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곽씨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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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 주막
천안곽씨(天安郭氏)에 얽힌 이야기
나는 1995년 중국 요녕대학에서 "21세기 동북아 전망"이란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한바 있다. 이자
리에는 중국, 북한, 일본에서 각기 15명의 학자들이 참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연
구원) 이영덕 원장을 단장으로 15명의 학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동해안에 무장 간첩선이 출몰하는
바람에 국내 정서상 모두 참석하지 못하고 나만 홀로 업저버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개회식을 마치고 영빈관에서 환영만찬회가 열렸는데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식 원탁 테이블에 10명씩 앉게
되었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는 요녕대학의 최정석(조선족)교수와 나를 제외한 8명이 모두 북한학자들이었다. 다
른 테이블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유독 우리 테이블만 무거운 침묵 속에서 묵묵히 밥만 먹을 뿐이었다. 따분
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진수성찬으로 차린 산해진미도 즐겁질 않았다. 먹은 것이 얹힐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골몰하며 동석한 교수들의 명찰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바로 내 오른쪽에 이xx박사, 왼
쪽에 정xx박사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북한 주체과학원 소속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는 순간 어색한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지혜가 섬광같이 번뜩였다. 마침 그들 중 한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고선생이 근무하는 선문대학교가 어디에 있습네까? "
"충청남도 천안에 있습니다."
"거 흥타령으로 유명한 천안입네까?"
"그렇습니다. 선생들은 천안삼거리와 천안곽씨 유래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없습네다. 어디 한 번 얘기 해보시라구요."
이렇게 하여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그럼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지요."라며 "천안곽씨"
에 얽힌 소화(笑話)를 풀어 나갔다.
"조선시대 천안삼거리 주막에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하루 저녁에 주모가 손님 셋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임신이 됐답니다. 달이 차서 아기를 낳았는데 애 엄마인 주모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아기가 그날
밤 상대했던 세 남자 중 누구의 씨인지 몰라 어떤 성을 붙여야할찌 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묘안을 떠
올렸습니다. 첫번째 사랑을 나눈 사람이 고(高)가 였기 때문에 高자에서 입구(口)까지 따고, 두번째 상대했던 이
(李)가에게서 아들자(子)를 따고, 세번째로 관계했던 정(鄭)가 에게서 오른쪽 변을 따서 천안 곽(郭)씨라고 했답
니다. 그런데 결론이 중요 합니다. 그 주모를 품었던 첫번째 고가의 후손인 내가 오늘 이렇게 가운데 앉아 있고,
이어서 관계를 맺은 이가와 정가의 후손인 이박사와 정박사가 좌우에 자리를 함께 하였으니 우연치고 이런 우연
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내 이야기가 끝나자 장내는 폭소의 도가니로 변했다. 박장대소하다가 포복절도하는 이도 있었다. 그게 화두가 되
어 조금 전까지 어색하고 딱딱했던 분위기가 싹 가시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곽씨는 대부분 현풍곽씨이다. 최근에 발간된 한국의 성보(姓譜)에도 "천안곽씨"는 나오지 않는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천안곽씨는 찾아 볼 수 없다. 천안곽씨는 다만 야사에만 전해질 뿐이다. 암튼
정사(正史)도 아닌 야사(野史) 속의 "천안곽씨"가 남북 간의 어색한 만남을 말끔히 씻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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