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뿌리의 세 종교(기독교) 이야기⑩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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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뿌리의 세 종교(기독교) 이야기⑩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
1) 콘스탄티누스의 등장,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를 보다.
콘스탄티누스가 처음으로 기독교를 믿게 된 동기는 310년 10월 27일 경쟁자 막센티우스와 로마 근교 밀비안 다리에서 전투할 때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는 십자가 위에 쓰인 ‘십자가의 깃발로 싸우라’는 글자를 보았다. 그는 그 의미를 생각하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꿈에 하느님이 나타나서 낮에 본 것과 같은 십자가를 보이면서 이것과 같은 것을 만들어서 군기장으로 삼으라는 말을 했다. 그 후 전투에서 그는 3배나 많은 적을 무찌르고 승리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느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 배우고 옹호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기념해 로마 콜로세움 옆에 개선문을 세웠다.
2) 기독교 공인, 313년 밀라노 칙령
313년 2월, 당시 동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와 서로마 황제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혼인동맹을 맺고 발표한 칙령이다. 기독교 탄압에 종지부를 찍고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다. 가히 세상을 뒤집어엎을 만큼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리키니우스가 기독교인이 아니었기에 이 회의에서는 기독교적 용어는 전혀 없고 기독교에 우월한 지위를 주지도 않았다. 단지 기독교에게 주어진 것은 당시의 다른 종교들과 같은 혜택들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었다. 이로써 기독교의 예배가 회복되고 교회 단체가 인정되었으며 성직자들이 타 종교의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신분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기독교도들은 박해 때 몰수당한 재산을 되돌려 받고, 종교재산과 성직자에 대한 세금 및 병역면제 등이 실시되었다. 밀라노 칙령은 300여년 동안 박해를 당하며 숨어 지냈던 기독교도들한테는 무한한 기쁨이요 예수를 박해했던 유대인들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3)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의 인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헬레나 아우구스타의 영향.
-동방의 황제인 갈레리우스는 원래 기독교를 무자비하게 핍박했으나, 병에 걸리면서 반성했는 지 콘스탄티누스에게 기독인에 대한 관용을 보일 것을 유언으로 남김.
-콘스탄티누스 자신이 예수와 태양신과의 큰 차이를 알지 못했다. 274년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정복되지 않은 태양’을 로마제국의 종교로 만든 이후 태양신은 제국의 최고의 신이었다. 그의 혼동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의의 태양’이라 불렀고, 태양신을 섬기는 축일 sun-day에 기독교인들도 함께 예배를 보았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일이지만, 교회에서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예수 생일 크리스마스로 함께 기념하게 된 것도 당시 상황을 알 때 전혀 이상할게 없다.
-4개로 분리된 제국의 사상적 통일을 위해 기독교를 이용하고자 했다.
4) 니케아 공의회, 삼위일체 교리 채택
콘스탄티누스의 노모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다녀온 뒤로 아들을 설득해, 황제는 50개의 jdekd을 짓고 각 성당에 비치할 양피지 경전을 만들 비용을 내겠다고 했다. 그때 유세비우스는 아직 <신약성경>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니케아공의회를 소집해서 교리문제를 토의해 매듭지은 후 <신약성경>을 완성하자고 했다.
이로 인해 여전히 태양신을 섬기는 콘스탄티누스황제를 교회 회의의 의장으로 모시고 로마제국 내 교회의 교부들이 니케아에 모여 교리를 토의하고 아리우스파를 정죄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325년 황제는 친히 ‘제1회 니케아공의회’를 주재하고 당시 뜨거운 논쟁을 벌이던 교리문제를 매듭지었다. 그때 논쟁거리중 하나는 ‘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에 대해 예수는 아버지인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동질의 신격을 갖는다고 의결했다. 이로써 하느님. 예수.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설이 가톨릭의 정통교리로 확립되었다.
5) 교회 예배,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뀌다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부활절로 성수하도록 결의했다. 태양신을 국교로 믿었던 로마 시민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는 교회도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보도록 했다. 법령을 통해 황제는 로마제국의 2대 종교, 곧 태양신 아폴로 숭배의식과 기독교 예배를 일요일로 묶어서 단일 종교로 융합하려는 야심찬 종교정책을 시도했다. 그는 이 정책의 성공을 위해 자신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선포했다. 그 뒤 365년 라오디게아공의회에서 그리스도교회의 예배일을 정식으로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꾸게 된다.
6) 콘스탄티누스, 성베드로 대성당과 개선문을 세우다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 네로황제의 전차경기장 자리였던 바티칸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했다. 그 성당은 15세기 말 아비뇽 유수기에 비워두는 바람에 관리가 소홀해 노후화가 극심해 졌다. 그래서 16세기에 미켈란젤로에 의해 지금의 형태로 재건축되었다.
그리고 콜로세움 옆의 개선문 역시 심하게 훼손되어 1804년 다시 복원해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이 개선문을 모방해 지은 것이 파리 개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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