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하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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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하늘 못
김 정 환
백두에 올라 예를 보아라.
하늘의 뜻이 이 땅에 내리시고
그 성령이 백두대간 줄기를 종주하여
남해안 구재봉(鳩在峰)까지 삼천 육백 칠십 리
그 이름 찬연한 대한민국의 터전이다.
수천 만 년 세파에 시달려 온 너!
이 강산, 겨레의 영원한 보금자리로 자라왔으니
백의민족의 터전이요
칠천만 겨레의 산실이다.
새하얀 하늘에서 돌이 된 황궁씨(黃穹氏)
환웅께서 세우신 태백산 신시(神市)
단군의 꿈 서려있는 민족의 조종산(祖宗山)
민족정신 근원의 상징이다.
고구려 말발굽소리 우렁찬 오녀산성(五女山城)
동가강(佟佳江)을 끼고 흐르는 환인(桓因)평야
대흥안령(大興安嶺)과 아무르강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의 위용이 보이는구나.
오~ ! 조국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여
온 누리 밝혀주는 횃불이 되리라.
겨레의 얼이 굽이쳐 온 기름진 젖줄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나라의 넋이 뻗어 내린 줄기찬 맥락
한라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피 끊는 위용을 세계로 세계로
저 넓은 우주를 향하여 비상하리라.
지금 백두산 반쪽은 남의 땅
1712년 조선과 청나라 정계비(定界碑) 있었거늘
어찌하여............
1962년 조.중 변계조약으로
민족의 성산마저 반으로 잘려야 했나 !
왜 곧바로 우리 땅, 최고의 장군봉(將軍峰)을 오르지 못하고
돌고 돌아 중국 땅, 천문봉(天門峰)을 먼저 밟아야 하나 !
아~ ! 슬프고도 원통하다.
백두산 하늘 못 화산의 분화구에
성화(聖火)의 불씨를 다시 지펴라.
저 그늘진 민초들에게
가뭄에 내리는 소낙비가 되고
백두산 미인송 같은 올곧은 기개가 되어
분단의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하라.
다시 하나 되는 그날까지
활활 타오르게 하라.
지축(地軸)을 울려라.
천지를 향해 포효(咆哮)하거라.
통일의 그날 다시 올라
더덩실 춤추며 목 놓아 외쳐 보리라.
[주]이 시는 필자가 동양일보 주최로
2010. 10. 14. 17:00 청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명사초청 시낭송회'에 초청을 받고 나가 낭송한 것이다.
참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용이 너무 좋고 감동적이라고 하여
기쁨을 공유하고자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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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원님의 댓글
그런 추억이 있었군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요.
난 이명박 대통령이 아태환경포럼 총재 당시 백두산을 오른적이 있습니다.
가는 길에 자동차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예정시잔 보다 2시간 늦게 도착했지요.
하여 내일 등반을 하자고 하니 총재님께서 "내사전에 내일은 없다."고 하여 등반을 했는데
정상을 거쳐 천지에 이르니 어둠이 깔렸습니다.
어둠을 뚫고 내려오다가 일행이 잠시 쉬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얀 목화송이 처럼 생긴 커다란 별들이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백두산 정상에서 본 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천신만고 끝에 본 백두산이 더욱 신성하게 보였겠구만.
고생과 일시적 실망감에 비례하여 감동도 컸겠고..........
그러나 나는 아홉번 올라가서 아홉번 다 색다른 모습을 보고 왔다네.
천지를 못 본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하여 열번가서 한두번 보기 힘들다는 말은 좀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싶다네.
머지 않은날, 참부모님 생전에 정주와 안주를 거쳐
영산을 다시 한번 오르고 싶다는 말 완전 공감일세.
오늘도 좋은 일 많기를 빌며..........
고종우님의 댓글
아랫동래 숙소에 자라잡고 새벽 천지를 재도전 하기로 했어요.
언제 그랬느냐고 날씨는 화창 했고 어제의 솜코트는 내던지고
한국 가요가 찦차에서 흘러나오는 곡조에 장단을 마추며
단숨에, 한걸음에 올랐어요.
우리는 만세 삼창 사창 하나님 참부모님 감사 감사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
귀한글을 읽으며 그 때의 생생한 감동이 솟구쳐 열거 합니다.
머지 않은날,참부모님 생전에 정주와 안주를 거쳐
영산을 다시 한번 오르고 싶은 맘을 또 한번 기도 합니다.
고종우님의 댓글
그 만큼 천지를 만나며 감사하라는 뜻이겠지요
5 년전 1800 본부 형제들이 9 월1일에 올라 가던날
청명하던 날이 갑자가 채감온도가 영하 15도나 떨어져
3000원씩주고 솜코트를 빌려 입고 눈보라 컥컥대며 올랐죠.
아뿔사 천지는 커다란 안개 보자기로 폭~~덮여있었죠
평생 처음 상봉을 설레며 돌아 돌아 세월돌아 올랐건만
만감이 교차 했으며 이산가족이 기약없는 이별하며 땅을치는
그 마음을 가히 짐작이 가더라구요.
뒤돌아 보며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은 태산같은 아쉬움 이였어요.
고종원님의 댓글
시정(詩情)에 목이 메이고, 감격에 전율을 느끼셨다구요?
저도 명사초청 시낭송회에 가서 이 시를 낭송 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하여 억지로 참았습니다.
끝나고 내려오니 많은 사람이 눈시울이 시큰 했다고 말했습니다.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동양일보 조철호사장(시인, 시낭송가협회 회장)이
엄지 손가락을 내밀며 축하와 격려를 해주더군요.
뜻을 아는 뜻길을 가는 식구들은 이 시를 대하면 모두 회장님과 같은 느낌을 갖게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감사 합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나는 백두산을 아홉번 등정을 했습니다.
가족들, 친구, 동창, 고향인 청양군수 등 유지, 전국대학통일문제연구소장들, 화가, 환경운동가 등....
그 중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기 직전 내가 안내하여 등반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형모님처럼 봉오리 다섯개를 오르는 등반은 못해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일정을 짜서 꼭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백두산 천문봉 정상에서 KBS 이웅수 가자와 인터뷰를 한 일도 있습니다.
그 때 나도 북쪽의 봉우리를 오리지 못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대해 말한바 있습니다.
우리 생전에 꼭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맘 간절 합니다.
양형모님의 댓글
몇년전에 백두산 천지의 천문봉을 중심으로 등산의 기회가 있었을때였다.
천지를 중심으로 북쪽과 중국쪽의 높고 낮은 봉오리가 12개정도있다.
그중 중국쪽의 봉오리 5 개를 오르고 내렸던 기억이납니다.
그때 시간은 아마 24시간 걸렸을게예요.
내 생애에 등산할때 가장 많이 헀던 기억이납니다.
등산로 길을 처음 개발해서 시범으로 25명이 다녀왔었지요.
아쉬운것이 북쪽의 봉오리를 언제나 가 볼지........
선배님의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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