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漢詩51. 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 -朴趾源(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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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漢詩51. 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 -朴趾源(박지원)-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아형안발증수사, 매억선군간아형)
형의 얼굴은 나와 닮아서, 선친은 나를 볼 때마다 형을 생각하였네.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금일사형하처견, 자장건매영계행)
오늘은 그리운 형을 어디에서나 만날꼬,
장차 내 모습을 계곡의 물에 비추어 보려하네.
[선군(先君)]; 돌아가신 아버지,
(袂-소매 몌) [건매(巾袂)]; 수건과 소매, 모습,
1. 작자 소개
①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영조, 순조 연간의 문인, 학자로 자(字)는 중미(仲美), 호(號)는 연암(燕巖)으로 명문의 후손이나 父는 벼슬이 없었다.
② 20대에 文才를 인정받고 30대에는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35세 과거 응시의 포기시까지 문장수업에만 몰두했다.
③ 30대 후반에는 소위 실학파라고 하는 사람들- 홍대용, 정철조,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어울려 고금의 제도, 풍습, 산업, 경서 등을 토론했다.
④ 40대 초반에는 박명원(朴明源)의 진하사(進賀使) 북경행(北京行)에 수행하였는데, 북경에서 많은 선진문물을 접하고 실학사상을 돈독히 하는 계기를 가졌다. 귀국 후 쓴 기행문이 유명한 「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⑤ 「서경(書經)」의 ‘정덕이용후생(正德利用厚生)’의 어순을 바꾸어 ‘이용후생정덕(利用厚生正德)’을 주장했고, 백성과 나라에 도움이 되는 법이라면 그것이 이적(夷狄)에게서 나왔다 해도 취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⑥ 문장면(文章面)에서도 당시 존중되던 고문체(古文體)를 따르지 않고 자기 나름의 문체를 만들어 썼다. 이른바 ‘연암체(燕巖體)’가 그것인데, 매우 발랄하고 진솔하여 양반들의 비위에 맞지 않았던 모양으로 正祖는 이에 대해 문체순정(文體醇正) 운동을 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했다.
⑦ 그의 저술로는 시문(詩文), 잡서(雜書)를 총망라한 「연암집(燕巖集)」을 들 수 있는데, 이 중 「열하일기(熱河日記)」속의 한문단편들, 즉, 「허생전(許生傳)」「양반전(兩班傳)」「호질(虎叱)」등 3대 작품과 「마장전(馬駔傳)」「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민옹전(閔翁傳)」「광문자전(廣文者傳)」「우상전(虞裳傳)」등은 문학사상 높게 평가받고 있다.
⑧ 「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본산학자전(鳳山學者傳)」등은 이름만 전하고 내용은 망실(亡失)된 작품이다.
2. 작품해제(作品解題)
① 이 시는 연암(燕巖)에서 세상을 떠난 형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것인데,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을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② 시인의 얼굴과 모습이 돌아간 형과 너무나 닮았기에 시인의 선친은 시인을 볼 때마다 형이 생각난다고 한다. 이제 형이 세상을 떠난 연암계곡에서 형을 생각하니 슬프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계곡의 물에 비춰 보면서 형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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