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13. 실학의 의미와 북학파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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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의미와 북학파의 주장
1. 실학의 의의
실학이란 조선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학술. 사상의 대표적인 한 조류를 지칭한다. 조선 사회는 임진. 병자 양란을 경과하면서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고, 이는 당시의 학술. 사상에도 일정한 변화를 야기하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일부 지식인들은 종래 주자학의 경게를 넘어 학술. 사상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갔던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성취는 유파별. 개인별로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조선 후기 학술. 사상사 전체를 놓고 볼 때 거기에는 공통의 경향성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학문 방법의 측면에서 ‘실증성’을 강조하고, 학문 목표의 측면에서 ‘실용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새로운 경향의 학술. 사상을 ‘실제적인 것에서 옳음을 찾는 학문(實事求是之學)’ 즉 實學이라 부른다.
2. 유파 분류
실학파의 사상은 ‘새로운 자연지식과 세계관의 전환’, ‘탈주자학적 경향과 제도개혁론’, ‘기학과 근대적 세계관의 모색’의 3주제로 나누어 보는 것이 가능하다.
첫째 주제는 주로 홍대용을 비롯한 [북학파]와 관련된다. 그들은 서학으로부터 유래한 새로운 자연지식을 바탕으로 탈중화주의적. 탈도학적 세계관을 형성해 갔다.
둘째 주제는 [성호학파]로서 이익으로부터 정약용에 이른다. 그들은 북학파와 달리 ‘경학’을 주요 학문수단으로 삼았고, 그를 통하여 탈주자학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나아가 토지 제도를 비롯한 각종 제도의 개혁을 주창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셋째 주제는 최한기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실학자 가운데 최후의 인물로서 서양과학. 기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확립한 ‘기학’은 여전히 동양적 전통에 많이 의존하는 것이어서 서양과 다른 새로운 ‘근대’의 가능성을 검토하는데 좋은 시사를 준다.
3. 새로운 자연지식과 세계관의 전환
[북학파] 학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몸소 북경여행을 경험했다는데 있다. 그 중심은 홍대용(1731~1783)이었다. 그는 1765년 북경을 여행하기 이전에 이미 모형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를 제작하는 등 천문학에 조예가 있었다. 그는 북경여행을 통해 서학과 결합된 청조문물의 우수성을 목격하고, 당시 북경에 거주하던 서양인 선교사들과 면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산문답>. <주해수용> 등의 저작을 남겼는데, 전자는 문답체 소설형식의 글이고 후자는 당시 국내 최고수준의 실용수학서이다. 특히 <의산문답>은 천문학및 우주론 분야의 새로운 자연지식이 어떻게 세계관의 전환으로 연결되는가를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여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자연지식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지구설, 지전설(지구자전설), 무한우주론, 몽기설 등을 들 수 있다.
북학파의 새로운 예술론을 대표했던 사람은 박지원(1737~1805)이다. 그는 法古創新과 寫意 정신을 핵심으로 삼는 文學創作論을 제기하였다. ‘법고창신’이란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하자는 것인데, 그가 당시 의고풍의 문학 창작 기풍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잇었음을 고려하면 그 말은 사실상 법고 보다는 창신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의는 작가의 생각을 그려내야 한다는 말이지만, 상투적인 격식과 태도를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기술하자는 것인 만큼 寫實과도 통하는 말이었다. 이렇듯 창신과 사의를 중시하는 박지원의 문학론은 결국 형식과 내용에서 중국적인 것과 구별되는 ‘조선풍’을 강조하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홍대용이 민간의 시가를 수집, 편찬하면서 시가의 창작에서 천기를 중시하고 민간의 자연스러운 詩情을 긍정하던 것이나, 뒷날 정약용이 ‘조선시’를 찬양하였던 사실은 모두 박지원의 문학창작론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북학파 가운데 경세론 분야에서 세계관적 전환을 대표하는 인물은 박제가(1750~1805)였다. 그는 북학론. 중상론. 농업기술개량론. 적서차별철폐론 등을 주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학파의 경세론을 보완하고 전통적인 경세론과 다른 북학파 경세론 나름의 특징을 보여 주었다. 특히 重商論은 상업을 末業이라고 하여 천시하던 전통적 관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서, 선박. 수레활용론. 양반상인론. 국제무역론. 소비긍정론 등 새로운 여러 논의를 부대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소비긍정론이란 소비가 생산을 창출한다는 관점에서 무조건적인 검약에 반대하는 견해로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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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실학파의 현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첫째로 물자의 생산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주자학파의 이념적 핵심은 한마디로 의리정신이다. 이 의리정신은 의리와 경제를 대립적으로 양극화하였다. 따라서 의리를 높이고 경제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가치의식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주자학파는 의리의 객관적 규범을 절대화함으로써 현실의 사태를 비판하는데는 과감하였지만 동시에 관념적 이상주의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실학파는 국가의 폐단이 무엇보다도 빈곤에 있음 을 강조하여 물자의 생산이 백성의 생존과 국가의 존립에 필수적임을 인식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물자의 생산론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물자생산에 대한 적극적 긍정은 선비들의 비생산적인 생활을 비판하게 된다. 星湖는 과거공부나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천시하며 평생토록 놀고 먹는 양반들을 좀이라고 비판하며 朴齊 家는 농업에 힘쓰려면 유자들을 도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丁若鏞은 놀고 먹는 선비를 농공상에 종사시켜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처럼 물자의 생산을 필연적이요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고 그 효과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입장이 실학파의 공리사상이다. 즉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바로 실학파의 공리적 의리관이며 이것은 주자학파에 있어서 보편적 이념으로서의 天理를 내용으로 하는 의리관과는 구별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이렇게 하여 증대된 물자는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봉건적 사회계층이 고착되었을 때 도덕적 신분질서는 富益富 貧益貧하는 경제적 약자와 강자로 유리 화되는 변질현상을 가져왔고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 실학파의 근본과제였다. 다라서 신분계급에 따른 특권을 제거하고 모든 백성이 균평하게 부를 향유하는 것을 주장하였으며 이들의 백성 개념에는 신분제도의 개혁이 들어있으며 모든 인간이 동등한 생존권을 가지고 있다는 평등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실학파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그 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하였으며 그것은 이념과 현실의 괴리이며 또한 현실적 빈곤이었기 때문에 그 이론과 입장은 시대적 제약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즉 현실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하여 백성이 극도로 빈곤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의 개혁과 기술의 이용을 중시하고 부국강병을 위한 객관적 수단과 방법을 밝히는 동안 개인의 내면적 도덕근거에 대한 관심은 이차적인 것으로 후퇴하게 된 인상마져 주는 것이다.그러나 실학파의 주장은 한 시대의 모순을 인식하고 또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실학파는 고정화된 형식적 규범을 거부하면서 신체를 가진 구체적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고양시켰다.
둘째로 현실과 이념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관념적 의리론자의 위선적 기만성을 부정하고 실질적 효과를 통한 진실성과 정당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세째로 실제의 공효를 추구하면서 사상을 사고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행동의 세계로 나오게 한다. 가장 구체적인 현실의 세계를 가장 근본적인 학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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