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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년 미소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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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교 하고 온양교회서 헌신을 하던 시절이다.

교역장님은 기성가정이신 신 목사님이신데 지금은 몸이 아파서

충남 둔포 어디에서 투병중이신것 같다.

나는 1,8가정에게 전도 되어 75년 11월 7일수련후 보따리 싸들고 교회에 왔다.

그러니 1,8 가정들이 임지를 하던 시절 같이 교회에서 살았다,.

목사님 댁은 사실 온양은 아니고 당진인가 그랬는데 목사님 사모님과 어머니가

농사 지으신 농산물을 가끔 가지고 온양교회에 오시곤 하셨다.

사모님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아들 딸 남매를 혼자 기르 시는 것이다.

그때 사모님이 오실때 늘 엄마 치맛자락에 숨어서 얼굴을 빼꼼 내밀던

초딩 5학년 미소년이 있었다.

참 잘 생겼다. 반듯한 이마며 오똑한 콧날 발그스럼한 복숭아빛 피부를 가진

소년은 늘 대원을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가난해도 빈티가 안나고 귀공자 같은 귀티가 나는 소년은 농사지은 콩이나 팥

배추 양파 같은 것들을 낑 낑 거리고 들고 들어 온다,

두어달에 한번 정도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와 같이 오기도 하고 어느때는

목사님의 동생인 삼촌과 두살정도 위인 누나와 오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소년은 참 잘생겨서 잊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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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많이 흐르고 나는 워싱턴 동경을 들락 거리다가 40대 중반에

워싱턴에 정착 했다.

뉴저지 한인교회의 목사 이름이 이상하다 . 그옛날 그 당진에서 양파 자루

들고 오던 그 소년의 이름이 이사람 저사람 입에서 거론 된다.

혹시 그소년이 자라서 목회자가??????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또 흐르고 나는 내 팔자의 역마살 따라 다시 서울에

돌아 왔다. 내가 이미 스물 다섯살이 아니니 그소년이야 마흔도 넘었을 것이지

우리 교회 남미 사건이 터지면서 그 소년의 이름이 나온다. 중심을 지키다가 구타도 당했다고

하고 아직도 그 얼굴을 모르니 예전의 그 미소년이라고는 믿을수 없다~~

그러다 오늘 피스 티비를 보고 브라질 식구님을 모시고 소개 하는 어느 지도자 얼굴을 보았다.

신동모~~~~동모 ~~얼굴이 피스티비에 나온다.

그때 1975년에 초등 학생이던 그 미소년이 틀림없었다. 어릴때 모습이 남아 있다. 아니 맞네 동모네~~~~

그 유명한 남미 대륙회장 그리고 그전엔 뉴저지 한인 교회장이라던 그 이름

<목회를 잘해서 뉴저지한인 교회는 차고 넘친다고 소문이 자자함>

신동모 목사가 바로 내가 헌신학던 시절 신성철 교역장님의 아드님이었던 그장본인

맞는 것이다. 동명인이리라 생각했던 내생각은 커다란 착각이고 이젠 그 초딩 학생이 아니고

의젓한 남미 대륙 회장님이신 것이다......신동모 회장님 만세에~~~~ 어쨋든 참 반갑다,

그분이야 나를 모르지만 그의 부친께서 헌신 시절 내신앙을 키워 주셨으니 어찌 잊을수가 있으리`~

우리 뜻속의 인연은 이렇게 질겨서 살아 있으면 그저 소년의 모습을 중년이 되어도 볼 수있다는

것을 느끼며 내가 아직도 여기 살아 숨쉬고 참부모님 말씀 아래 서있게 된것이 감사 감사 하는 오늘입니다.

그리고 거울을 본다,,,,,신동모 회장도 소년이 아니고 중년이듯이 나도 아가씨가 아니고

할머니 인것을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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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이태임님의 댓글

유노숙님
글 너무나 감동스럽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니깐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리고 방학이되면 언젠가 산에서 만나길 기대 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이 사랑방이 성약시대의 사도행전임을 느끼게 하시는 증거를 보면서,
특히 자신이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이렇게 증거해 주는 정보시대의 利器임을 실감 합니다.

김태순님의 댓글

유노숙씨와의 인연은..
이웃사촌 같네요~~
노숙씨 고향은 온양, 나는 천안 병천인데요~~

신성철 교회장님은..
옛날의 우리 병천교회 교회장님으로 계셨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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