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문화16. 수니파와 시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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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문화16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 기본교리와 관행(五柱六信)에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단합과 단일화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사상에서 무슬림세계는 여러 분파로 분할되어 있다.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후부터 표면화되어 오늘날 까지 지속되고 있다.
예언자가 사망한 직후 가장 현안으로 대두되었던 문제는 칼리파(후계자)계승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 결과 무슬림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되었다. 수니파는 전체 무슬림 공동체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수니란 문자적으로 ‘무함마드의 순나(말과 행동, 관행)를 따르는 자들’을 의미한다. 무슬림세계에서 소수파인 시아파는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수니파]는 정통파로 알려져 있다. 이 파는 예언자 사후 칼리파가 예언자 부족인 꾸라이쉬 출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공동체는 슈라(최초의 의회제도)와 합의(이즈마)를 통해 후계자를 선출하였다. 꾸란과 하디스에 의하면, 이렇게 선출된 지도자가 바로 이슬람 공동체를 운영할 책임을 지는 칼리파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무함마드의 지위나 위치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최후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이슬람공동체는 4명의 정통 칼리파에 의해 운영되었다. 1대 칼리파는 아부 바크르(632~634), 2대는 오마르(634~644), 3대 오스만(644~656), 그리고 4대는 알리(656~661)였다. 이들은 순나(예언자의 관행)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운영하였다. 순나를 따랐던 수니파는 이슬람공동체의 총괄적인 법체계를 확립하였으며, 이를 ‘샤리아’(이슬람법)로 발전시켰다. 초기 4명의 칼리파 이후 이슬람세계는 여러 다양한 칼리파 제국과 세습 왕조가 등장 하였다. 수니파에게 칼리파는 샤리아의 보호자 겸 운영자였다.
칼리파제도는 1924년 터키의 아타튀르크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는 곧 오스만제국의 종말을 의미하였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이슬람국가들은 조직과 체계를 확립하는데 법적 근원으로 샤리아를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이들 국가들은 칼리파 대신 저명한 종교학자나 법학자들인 울라마와 쉐이크들을 지도자로 선택하였다. 이런 형태의 국가들이 바로 수니 국가들이다.
[수니파]는 믿음과 관행에서 시아파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시아파도 마찬가지 인데, 이들은 서로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에 의하면, 이 두 파 사이에는 분명히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사이의 정치적. 이념적 . 인종적 문제들은 가끔 전쟁과 갈등으로 귀결되었다. 비록 이 두 파는 함께 예배하고 동일한 대상을 숭배하였지만, 신학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별개의 모스크와 서로 다른 종교 의식, 서로 다른 역할의 지도자를 추종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시아라는 명칭은 ‘쉬아트 알리’(알리의 추종자들)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명칭의 기원은 예언자 사후 후계자 선임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쉬아란 ‘도당, 파벌, 분파’를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시아파란 무함마드가 이슬람공동체의 초대 칼리파 또는 이맘으로 알리를 지명했다고 믿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들은 알리 이전의 세 칼리파들을 찬탈자로 부르고 있다.
[시아파]는 이슬람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샤하다’(알라 이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에 “알리는 신의 사랑을 받은 자이며, 신자들의 사령관이고, 신의 친구이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시아파는 비록 알리가 이슬람 공동체의 4번째 칼리파로 선출되었지만, 사실은 그가 아부 바크르, 오마르, 오스만 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을 근거로 시아파는 알리 이전의 3명에 대한 합법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이들의 후계자들에 대해서도 그 적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 두 파는 1,400년 이상 동안 이러한 견해 차이로 화해와 조정, 그리고 단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에 관해, 수니파는 예언자가 원래 무지한 인물이었으며 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임무만을 부여 받은 보통 인간이었다고 주장한 반면, 시아파는 예언자가 높은 학식을 소유했던 완전무결한 존재였으며, 신의 모든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빛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신적 속성들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이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시아파는 신의 빛과 신적 속성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띠마, 파티마의 남편 알리, 그리고 이들의 자손들에게도 부여되었다고 주장했다.
몰론 수니파도 알리와 그의 자손들을 존중하고 있지만, 그 정도는 시아파와 전혀 달랐다. 수니파는 예언자와 그의 자손들이 신적 속성을 부여받았다는 시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수니파는 시아파가 주장하고 있는 알리와 그 자손 중심의 이맘제도를 단호히 거부 하였다. 이러한 차이점도 수니와 시아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맘제도와 관련된 시아 12이맘파의 기본논리는 12대 이맘 무함마드 알-문타자르가 873년 은둔하였다는 점과 그가 마흐디(메시아)로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12대 이맘이 마흐디로 재림함으로써 이슬람공동체는 이슬람 시아의 정의와 평등, 단합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마흐디의 개념은 수니에서도 일정 부분 인정되고 있다. 중요한 차이점은 수니의 마흐디는 최후심판의 날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결혼, 이혼, 상속에 관련된 법적판단에서도 견해차이가 있다. 예컨대 12대 이맘파는 일시적 결혼인 ‘무트아’를 인정했던 반면, 수니파는 결혼의 기간을 정해 놓는 계약결혼을 죄악으로 간주한다. 한편 시아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혼권리를 수니파보다 훨씬 제한적으로 운영하였다.
수니와 시아파는 종교적 관행과 전통에서도 차이가 있다. 시아는 수니보다 훨씬 많은 종교의식을 실행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수니 원리주의자들은 시아의 성인숭배사상과 의식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수니와 시아파는 예배의식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수니파는 하루 5번의 예배를 행하고 있으나, 시아파는 하루 5번의 예배를 3차례로 나누어 실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두 파의 예배방식에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수니파는 예배시 두 팔을 앞으로 포개는 반면, 시아파는 두 팔을 포개지 않고 밑으로 내려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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