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천로역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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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겨 보는 아버님 생애-1
※ 요즈음 같은 분위기에서는 지난날 ‘역경의 천로역정’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로 생각되어 5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내가 총반장이 된 뒤로 문선생님께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당시 일 중에서 제일 쉬운 일이 뭔가 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던 비료 가마니 묶는 일이었다. 그것은 책임량도 없었고 가마니 끝을 묶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선생님을 거기로 배치했다.
그렇게 일을 시켜 놓고는 한 사나흘 후에 갔는데, 나는 선생님께서 ‘쉬운 일을 하게 해 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다. 내가 “어떻습니까?”라고 했더니, 나를 앉혀놓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나의 육신을 힘들지 않게 해주려고 거기에 배치해 주었다마는 지금 내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죄 때문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경륜하기 위해서 들어왔다. 그런데 이렇게 편안히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 앞으로 우리가 사회에서 큰 뜻을 펼치려 할 때 사탄이가 참소를 한단 말야.”라고 하셨다.
사탄이는 “네가 그 감옥에서 네 힘으로 나온게 아니지 않느냐? 박정화라는 사람이 총반장이어서 너를 험한데 일을 안 시켰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너도 죽었을 텐데 무슨 소리냐?” 라며 참소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탄이가 참소하면 하나님도 참소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내일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아라.”라고 하셨다.
나도 설명을 들어보니 그동안 몽시받은 내용도 있고 해서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선생님은 [하조]하는 곳으로 자꾸 가시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조하는 곳에서 한 일주일 일을 하시게 하였다.
주>1. 박정화 : 1913.12.7. 평남대동군 고평면에서 중농가의 외동아들(1남3녀)로 태어남.
숭실중, 숭실전문 2년, 만주 신경공업전문 토목과 졸업. 일본군 공병중위, 평양지구 철도보안대 중대장 거쳐 대대장 승진. 사리원 근무중 ‘직무태만’사유로 2년 6월 징역언도 받고 ‘흥남특별노무자수용소’에 수감중 참아버님 만나 ‘감옥에서의 12제자가 됨. 그 후 평양에서 부산까지의 3인의 노정(김원필 선생님과. 박정화씨는 경주까지)중 다리를 다쳐 때로는 업고 때로는 자전거에 실려온 ’만고풍상 천로역정‘의 한 주인공이 됨.
주>2. (꿈에서 하얀수염이 난 노인이 ‘그 분이 재림주다’라고 했고, 선생님께서 그 일을 훤히 아시며 지적해 준 뒤) 그 당시 나는 문선생님을 재림주로 알고 난 다음부터는 이신전심으로 그 분에게 ‘선생님’이라 했고 선생님은 나에게 ‘정화야’라고 마치 아들을 부르듯 했다. 나도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던 때인데도 무조건 친아버지 같이 생각되어 ‘선생님’하고 깍듯이 대했다. 이전 같으면 ‘네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라고 할텐데 그런 마음이 안 들었다. 내가 7년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하나도 안들고 꼭 친아버지 같이 생각되었다. 또 그 말하는 음성과 태도가 자식을 사랑하는 태도 같았다.
출처 <史報> 제157호(1999년) P80-81 박정화의 <스승 문선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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