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실 회장님의 간증수기 연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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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앞에 서서” - 강현실 회장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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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공지하였듯이 이번 주부터는 통일가 1호 전도사이셨던 강현실 회장님의 간증이 연재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인간은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선하고 가치 있게, 또 뜻있는 생활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타락인간의 실상이다. 나는 진실하게 살아 보려고 무던히도 노력
오고 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할 때는 “오늘밤 저들의 영혼을 거두어 간다면……” 왠지 마음은 바쁘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청중들을 앞에 놓고 울음 섞인 맑은 음성과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그들의 심령을 투시하면서 사력을 다해 외쳤던 것이다. 그 때 나의 이 진실 된 말씀에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받아들인 이도 많았던 것이다.
남한에서 통일교회의 첫 출발은 나 한 사람이 전도됨으로써 시작이 되었다. 통일교회의 출발은 광야와 흡사했다. 풀 한포기 없는 황폐한 땅, 혹은 가시덤불과 돌멩이들과 야수들이 널려 있는 땅, 광야에는 울타리가 없어 무서웠으나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광야에는 꾸밈과 거짓이 없었기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주님의 음성만이 남아 있었다. 광야는 짐승이 몰려오기 쉬운 곳이었으므로 몰리고 쫓기며 살아야했다. 그러나 그 속에 소망과 정의와 사랑과 겸손의 손길이 있었기에 기쁨과 화평이 있었다. 피눈물로 점철되어 있는 초창기 고생과 미소와 천대로 일관되어진 부산 범냇골에서 새 말씀을 선포한 후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다. 진리는 승리하는 것이고 모든 일은 참에로 귀결한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말할 수 없이 쓰라렸다. 돌이켜 볼수록 가슴 아픈 일들이 망막에 가려진다. 부족하고 못난 나를 하나님이 불러 주셔서 새 역사를 위한 일꾼으로 일하라고 채찍을 가하셨지만 흡족하게 일해 드리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앞에 죄송할 뿐이다. 지금 와서 매일 회개의 기도가 나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용납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위안을 받는다. 나는 진실 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육신의 아버지께서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어 너무도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중병을 얻어 출옥하셨으나 해방의 기쁨도 맞보시지 못하고 타계하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가셨던 길을 대시 가야하며 또 못다 하시고 남긴 일을 해야 하겠다는 뜻으로 고려신학에 입학을 했다. 고려신학은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투옥된 성도들이 출옥 후에 세운 학교였다. 그래서 성경 말씀대로 살기를 퍽이나 애썼고 또 실천했다.
주일이면 십리길 이상을 걷지도 않았고 남이 대접해 주는 음식도 먹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성경 말씀 때문이었다. 또한 하루에 성경을 60페이지 이상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고 3시간 이상 기도를 해야 했다. 또한 3집 이상 심방을 하며 전도를 해야 했다. 더군다나 내가 속해 있던 범천교회의 전도사직을 맡았기 때문에 더 열심이었다.
이상한 얘기한다는 젊은 청년 <1>
5월 어느 날, 봄기운은 잠들어 있던 대지를 일깨워 푸른 옷을 입히고 있었다. 이연규라는 한 여대생이 찾아와 “저 범냇골 골짜기에 전도하러 갔더니 어떤 청년이 이상한 얘기를 하더군요.” 하였다. 무엇이 이상하더냐고 물었더니 “우리 타락한 인간들이 타락되기 전의 세계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는데 대단합디다.”하는 것이다. “너 아무래도 뭐가 잘못됐구나. 말세에는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는데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고 했으니 절대 가지 말라! 내가 알아본 다음에 가야지 그전에는 다시 가면 안 돼.”나는 강경히 그 학생을 나무랬다. 범냇골 청년! 나는 매일 이 문제를 놓고 3시간 이상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상한 청년이 범냇골에서 이상한 말씀을 한다는데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게 해주시고 아니라면 갈 길을 막아 주십시오.”하고 일주일 동안 기도를 드렸다. 1952년 5월 10일이었다. 비가 왔기 때문에 심방전도는 가지 못하고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문득 기도 가운데 범냇골 청년을 만나봐야 한다는 결심이 서서 찾아 올라갔다. 이유는 전도에 미쳐 있던 때라 좀 똑똑하게 생겼으면, 또 하나님에게 쓰일 수 있는 존재라면 전도를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을 만들 마음에서였다. 그 청년의 성도 이름도 몰랐으며, 게다가 얼굴도 집도 몰랐다. 그 여자 대학생이 남자들만 자취하고 있는 모양이라는 말만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나섰다. 범냇골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남자들만 자취하는 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야 자취하는 남자들이 세상에 하나뿐이겠는가. 그래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리라는 믿음만을 가지고 계속 물으면서 돌아다녔다. 얼마쯤을 헤매다가 한 부인에게 물었더니 “저 꼭대기에 올라가면 우물이 하나 있는데 우물 옆에 허술한 집이 하나 있어요. 거기에 청년들이 사는데……” 하고 가르쳐 주었다.
우물에 다다르니 곱게 생긴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이 근방에 청년들이 자취하는 방이 있다는데 좀 가르쳐 주시죠”하니 “댁은 어느 회사에 다니시는데요?” 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예요” 그랬더니 안내를 해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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