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하나되기 - 同情 아닌 同心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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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의 삶을 同情 아닌 同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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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삶은 고달프다. 식구도 헌금도 없는 개척교회 뿐만 아니라 제법 크다는 교회도 다른 이유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주된 이유는 스스로가 제사장임과 동시에 제물이기 때문이다.
성서에 예수님은 스스로를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게 아니라 섬기려 오셨다”고 못 박으셨다.(마태 20장 28절)
아버님 말씀에도 “ - 우리 교회의 조직으로 보게 되면 지역장 지구장들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누가 되느냐? 레위족속이 되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중에 다른 지파들은 전부 다 분깃을 탔지만 레위족속은 못 탔습니다. 제사장은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소유권이 없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존재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43-221)”
목회자도 개인적으로는 우리와 똑 같은 식구의 한 사람이며 축복가정이다. 그런데도 위에서 본바와 같이 삶의 반경이 구속에 가까우리만큼 제약과 금기 사항이 많은 고달프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목회자라고 해서 개인적이며 가정적인 사생활과 스스로 위로를 받아야 할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일까 마는, 가능한 한 뒤로 밀쳐놓거나 감추고서 언제쯤 헤어질지도 모를 현 임지 식구들과의 삶에 온갖 정성을 쏟고 보람을 느끼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가끔 눈에 보이는 경제 환경적인 이유나, 기타 눈에 잘 안 보이는 감정적 이유(권위, 상호 존중, 소통 문제 등)로 혹은 同情하고 혹은 대립하며 섭섭해 하는 수가 더러 있다. 그러나 서로가 이러한 것들에 너무 집착하거나 자유롭지 못하면 不和가 스며든다.
식구들은 기본적으로 목회자와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즉, 同心을 가져야 한다. 이는 연민이나 동정의 차원을 넘어서야 된다는 뜻이다. 목회자는 사생활을 상당 부분 희생한 公人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따른다고 하여 무조건 동일한 친근 부류로 구분해서도 곤란한 경우도 있다. 자신의 의도와 같다(同一)고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님 말씀 중 君子는 “和而不同”이요 小人은 “同而不和”란 뜻을 굳이 각색하지 않더라도 “같다”(同)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和)이 아닐 수 있으며, “다르다”(不同)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不和)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처럼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함께 힘을 보테고 정성을 모아야 할 시점에서 목회자가 빈 제단에, 제사장이 부재중인 제단에 모든 식구들이 목회자와 한 마음이 되기 위해 각별히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진다.
전국의 목회자님께 극기와 연단의 쉼 없는 특별 수련의 은사를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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