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다 빈치의 모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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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다 빈치의 모델’은 누구일까?
1.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하였다. 유명한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수태고지>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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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거작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의 이야기이다.
그는 예수의 모델을 찾기 위해 무척 애를 쓰다가 어느 날 교회에서 용모가 수려한 성가대원을 발견하고 그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로마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되어, 모델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걸려서 <최후의 만찬>을 거의 완성하게 되었으나, 다만 한 사람 가롯 유다만을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유다는 예수를 배반한 제자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 빈치는 아주 타락한 모습의 한 인물을 발견하고 그를 유다의 모델로 하여 마침내 그림을 완성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다의 모델은 오래 전에 예수의 모델로 삼으려 했던 바로 그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 청년은 유학 시절의 방탕한 생활로 심성이 나빠져서 얼굴마저 변해 버렸던 것이다.
3. 사람은 누구나 맑고 밝은 기상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예수의 얼굴이 될 수도 있고, 유다의 얼굴이 될 수도 있다는 저 예화는 혼돈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각별하다.
천주사에 다시 없을 단 1회의 역사적 시기에 우리들은 참부모님과 더불어 고난과 역경의 탕감복귀섭리역사에 동참하였고, 분에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혈통전환’의 의미를 지닌 축복가정이 되었다. 그저 ‘흉내만 내더라도 죽지만 말고 따라오라’시는 권고의 말씀을 위안 삼아 하늘의 최종섭리의 D_Day인 기원절을 카운트다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은 매우 혼란스럽고 어디서 믿음을 찾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며 교단이 분열위험에 노출되고 세상으로부터 유래 없는 조소거리가 되는 말 그대로 ‘끝날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모두의 손가락이 자신보다는 상대의 탓으로 돌리며 이성보다는 감정에, 화해와 용서보다는 정죄와 비난에, 말씀과 원리를 왜곡하거나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일들이 난무하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어제까지는 예수의 얼굴이었던 내가 오늘은 유다의 얼굴이 되지는 아니할까를 심각하게 되새겨 보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원리와 말씀을 대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본심이 깨닫게 해 주는 대로 원리와 말씀을 훈독할 일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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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저도 말은, "어제까지는 예수의 얼굴이었던 내가 오늘은 유다의 얼굴이 되지는 아니할까를 심각하게 되새겨 보게 된다." 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인즉 유식한 말로다가 '차안에 부재'일 것이며, 청주태생의 박공께서도 해당되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것입니다.
우선 저 위의 글 제목의 배경이 되는 <최후의 만찬>을 보십시오.
현대판 그 자리에 저나 박공께서 낄수 있는 위치 입니까?
이쯤되면 여기서도 '가섭의 미소'를 짓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제가 이글을 쓰면서 매우 신중하게 단어의 선택을 한게 사실 입니다.
곡사포가 아닌 직격탄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아직은 겁이 많아 날아올 돌팔매가 은근히 겁이 난겁니다. 추운 겨울날 커피 한잔은 예약되어 가볍게 함께 산행할 날을 손 꼽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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