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이르는 지혜 [幸福語 散策]을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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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르는 지혜, [幸福語 散策]을 열면서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幸福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 치고 있다. 개인의 사소한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 일에 이르기 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같이 보다 幸福해 지려는 삶의 表現인 것이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안내해주는 원리강론의 話頭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행복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목적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안내해주는 원리를 알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행복하며,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가?
가끔은 자문자답해 보면서, 그 행복의 문제를 두고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철인들이 주장해 왔던 어록들을 되새겨보는 기회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본시 추상적인 ‘행복’이라든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라든가,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등은 비교적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명확한 정답을 내리기가 본래부터 난제임을 전제로 하며, 특히 필자 처럼 아직은 나이도 어리고 철학적인 고민도 없는 터에 이 분야의 어떤 답을 기대함은 무리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행복’에 관해 논의한 내용들가운데 필자가 선호하는 부분을 발췌하여 수록한 것이다.
이제는 인생의 결론과 결실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나이에 이른 우리들이 좀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는 화두이기는 하나, 과거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는 기회로 사색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겠다.
글의 내용은, 고대 및 중세의 동,서양 철인들의 행복에 관련된 어록을 소개하고, 근, 현대에 이르러 직접 <행복론>을 저술한 쇼펜하우어, 칼 힐티, 알랭, 버트란트 러셀의 주장을 안내하며, 마지막으로 기독교와 불교의 행복관을 기술하고자 한다.
우리가정 홈페이지를 리모델링하면서, 그 가장 큰 바램은 각계에서 개성있는 삶을 살아온 형제자매들이 각자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고 느낀 바를 진솔하게 나타내는 귀중한 ‘간접 경험의 삶의 현장’ 기록물이 되기를 소망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디지털 시대의 利器에 관심이 덜한 까닭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특히 이번에 새로 구성한 [우리광장]란은 새로운 필자층을 겨냥하여 그 장을 마련했는데, 누가 얼마나 참여할지 걱정이다. 본 연재는 새로운 (광)장을 메꾸기 위한 궁여지책일지도 모른다. 홈을 염려하시는 동지들께서도 이점에 유의하시어 비슷한 시도라도 함으로써 ‘허전한 빈집’이 되지 않도록 마음 써 주시기를 부탁하며 연재의 인사를 마치고자 한다.
幸福語 散策-1
-배우고 시시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어찌 기쁘지(幸福) 않겠는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다운 도리가 아니겠는가.
(論語의 ‘君子 三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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