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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12. 만해의 민중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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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3. 만해의 민중 불교

만해 韓龍雲(1879~1944)은 한국불교의 개혁과 민중불교를 주창했던 佛敎思想家이자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고 일제에 항거한 獨立運動家, 그리고 민족을 노래한 詩人이었다.

그는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1879년에 태어나, 6세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공부를 시작하여 9세 때 <서상기>와 <통감>을 독파하고 <서경>에도 능통할 실력을 쌓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 청. 러시아의 싸움터이고 수구파와 개화파, 친일파, 친청파, 친러파 등의 정권 싸움으로 백성들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으며, 1894년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혼돈의 시기였다.

당시 만해는 소문의 중심지인 한양을 향해 집을 나와 무작정 상경하던 중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회의에 빠져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빈손에 한학의 소양 밖에 없는 내가 무슨 힘으로 나랏일을 도우며 큰 뜻을 이룰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양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 단 말인가?” 만해는 결국 발길을 돌려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원도 오대산으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백담사에서 만해는 본격적으로 승려의 길에 들어섰으며, 오세암 장경각에 쌓여 있는 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외전과 내전을 비롯하여 매월당 김시습이 들춰본 뒤로 먼지 속에 묻혀있던 귀중한 고서들을 꺼내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읽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된 그는 연곡, 학암, 월화 스님들을 스승으로 하여 <기신론><능가경><원각경><화엄경>을 공부하여 경전공부와 禪 수업을 겸해 갔다. 또 청나라 말기 대학자인 양계초의 <음빙실문집>과 세계지리서인 <연환지략>을 읽고 넓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본에 가서 측량술을 공부하기도 하였고, 서울에서 측량기술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고 사찰이나 개인 소유의 토지를 수호하는데 앞장 섰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된 후 해인사 친일승 주지 이회광이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의 지배하에 두기 위하여 일본 조동종과 연합맹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만해는 송광사에서 승려대회를 주도하며 친일승 이회광을 몰아내는데 앞장 섰으며, 1913년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하여 발행하였다. 그는 이 유신론에서 유신운동의 기본적인 목표와 방향이 정신문화의 혁명에 있다고 보고 불교인이건 아니건 인간은 누구나 정신을 유신 시켜야 하며, 그 길만이 조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였다. 중생 구제를 위한 승려 교육의 문제, 포교의 문제, 경전의 해석 등을 유신론을 통해 불교 개혁의 의지로 천명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불교계 풍토를 좀먹고 있는 비사회적. 비합리적. 미신적인 요소와 인습을 타파하고, 불교계도 시대적 변화에 부응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불교 대중화를 위한 작업으로 양산 통도사에서 방대한 팔만대장경을 모두 열람하여 1914년 <불교대전>을 편찬, 발행하였다. 이 책은 재래식 장경 위주의 편찬 방법에서 벗어나 주제별로 엮어진 최초의 불교 서적이다. 이 같은 저술을 통하여 그는 열렬한 실천론을 주장하였고, 교리면에서는 禪. 敎 일치를 제창하였다. 역사 현실을 외면한 불교, 시대정신이 없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만해는 다시 설악산 오세암에서 선정 삼매에 몰입 하였다. “구름이 흐르거니 누구든 나그네 아니며, 국화 이미 피었는데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화두를 들기도 하였다. 1917.12.03밤 10시경 좌선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무슨 물건을 떨어 드리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씻은듯이 풀렸고, 마침내 오도송을 남기게 되었다.

“남아란 어드메나 고향인 것을/ 그 몇 사람 客愁 속에 길이 갇혔나.

한마디 큰 소리 질러 삼천대천 세계 뒤흔드니/ 눈 속에 복사꽃 붉게 붉게 피네.“

이후 서울로 되돌아온 만해는 종합 교양지 <唯心>을 창간하였고, 불교 근대화와 신문화 운동의 전개로 청년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고자 하였다. 기미년 3월 1일 독립 선언 당시 기독교인 15. 천도교 16. 불교 2명으로 33인이 구성되었고,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에 만해의 ‘공약3장’이 첨가 되었다. 최후의 1인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발표하라는 공약3장은 광명, 정대, 화합이라는 불. 법. 승 삼보 정신을 말한 것이다.

만해는 3.1운동 당시 최고형이던 3년 징역의 유죄 선고를 받고 복역중 1년 6월 만에 풀려 났고, 출옥 후에도 저항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기독교청년회. 불교청년회 등에서 강연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 후 다시 오세암에서 <십현담주해><님의 침묵>을 탈고 하였다.

만해는 신간회를 발기하여 불교 청년운동을 계속하였고, <불교>지를 인수하여 불교관계의 많은 논설을 발표하였으며,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는 등 끊임없는 저항운동을 지속하다가 1944년 심우장에서 입적하였다.

만해사상의 특징은 개혁적이고, 실천적이며, 서구의 근대사상을 폭 넓게 수용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개혁적이라는 것은 그의 첫 저서가 한국불교의 낙후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개혁론인 <조선불교유신론>이라는 점만 보아도 짐작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철저히 실천을 전제로 한 사상이었으며,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서구의 근대사상을 폭넓게 수용하였다. 그가 쓴 불교 개혁론은 철저히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와 같은 진보적 근대사상에 입각해서 씌어졌다. 따라서 그의 불교사상은 불교와 근대사상의 만남이라는 폭넓은 사상적 접촉점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가 주장한 <조선불교유신론>의 중요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교육을 통한 유신 주체의 확립.

-생산을 통한 승려의 인권회복

-승려의 결혼

-사원행정의 개혁과 교단의 조직화

-선거를 통한 주지의 선출과 경제적 동기부여

-신앙의 통일과 미신의 배격

-염불당의 폐지와 참 염불의 실천

-불교의식의 통일과 간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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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정해관님의 댓글

부모님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유교 불교 회회교 사탄세계를 요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결정적인 길이다. 이 길을 우리가 가야 한다. 통일교회 식구가 몇 명이냐? 너희들 믿고 6500만 이상의 영계의 축복가정들을 맡길 수가 없다.
절대성 자리 위에 올라서지 않으면 올라서지 못한다.
고독한 섬 중심 나라에 들어와 이러한 교육을 받는 것이다.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한다. 그러한 과제를 앞두고 각자의 계획이 있을 수 없다. 그냥 집으로 바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절대성 말만 하지 선생님과 같은 고통을 넘어서 보았는가?
그 심정을 아는가?
그 심정과 얼마나 일체되어 보았는가?
우리가 요리를 하여야 한다. 제4차 아담 심정권 안착 세계, 복지천국이 있는가? 아직 없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황인가? 이를 악물고 가야 한다.

leemoohwan님의 댓글

동양철학 만해의 민중불교!!만해의 사상적 배경과 애국 애족의 심정자세와 현실 직관력등 너무나 큰 족적을 남기신 님의 침묵의 사연등 감사의 심정으로 합자 ㅇ축원 아주,,

정해관님의 댓글

님의 침묵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 빗을 깨치고 단풍나무 숩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거러서 참어 떨치고 갓슴니다

黃金의 꽃가티 굿고 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 띠끌이되야서 한숨의 微風에 나러갓슴니다
날카로은 첫<키쓰>의 追憶은 나의運命의 指針을 돌너 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은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은 님의 얼골에 눈멀었슴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맛날 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녀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 일이되고 놀난 가슴은 새로은 슬븜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源泉을 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것인줄 아는까닭에 것잡을수업는 슬븜의 힘을 옴겨서 새希望 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때에 떠날것을 염녀하는 것과 가티 떠날때에 다시 맛날것을 믿슴니다

아아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제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沈默을 휩싸고 돔니다

★ 한용운 시의 이러한 구조상의 특징은 그의 개별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군말>과 <독자에게>를 검토하여 그의 시에서 사용되는 님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규명하지 않으면 개별 작품의 올바른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 衆生이 釋迦의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님이다. 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戀愛가 自由라면 님도 自由일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自由에 알뜰한 拘束을 밧지 안너냐. 너에게도 님이 잇너냐 잇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
나는 해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 쓴다 <군말>

讀者여 나는 詩人으로 여러분의 압헤 보이는 것을 부끄러함니다
여러분이 나의詩를 읽을 때에 나를 슬버하고 스스로 슬버할 줄을 암니다
나는 나의 詩를 讀者들의 子孫에게까지 읽히고 십흔 마음은 업슴니다
그때에는 나의 詩를 읽는 것이 느진봄의 꽃숩풀에 안저서 마른 菊花를 비벼서 코에대히는 것과 가틀는지 모르것슴니다
밤은 얼마나 되얏는지 모르것슴니다
雪嶽山의 무거은그 림자는 엷어감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짐니다
(乙丑八月二十九日밤 끗) <讀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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