과 평양기생 정향(丁香)
태종 이방원은 왕권을 탈취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형제를 살육했으나 그 아들은 달랐다.
태종의 아들인 양령대군, 효령대군, 세종인 충령대군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해 봄인가 양령대군이 동생인 세종대왕에게 평양을 구경하고 오겠다고 하였다.
세종대왕은 쾌히 승락하면서 절대로 민폐를 끼지지말 것과, 색향인 평양에 가서 주색 일체를 하지 않기로 다짐을 하고 떠나라고 하였다..
평양에 도착한 양령대군은 몇일을 재미 없이 무료하게 보내던 중 평양감사가 저녁상을 바치고 인사를 올린다.
평양에는 홍로주(紅露酒)나 계당주(桂糖酒) 같은 맛 좋은 술이 있으나 대왕께서 엄한 분부를 하셨으니 아니될 일이고, 그져 밥알이 뜬 단술(甘酒)이나 드십시오."라고 하였다.
"술은 아니 되나 감주라 하니 그리하리다."하고 마셨는데 그건 단 술이었다. 취기에 도도하여 기분이 좋은 판에 고양이가 허물어진 담 사이로 닭다리를 물고 들어오고, 뒤를 이어 소복한 여인이 쫓아 들어왔다. 그녀는 세종대왕이 평양감사에게 지시하여 준비된 정향이란 기녀였다. 양령대군은 그것도 모르고 그 여인에 마음이 동하여 늦은 밤 담을 넘어가 정향과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평양 나들이를 마치고 궁궐에 돌아 온 양령대군을 위하여 왕은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기생의 노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평양에서 정향이 정표로 치마자락에 써달라고 하여 써준 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 못보리
어느 때 다시 만나 즐길 것이랴
그대의 고운 얼굴 언제 볼거나
수심에 잠긴 얼굴 거울만 알리..
양령대군은 태종의 마음이 충령에게 있음을 알고 스스로 미친척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였다. 그리하여 동생에게 대권을 물려 받도록 도와주었다. 그 후에도 동생 충령대군(세종)을 위해 유유자적하며 풍류로 세월을 낚으며 살았다. 여러모로 재주가 많았던 효령대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형들이 없었더라면 세종대왕은 500년 조선왕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을 세운 대왕이 되지 못했으리라.
장자세습 원칙대로라면 당연히 왕이 되었어야할 형님 양령대군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은밀히 보살펴 주었던 세종대왕의 음덕이 우리를 감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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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 생애>
1394년에 태어났다. 1404년 왕세자에 책봉되고, 1406년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왔다.[1] 1407년 김한로의 딸과 혼인하였다. 품행이 자유분방하여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유정현 등이 상소를 하여, 1418년 세자에서 폐위되고 양녕대군에 봉해졌으며, 그 대신에 아우인 충녕대군(세종)이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동생의 즉위 이후에도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그의 비행에 대해 신하들은 여러 번 탄핵하였으나 세종은 그를 배려해 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453년에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수양대군의 편을 들어 그를 독려했고, 심지어는 안평대군을 사사시키라고 간청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유정난이 끝나자 단종을 죽이라고 간청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유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1462년(세조8년)에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문학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국보 1호였던 숭례문의 간판의 글씨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 세자 폐위 배경>
김시양(金時讓)은 저서 자해필담(紫海筆談)에서 양녕대군의 폐세자 원인에 세가지 추론을 하였다. 첫 번째로는, 양녕과 아버지 태종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양녕대군이 세자로 있을 때 태종의 뜻이 세종(충녕대군)에게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미친 척하고 자리를 사양하니 태종이 곧 폐하여 세종을 세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양녕대군과 동생 충녕대군의 관계에 대해서,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에서 폐위된 뒤 한성에서 외지로 쫓겨나 경기도 이천군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세종대왕이 몰래 양녕대군을 불러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와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데, 세자(양녕대군)의 계속된 비행으로 아버지 태종이 몇번 질책하자, 불만을 품고 태종에게 “자신은 잘못이 없으며, 아버지(태종)은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시면서 왜 저만 못하게 하시느냐”하는 상소를 올려 태종을 비난했다. 이에 분노한 태종은 세자를 폐하여 이천군으로 귀양보내고 동생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넘겨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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