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탄생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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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탄생 설화
1. 율곡 선생의 잉태지 '판관대'
영동고속도로 장평인터체인지에서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봉평 쪽으로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판관대(判官垈)'라는 기념비가 서 있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로 바로 율곡 선생의 잉태지다. 탄생지는 강릉 오죽헌이지만 부친인 이원수와 모친인 신사임당이 관계를 맺어 선생을 잉태한 곳은 바로 이곳이다. 판관대란 이원수의 관직이 수운판관(水運判官)이었던 데서 연유하여 판관이 살았던 집터라는 뜻이다.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혼인을 하여 처음 이곳에 신혼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그러나 곧 이원수는 지금의 인천지방 수운판관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났다. 얼마 후 그는 부인을 그리워한 나머지 말미를 얻어 이곳의 본가에 오던 중이었다. 대화면 반정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피로하여 하룻밤 유숙하려고 길가의 주막에 들었다.
마침 주막의 주모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된 과부였다. 그날 따라 손님이 없는지라 깜박 졸다가 꿈을 꾸었다. 커다란 용 한 마리가 가슴에 안겨오는 것이었다. 꿈을 깬 주모는 놀랍고 이상하여 일어나 곰곰이 생각에 잠기었다. 이는 비범한 인물을 잉태할 태몽으로 하늘이 자신에게 은혜를 내리는 거라 여겼다. 그러나 곧 자신이 과부처지라는 것을 알았다. 꿈이 아까운 나머지 남편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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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원수가 주막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얼굴에는 비범한 서기가 서려있었다.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잘 차린 주안상을 들고 손님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하룻밤을 정을 맺게 해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원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재차 애걸하자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하고 야단을 치고는 바로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한편 사임당 신씨는 친정인 강릉의 오죽헌에 머물고 있었는데, 잠깐 잠을 자는 사이 동해의 커다란 청룡이 가슴에 가득히 안겨오는 꿈을 꾸었다. 범상치 않은 꿈이라고 느낀 신사임당은 급히 짐을 챙겨 봉평 본가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보니 남편 이원수가 와 있었다. 그 날밤 부부는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 그로부터 사임당은 율곡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이다.
2. 나도밤나무의 설화와 율곡
오랜만에 아내와 잠자리를 한 이원수가 며칠 집에 머물려고 하자 신사임당은 "나라에 녹을 먹는 사람이 어찌 한가로이 집에서 쉴 수 있느냐"며 빨리 임지로 떠나라고 말했다. 어제 밤과는 다르게 그 표정이 냉엄했다. 부인의 말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으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직은 신혼의 펄펄한 나이가 아닌가.
임지로 돌아갈 때 그 주막집을 지나게 되었다. 주모의 애절한 하소연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또 부인에게 못다 푼 회포도 풀 겸 주막에 들렸다. 그리고 주모에게 전번의 일을 사과하고 정을 맺기를 청했다. 그랬더니 주모는 정색을 하며 거절을 하였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저번에 쇤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룻밤을 모시고자 한 것은 비범한 자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오. 그때는 판관나리의 얼굴에 서기가 서려있었으나 지금은 그 서기가 다 없어졌구려. 아마 부인에게 다 쏟아 부은 것 같소. 이제 껍데기만 남았으니 그 뜻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번 길에 댁에서는 비범한 아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만 안된 것은 몇 해 안가 아이에게 호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이원수가 당황하다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호환을 면할 방법을 물었다. 주모는 "집으로 돌아가 뒷동산에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어놓으시오. 그리고 몇 년 후 어느 스님이 찾아와서 아들을 데리고 간다고 하면 나도 공을 쌓았으니 그럴 수는 없다고 하시오. 무엇으로 공을 쌓았냐고 물으면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었다고 하시오. 그러면 호환을 면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판관은 급히 돌아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어놓고 임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열 달 후 율곡이 탄생하였으며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아들을 시주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원수는 짚이는 것이 있어 "나도 공을 쌓아 놓은 것이 있으므로 아들을 시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그러면 공을 쌓은 것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밤나무를 심어놓은 곳으로 스님을 안내했다. 스님은 밤나무를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도 1천 그루에서 한 그루가 모자랐다. 그러면서 "공이 모자라 아들을 데리고 가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원수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토리 나무 하나가 불쑥 "나도밤나무요"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스님이 거대한 호랑이로 둔갑하더니 혼비백산 도망하였다. 이때부터 도토리 나무를 '나도밤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율곡(栗谷)이라는 선생의 호는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좋은 태몽을 꾸었을 때 좋은 장소에서 부부관계를 맺어야 비범한 인물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꾸었다한들 판관대와 같은 좋은 자리가 아니었으면 과연 율곡 선생과 같은 큰 인물을 잉태할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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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이원수가 애간장을 녹이는 농염한 자태의 주모에게 빠져 잠자리를 펴게 하는 그 순간.
이원수의 어머니는 희한한 꿈을 꾼다. 세상 떠난 이원수의 아버지가 묘에서 걸어나와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자신의 아들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산다며 노기가 충천하여 꾸짖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도 있다 하면서 이원수의 어머니는 꿈에서 깨어 이부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한편 대관령 주막집에서는 해괴한 일이 막 벌어지고 있었다. 이원수와 천하절색 기생이 나란히 누워 있는 방에 호랑이가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문 밖에서 으르렁거리며 문 창호지를 픽픽 찢는데 방안은 온통 공포의 도가니일 수밖에 없었다. 모래가 마구 뿌려져 들어오고 포효하는 소리가 더욱 거세어 지니, 두 남녀는 뒷문으로 몰래 나가 주인 자는 방으로 급히 피신을 하게 되었다. 주인이 있으니 아무리 같이 자고 싶어도 어디 잠자리가 되나, 할 수 없이 그날 밤을 앉아서 꼬박 새고 집에 오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설화-신화이기 때문에 판검사들이 잘 사용하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으나,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야밤에 자러 주막에 들렸다가 천하절색을 보고도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는 것보다야 이래저래 친근한 호랑이의 등장이 더욱 인간적?(이원수의 행태)이지 않을까?
★2.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 선생을 잉태한 "맹씨행단"
충남 아산시 백방면 중리 설화산 아래에는 사적 제109호로 지정된 맹사성 선생 생가가 있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맹씨행단(孟氏杏檀)이라고 부른다. 은행나무는 맹사성이 우의정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본래 이곳은 고려의 명장이었던 최영 장군이 지어 살던 집이었다. 맹 정승 할아버지는 최영 장군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여서 이 집을 이어받아 살게 되었다. 후에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가 된다.
맹 정승 잉태에 따른 일화는 다음과 같다. 맹 정승 어머니가 시집을 왔는데 아버지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과거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꿈을 꾸었다. 태양이 자기 앞으로 떨어지는 것을 치마폭에 받는 꿈이었다. 하도 괴이한 꿈인지라 시아버지께 꿈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이르고, 사람을 사 급히 서울에 있는 아들 맹희도에게 편지를 보냈다. 과거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 편지를 받아보니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부랴부랴 하향한 아들이 아버지께 문안을 여쭈었다. 아버지는 태평하게 "내 병은 그 동안 다 나았으니 염려말고 며칠 쉬었다 가거라"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이 아버지 뜻대로 집안에 머무는 동안 며느리가 수태를 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이었다. 맹사성 할아버지는 좋은 태몽에 좋은 산천정기를 받아 아이를 가지라고 아들을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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