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뿌리의 세 종교(유대교) 이야기③ 유대교의 기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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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뿌리의 세 종교(유대교) 이야기③
3. 유대교의 기원과 역사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야훼교(Yahwism)에서 시작하여 유대교(Judaism)로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다. 야훼교는 예루살렘 성전 및 제사장 중심의 종교로 성서 시대 대부분에 걸쳐 발전되었고 서기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됨으로써 종말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유대교도 야훼교와 마찬가지로 야훼를 섬기지만 성전이 없는 상태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안식일 및 절기 때마다의 예배와 의례, 그리고 랍비들의 지도하에 경전을 연구하고 율법 준수하는 종교로 오늘날까지 정착되었다.
1) 야훼교의 기원
야훼교는 유일신으로서 야훼를 섬겼던 고대 이스라엘 왕정시대의 국교였다. 야훼교는 경우에 따라 ‘구약 시대의 종교’, ‘히브리 종교’, ‘이스라엘의 종교’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유대교(Judaism)로 발전되었다. 성서적 관점에서 이스라엘 종교의 성격은 신관(神觀에) 따라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다신교(polytheism), 모세 시대까지는 일신교(henotheism or monolatry), 그리고 시내산 사건 이후부터 유일신교(monotheism)로 발전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된다.
모세의 시내산 사건에서 비롯된 야훼교는 그 출발부터 십계명을 통하여 유일신 사상과 결부되어 있다. 고대 근동의 다신교적 환경 속에서 야훼교의 유일신 개념은 매우 획기적인 사상이었으며 야훼교의 기원도 유일신교의 역사적 형성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구약학자들은 이스라엘이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서야 비로소 유일신 개념을 확립하였고, 왕정시대(서기전 1020-586)에는 일반적으로 다신교적 경향을 나타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올브라이트를 비롯한 정통 구약학자들의 이스라엘 종교에 관한 평가는 족장시대의 다신교(polytheism)에서 출발하여 모세에 의해 유일신교(monotheism)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이스라엘의 종교는 포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유일신교로 확립되었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또한 타종교와 뚜렷이 구분되는 야훼교의 특징으로 십계명 중 제 2계명에 해당하는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나는 형상 숭배의 철저한 금지를 들 수 있는데 고고학적 발굴결과 많은 도시에서 신상들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왕정시대 동안에는 야훼가 유일신으로 숭배되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구약의 해당 본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왕정시대의 이스라엘의 종교는 다양한 이방 종교의 우상숭배가 만연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유다왕들의 치적을 기록한 왕조실록인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등에는 각 왕들이 야훼신 외의 이방신을 섬기는 산당과 제단의 건설, 아세라 및 기타 우상숭배 행위에 따라 전체의 업적이 평가되는 일률적인 기준이 적용되었다.
2) 성서적 관점의 야훼교의 기원
성서적 관점에서는 분명하게 모세의 시내산 계약과 십계명을 통해서 비로소 유일신교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수립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약학자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서야 비로소 유일신 개념을 확립하였고, 왕정시대에는 일반적으로 다신교적 경향을 나타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견해는 성서의 이방신 숭배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표현하는 해당 구절들의 역설적인 해석, 즉 당시의 종교적 상황이 다신론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여 예언자들이 유일신론을 주창할 수밖에 없었다는 판단이 가능케 되었다. 특별히 고대 이스라엘의 다신론적 상황들은 19세기말 이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빛을 보게 된 진흙으로 빚은 여신상, 장신구의 펜단트에 새겨진 아세라 여신의 모습, 이방신 숭배를 묘사하는 실린더 도장, 바알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사마리아 오스트라카의 인명들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야훼교의 기원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만난 신의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 즉 야훼로 불린 것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출 3:14). 40년 광야유랑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온 후 야훼교의 중심지는 법궤와 이를 보호하는 성막의 형태로 길갈, 세겜, 실로 등으로 이동되었다. 서기전 1050년경의 에벤에셀 전투에서 실로의 야훼성소가 파괴되고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김으로 모세 이후 200여년 지속된 야훼교가 일대 파국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다윗의 정복으로 이방도시 예루살렘이 야훼교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오며 나아가 솔로몬에 의해 웅장한 규모의 성전이 서기전 950년경 건설됨으로써 국교로서의 야훼교가 비로소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모세의 야훼교는 십계명 전반부의 제 1, 2, 3계명에서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유일신 개념, 우상숭배 금지, 야훼 이름의 신성모독 금지 등의 매우 구체적이고도 뚜렷한 신학을 보여준다. 하지만 십계명이 구체적으로 성문화된 시기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야훼교의 성격은 완전한 유일신교였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나아가 제 2계명인 우상의 제작 및 숭배 금지도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실제로 지켜지던 시기는 마카비 혁명(서기전 167년경)때부터 바르 코크바(Bar Kochba) 혁명(서기 135년경)까지의 약 300여년 기간이었다. 십계명의 제 2계명에 해당하는 우상숭배 금지조항에 위배되는 대표적인 사건들로서 아론의 금송아지, 모세의 구리 뱀, 성막의 두 그룹(cheruvim), 솔로몬 성전 지성소의 두 그룹, 여로보암의 단(Dan)과 베델의 금송아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구약시대의 우상 제작 현상에 관해 일부 학자들은 십계명의 제 2계명은 무조건 살아 있는 동물이나 인간들을 조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려는 대상을 조각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모세시대를 배경으로 볼 때 주변의 다신교적 종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야훼교의 두 가지 특징은 유일신론(monotheism)과 무형상주의(aniconism)인데 이 두 사상은 모두가 서기전 5세기경 최종 편집된 십계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역사성을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나아가 구약성서의 해당 구절들을 통해서 왕조시대의 종교 현황을 분석해보면 야훼교가 엄밀한 의미의 유일신교였다고 보기에는 여러 의문점들이 많다. 즉, 야훼는 솔로몬 성전을 중심으로 숭배되었기 때문에 지리적 관점에서 이스라엘 전역에 종교적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오히려 지방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는 별도의 성전과 산당, 제단 등에서 야훼와 함께 아쉐라, 바알 등을 같이 숭배했으리라 짐작된다. 또한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있는 법궤와 그룹(cheruv) 자체가 야훼 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여로보암이 종교개혁을 하고 단과 베델에 금송아지를 두었을 때 이것이 곧 야훼의 현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3.) 유대교는 무엇인가?
유대교는 회당 예배에서의 기도와 찬양, 그리고 토라를 비롯한 경전 연구 등을 통하여 야훼를 믿고 섬기는 종교이다. 기독교와 가장 큰 차이점은 구약성서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점 등이다. 유대교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교로서 자국 내의 600만,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1200만 등 모두 1800만의 신도를 거느린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유대교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종교이기 때문에 비록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믿고 있는 종교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세계 종교라기보다는 민족종교로 분류될 수 있다. 즉 유대교에서는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선교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유대교인이 되려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갖기 위해서는 유대교인이 되는 개종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폐쇄적이고도 민족주의적인 유대교를 우리는 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 해답은 바로 신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유대교는 기독교의 모체로서 초기 기독교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예수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들, 그리고 바울 등은 모두가 엄밀한 의미에서 유대인인 동시에 유대교인들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교를 단순한 외래 종교라기보다는 기독교의 모체로서 또한 초대 기독교 주인공들의 종교로서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유대교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주제 순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유대교가 어떻게 출발하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성서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유대교 형성사를 살펴보고, 둘째, 유대교의 신학적, 신앙적 핵심인 경전과 다양한 유대교 문학들을 소개한 다음, 마지막으로 오늘날 유대인들이 직접 지내고 있는 안식일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절기와 의식, 그리고 축제들을 이스라엘 현지에서의 체험적인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4) 유대교의 형성사
지구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유대교도 그 이전의 특정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태동하고 발전하였다. 유대교에서는 그 기원을 전통적으로 모세 시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역사적으로는 예루살렘의 성전 제사와는 별도로 지방이나 외국에서의 회당 예배를 시작한 서기전 586년 이후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즉 유대교의 기원은 성전의 희생제사인가 아니면 회당에서의 예배인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대교의 발전은 서기전 586년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시작되어, 서기 70년의 헤롯 성전의 파괴로 절정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서기전 586년 야훼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의 성전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되면서 야훼교는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성전에서의 제사 없이 야훼를 섬길 수 있는 새로운 민중신앙 운동이 시작된 것을 우리는 유대교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유대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교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토라가 정리, 편집된 것은 성전 파괴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바빌론의 유대인 공동체의 노력의 결과였다. 그 후 유대교는 성전이 서기전 515년 재건된 상황에서 일종의 과도기를 맞게 되지만 서기전 332년 알렉산더의 침공으로 그리스의 새로운 종교와 문명을 접하면서 기존의 야훼교와 유대교에 일종의 가치관의 위기가 닥쳐오게 된다.
서기전 165년 유대인 역사상 최초의 종교탄압으로 순교자가 발생하고 율법을 일상생활에서 철저하게 지키려는 복고주의가 성행하게 된다. 서기 66년의 유대전쟁, 서기 132년의 바르 코크바 전쟁 등이 모두가 일련의 민족주의적 종교적 투쟁의 결과였다. 특히 유대전쟁 직후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신봉하던 메시아주의자들(기독교인들)은 당시 로마 제국 각지의 대도시들인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에뎃사 등지에서 복음서들을 저술, 편집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이 파괴되고 서기 132년의 반란의 결과 예루살렘이 완전히 로마식 도시인 ‘엘리아 카피톨리나’로 변하게 되자 그들의 종교적 학문적 중심지가 야브네, 우자, 베잇트 쉐아림, 찌포리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서기 200년경 집대성된 미쉬나는 야훼의 ‘기록된 토라(written Torah)’인 모세 토라에 필적하는 ‘구전 토라(oral Torah)’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가져온 곳 : 카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글쓴이 : 하늘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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