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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야구가 싸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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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야구가 싸우면...

(사오정의 대답) ‘배고픈 놈이 이긴다’(아직도 뭔말인지 모르시면 [지회활동]부산지회 503번 참조)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감동적 장면은 야구 금메달과 관련된 얘기였다.(사이버 투표에서도 ‘야구 결승전 정대현의 마무리’임) 아마도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서 축구와 야구는 난형난제 일듯 싶다. 필자나 우리 식구들은 피스컵의 영향으로 축구에 보다 높은 점수를 주겠지만.

지난 2002한일월드컵 당시 우리 대표팀이 히딩크라는 거장의 지휘아래 4강에 올라간 쾌거나 이번 올림픽에서 9전 전승의 기록으로 우승한 야구의 전적은 아마도 우리 세대에 다시 보기 어려운 역사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 대단한 쾌거였다.

축구와 야구 모두 개성있는 장점이 있고, 또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판적 견해가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나타내는 스포츠(유목민 시대의 짐승사냥이 시원이라는 등)이며, 규칙이 쉽고 단순하며, 언제 어디서나 쉽게 직접 참가할 수 있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운동으로 얘기 된다. 반면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축구가 머리보다는 몸에만 중점을 둔다느니, 원시적이라느니, ‘공은 둥글다’는 표현처럼 그 승부에 변수가 많다는 등 비판적이기도 하다.

한편 야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근대에 들어와 많이 보급되고 좋아하는 운동으로 성장했는데, 축구에 대한 비판의 반대로 그 장점을 해석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필자는 야구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장단점을 표현할 수 없지만, 한마디로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는 점’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규칙도 좀 복잡한 것 같고, 과학적 합리성을 자랑하는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을 보면, 머리를 써야하는 스포츠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축구의 월드컵 대회가 모든 스포츠의 종합 제전인 올림픽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다음 런던올림픽에서 야구가 제외된다는 현실에서 보면, 축구와 야구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을 것 같다. 야구의 단점 중의 하나가 승부를 가르는 여러 변수 중에서 다수의 선수 보다는 투수에 치중되는 면이 강하다던가, 우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던 바와 같이 주심의 판정(스트라이크 존)여부에 승패가 갈리는 비과학성?이 아닌가 한다. 이제 야구와 축구에 대한 상식을 백과사전을 통해서 살펴본다.

[야구]

9명으로 편을 이룬 두 팀이 9회에 걸쳐 서로 공격과 수비를 9회까지 번갈아 하여 거기서 얻은 득점으로 승패를 겨루는 구기이다. 공격측은 타순에 따라 상대 투수의 공을 치고 1·2·3루를 거쳐 본루로 돌아오면 1점을 얻는다. 1루·2루·3루·홈베이스의 4개 베이스를 사용하므로 베이스볼이라고 한다. 미국·일본에서 가장 성행하였고, 한국에서도 인기 구기종목 가운데 하나이다.

야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3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이 라운더스가 되고, 이것이 발달하여 야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9세기 전반 무렵에 배트와 공을 사용하는 놀이가 성행하여 라운더스나 피더, 포코너즈 등으로 불려왔는데, 이것이 미국에 전해져 1775년의 미국 독립전쟁 이전에 동부 해안지방에서 많이 하다가 19세기 중엽 무렵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당시의 경기방법은 매우 간단하여, 투구자가 공을 던지면 타자는 이를 치고 베이스로 달리는데, 수비측도 공을 잡는 즉시 베이스로 달려가 수비측이 빠르면 아웃, 타자가 빠르면 세이프가 되었다. 베이스도 오늘날과는 달리 말뚝이나 구멍이었고 인원수도 시합마다 달랐다.

1830년에는 보스턴(Boston)에서 라운더스를 모방한 타운볼이라는 경기가 시작되었고, 3년 후인 1833년에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역시 같은 무렵 뉴욕(New York)에서도 내용이 약간 다른 타운볼이 선을 보였고, 이와 같은 놀이경기가 발전하여 순수경기로서의 야구로 변천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은 1907년 운동구 상점을 하는 스폴딩의 의뢰로 구성된 베이스볼 기원조사위원회가 조사한 것으로, 야구는 1839년 뉴욕주 쿠퍼즈타운(Cooperstown)에서 애브너 더블데이(Abner Doubleday) 소장(少將)이 창안했다는 설이다. 즉 이 야구는 1·2루 간과 2·3루 간에 야수를 2명씩 두고 11명으로 팀을 짜서 시합을 하였다고 한다.

1939년 뉴욕 도서관의 헨더슨이 조사한 결과 1750년 이전에도 영국에서는 배트와 공을 사용하는 베이스볼이라는 것이 있었고, 1789년 출판된 그림책에 삽화가 그려져 있는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두번째 설의 신빙성은 적어졌다.

이밖에 미국대륙이 발견되기 전 러시아에 라프타라는 배트와 공으로 하는 경기가 있었는데 이것을 모방한 것이 야구라는 설도 있다. 1841년 무렵에는 베이스도 고정되었고 팀이 만들어져 현재와 같은 다이아몬드형 필드가 고안되었다.

1846년에는 1팀당 9명으로 하는 규칙도 만들어졌고, 앞에서 말한 니커보커야구협회와 거기서 갈라져 나온 뉴욕 나인과의 최초의 클럽전이 있었다. 1858년에는 전국야구선수협회가 설립되어 야구에 대한 관리를 하게 되었다. 1869년에는 신시내티(Cincinnati) 레드스타킹스 클럽이라는 최초의 직업야구단이 생겨 흥행에 성공하였고, 1875년에는 세인트루이스·신시내티·루이스빌 등의 야구클럽 대표단이 모여 현재의 내셔널리그가 창설되었다.

이에 1901년에는 아메리칸리그가 결성되어 현재의 미국 2대 리그 체제를 갖추어 오늘에 이른다.

[축구]

축구(蹴球, soccer, association football)는 발을 이용한 구기 경기 종목이다.

축구는 출전 선수 열한 명씩 한 팀을 이루며, 두 팀이 펼치는 스포츠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1] 경기장은 직사각형이며, 바닥은 천연잔디나 인조잔디 등으로 이뤄져 있다. 경기장 양 끝에 놓인 상대방 골대 사이로 공을 통과시키면 득점이 된다. 선수 중 골키퍼만이 팔과 손으로도 공을 건드릴 수 있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팔과 손을 제외한 부위로 공을 다룰 수 있다. 주로 발을 사용하여 공을 차게 되며, 공이 높은 곳에 떠있을 때엔 몸과 머리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기 종료시점까지 더 많은 득점을 올린 팀이 승리하며, 동점일 때에는 대회 규칙에 따라 무승부로 처리하거나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승패를 결정 지을 수 있다. 보통은 해당 대회의 단계에 따라서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거나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넘어간다. 즉, 8강전 이전까지는 무승부로 처리하고, 8강전부터는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축구는 잉글랜드에서 축구협회가 창설되면서 시작되었고, 1863년의 규칙을 기본으로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주관으로 4년마다 국제대회인 FIFA 월드컵이 개최되고 있다. 이 대회는 하계 올림픽의 두 배나 되는, 가장 많은 인구가 TV로 시청하는 스포츠 행사이다.

축구의 명칭

축구(蹴球)는 '공을 발로 찬다.'라는 의미의 한자어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영어 단어 soccer를 발음한 사커(サッカー 삿카[*])를 사용하지만, 당시엔 일본에서도 축구(蹴球 슈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실 축구가 처음 한반도에 전래할 당시엔 석구(踢球) 또는 척구(躑球)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에서는 족구(足球)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3] 그러나, 한국어에서 이르는 족구는 다른 스포츠이다.

오늘날 영어에서 축구를 뜻하는 단어 사커(soccer)는 1863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가 창설되면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냥 풋볼(football)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발을 이용한 다른 스포츠 종목, 특히 럭비와의 구분을 위해 association football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것이 속어화되면서 soccer가 되었다고 전해진다(참고로 럭비는 rugger라고 불렸다).

축구가 세계적인 스포츠가 된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사커보다 풋볼을 더 흔히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발을 이용한 다른 경쟁 스포츠들 - 럭비, 미식축구, 오지풋볼, 갤릭풋볼 등 - 이 인기를 끄는 몇몇 나라에서는 풋볼보다 사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여러 스포츠가 동시에 치러지는 올림픽에선, 이 경기 종목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풋볼이라 부르고 있다.

축구의 역사와 발전

전 세계의 축구의 인기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나라들은 초록색으로, 축구가 인기있는 스포츠가 아닌 경우는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 초록색과 빨간색의 다양한 색의 명암은 거주자 1,000명 당 축구 선수의 숫자를 가리킨다.역사를 통틀어서 공을 차며 돌아다니는 형식의 게임은 오래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행해졌다. FIFA에 따르면, 게임의 가장 이른 형태는 기원전 2,3세기경 중국에서 행해진 현재의 축구와 비슷한 형태인 츄슈(蹴鞠 축국)이라고 한다. 한편, 고대 그리스에는 기원전 7∼6세기 무렵에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에피스키로스(επισκυρος)라는 공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형식의 놀이가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 행하진 공놀이의 한 형태인 하르파스툼은 축구의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 축구는 중세 유럽 곳곳에서 행해졌다.

현대적 규칙의 축구는 잉글랜드 사립학교(public school)들에서 행해지던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태의 풋볼을 표준화하려 한 19세기 중반의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1848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처음 작성된 케임브리지 규칙은 뒤에 현대 축구를 포함한 규칙들의 발전을 이루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케임브리지 규칙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4개 단과대학 중 하나인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여러 학교(이튼, 해로, 럭비, 윈체스터, 슈루즈버리 등)들의 대표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작성되었다. 이 규칙은 현대 축구의 규칙과 거의 유사했다.

그러나 이 규칙은 처음엔 보편적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1850년대 사이에 이르러, 여러 학교 또는 대학교에서 분리되어 다양한 형태의 축구를 하는 많은 클럽이 영어권 곳곳에 형성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857년에는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인 셰필드 FC가 사립학교의 졸업생들에 의해 창단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셰필드 FC 창단을 발판으로 셰필드 FA가 1867년에 창립되었다. 셰필드의 창단은 원시적이던 당시의 축구를 현대 축구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계기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1862년에는 어핑엄 스쿨의 존 찰스 스링이 영향력 있는 한 세트의 규칙을 고안해냈다.

1863년 10월 26일 런던에 있는 학교들과 스포츠 클럽들은 프리메이슨 테이번이라는 펍(Pub, 선술집)에서 축구 규칙의 통합을 위해 모였다. 처음에는 제각기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해 12월까지 5번 정도 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점 하나의 이견으로 좁혀졌고, 여기에서 현대 축구의 첫 번째 공식 규칙이 만들어졌다. 또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축구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 약칭 FA)의 설립에도 합의하였다. 그러나 규칙의 최종본에서 '공을 들고 뛸 수 있다', '뛰는 상대를 막을 수 있다(상대의 정강이 차기, 발 걸기, 잡기 등)'등의 두 가지 규칙이 제외되면서 이에 반발한 블랙히스를 포함한 몇몇 팀은 FA에 참가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때 FA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거나, 그 뒤에 FA를 탈퇴한 클럽들이 모여 1871년 런던에서 럭비협회(Rugby Football Union)를 만들었고,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스포츠는 오늘날의 럭비(럭비 유니온)로 이어진다. 11개의 남은 팀들은 에브니저 코브 몰리(Ebenezer Cobb Morley)의 주관으로, 게임의 원래 13개 규칙을 비준하는 일을 계속했다. 당시의 규칙은 공에 대한 핸들링을 허용하고 크로스바도 없는 형태였는데, 그 규칙은 당시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달하던 빅토리안 풋볼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한편, 셰필드 FA는 FA가 그들의 규칙을 흡수하기도 하면서 경기 규칙 간에 차이가 별로 없던 1870년대까지, 독자적인 규칙에 따라 경기를 진행했다.

제1회 FIFA 월드컵(1930년) 포스터오늘날 축구 경기 규칙은 국제축구평의회(IFAB)에서 규정하고 있다. 평의회는 스코틀랜드 축구협회와 웨일스 축구협회, 아일랜드 축구협회가 참여한 가운데 맨체스터에서 1886년 설립됐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축구 대회는 FA컵으로, C.W. 얼콕이 세워 1872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잉글랜드의 모든 축구팀이 참여하여 자웅을 겨루는 대회이다. 첫 공식 국가대표팀 간의 국제경기는 1872년에 글래스고에서 벌어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기이며, 이 또한 얼콕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잉글랜드는 세계 최초 축구 리그인 풋볼 리그(Football League)의 발상지이기도 한데, 이 리그는 당시 애스턴 빌라의 중역이었던 윌리엄 맥그레고에 의해 1888년 설립되었다. 초기의 시스템은 잉글랜드 중부와 북부의 12클럽이 참여하는 식이었다. 축구에 관한 일체의 국제행사를 관장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1904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규칙을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축구 국제경기가 대중적으로 변해감에 따라 국제축구연맹은 1913년에 국제축구평의회(IFAB)의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국제축구평의회는 현재 4명의 국제축구연맹 의원과 영 4개국 축구협회에서 각각 한 명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1930년에는 제1회 FIFA 월드컵이 시행되었다.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오늘날 축구는 프로축구의 형태로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축구 경기장을 찾으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수십억의 인구가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시청한다. 수많은 사람 또한 아마추어 레벨에서 축구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한 조사에 따르면, 2억 4천 명 이상의 인구가 200여 국가에 걸쳐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축구의 간단한 규칙과 적은 경기 필수품이 축구의 확산과 대중화에 기여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축구는 많은 팬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특정 지방 혹은 전 국가적인 사랑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인기있고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주 언급된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친선 축구경기를 열고자 잠시 휴전했다. 또, ESPN의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 중계로 2005년에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휴전된 적도 있다. 그리고 코소보와 카불에서는 전쟁이 종식되고 나서 사회가 정상화되는 첫 번째 신호가 축구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축구가 전쟁의 원인이 된 적도 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 전쟁이 바로 축구가 발단이 된 전쟁이었다. 축구는 또한 NK 디나모 자그레브와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경기가 폭동으로 번짐에 따라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격화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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