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역사13. 팔레스타인 문제의 등장과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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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역사13. 팔레스타인 문제의 등장과 중동전쟁
아랍민족과 유대민족은 같은 셈계 종족으로서 또한 같은 셈어계 언어를 사용하면서 오랜 역사적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두 민족은 성서적으로도 아브라함을 공동 조상으로 하는 형제이다. 유대왕국이 70년 경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2,000년 가까이 아랍인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그럼에도 왜 오늘날 아랍-유대 두 민족이 화합할 수 없는 적대관계로 변모하고,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상호 배타적으로 이단시 하게 되었는가?
이는 결론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국가들이 중근동에 대한 식민지 경영을 본격화 하면서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두 토착민을 분리, 갈등관계를 유발시켰던 비도덕적인 정치 음모에서 절대적으로 기인한 감이 없지 않다.
1)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상호 모순된 비밀조약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과 프랑스 등의 연합국과 독일과 오스만제국을 잇는 동맹국 간의 전쟁이었다. 전쟁 중반 이후 불리한 전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영국과 프랑스는 우선 남부 전선의 오스만제국을 제압하기 위해 오스만의 지배하에 있던 아랍부족을 회유하고자 했다. 당시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본국의 훈령에 따라 아랍인들의 실질적 지도자 메카 태수 쉐리프 후세인과 은밀히 접촉, 아랍인의 지원을 유도하였다. 결국 1915년 12월,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알려진 비밀협상을 체결하고, 전후 아랍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 이슬람 칼리프국인 오스만에 대한 아랍인의 공격을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아라비아의) 로렌스 대령이 급파되어 효과적인 대 오스만 공격으로 남부 전선에서의 연합국의 승세를 굳혔다. 한편 연합국은 독일에 대한 내부 혼란과 정보 탐지, 그리고 측면 공격을 위해 유대인의 지원을 필요로 하였다. 이에 영국 외상 발포어는 1917년 영국의 은행재벌 로스차일드와 비밀리에 회동, 소위 ‘발포어 선언’이라는 비밀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유대인의 전쟁참여 대가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국가 창설을 약속해 주엇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영국과 프랑스가 상기 두 비밀조약 체결 시점의 중간인 1916년 5월16일, 영국대표 사이크스와 프랑스 대표 피코를 내세워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는 비밀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 조약의 골자는 전후 서아시아지역의 분할에 관한 것인데, 프랑스는 시리아의 해안지대와 그 북부를,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바그다드를 점령한다는데 합의했다. 다시 말하면,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에 아랍인에게는 아랍국가의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 민족국가의 창설을 약속해 주고,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자기들이 그곳을 점령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상호 모순적인 3개의 비밀조약과 강대국의 비도덕적인 정치 음모가 바로 오늘날 중동 분쟁의 불씨를 가져온 본질적인 핵심이다.
2) 팔레스타인 분할 과정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전후 처리를 위한 국제회의가 1919년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창한 이 회의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안이 동시에 채택되었다. 즉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발포어 선언의 이행을 위해 국제사회가 노력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땅에 2,000여년 간 주인으로 살아온 아랍인에게 국가건설의 자결권이 주어짐이 당연한 것 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당연히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반대했다. 결국 국제사회의 여론이 유대국가 창설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영국은 유대인의 지지를 얻어 1920년 산레모회의에서 팔레스타인의 영국 위임통치안을 통과시키고 1922년 국제연맹에서 추인 받았다.
영국에 배반당한 것을 안 아랍인들의 끈질긴 국가 독립운동과 격렬한 반영국 투쟁이 시작되었다. 흔히 1920년에서 1940년에 이르는 일련의 피나는 투쟁의 시기를 ‘아랍의 분노시대’라고 한다. 이즈음 팔레스타인 지역에 동구와 유럽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자연히 토착 아랍인과 이주 유대인 간의 갈등과 대립도 증폭되었다. 1920년 16,500명이 이주한 것을 시발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인구 불균형과 사회질서 파괴는 점차 심각한 양상을 띠었다. 더욱이 1933년 이후 독일에서 나치 정권이 들어서고,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가중되자 유대인의 불법 이민이 급증하였다.
두 민족 간의 대결 양상은 점차 복수전의 성격을 띠면서 처절한 피의 악순환을 되풀이 하였다. 영국 당국은 민족 분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기색이었다. 1937년에는 아랍인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고, 1939년에는 영국이 유대인 불법이민에 대한 행정력을 상실할 상태에 직면하자, <유대인 이민 제한 백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혼란은 제2차 대전으로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자 소강상태에서 잠시 망각 되었다.
제2차 대전이 끝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시 떠맡게 된 영국은 1947년 이 문제를 유엔으로 넘겨 버렸다. 유엔은 미국의 주도하에 팔레스타인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때 두 개의 안이 유엔에 제출되었다. 즉 연방안과 분할안이 그것인데, 흔히 소수안이라 불리는 연방안은 제3세계 국가가 중심이 된 것으로 아랍인의 기득권과 이주한 유대인의 현 상태를 모두 현실로 인정하면서 팔레스타인 연방제하에 아랍인과 유대인의 민족적. 정치적 자치를 허용하자는 안이었다. 이에 비해 분할안은 강대국이 제안한 것으로 팔레스타인을 아예 양분하여 아랍과 유대라는 두 개의 국가로 각각 분리 독립시키자는 안이었다.
아랍인은 연방안 수용 의사를 표명했으나, 시온주의자들은 분할안을 지지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끈질긴 로비활동을 전개했다. 결국 미국의 제3세계 국가에 대한 군사. 경제원조 약속, 위협과 회유가 주효하여 영국이 기권한 1947년 11월 29일자 유엔총회에서 분할안이 통과되었다.
팔레스타인 분할안의 실제 내용은 당시 인구비에서 아랍인의 1/3, 전체 면적의 7% 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 56%를 분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경작 가능한 대부분의 금싸라기 땅은 유대인 차지가 되어 있었다. 2,000년 동안 그 당의 주인으로 살아온 아랍인으로서는 이주해 온 유대인을 모두 받아들이는 연방안 자체도 억울한데 분할안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에 행했던 미국의 존재와 역할을 똑똑히 보았다. 이것은 강력한 반미정서가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3) 이스라엘의 건국과 중동전쟁
유엔으로부터 국가 창설을 인정받은 유대인들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으로 구체적인 건국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2,000년간 그 땅에서 살아온 토착 아랍인의 저항이 워낙 완강하여 큰 차질이 초래되었다. 이때 유명한 유대 테러조직이 맹활약하면서 치욕적인 데일 야신촌 학살사건을 저질렀다.
유대 지하 테러조직인 이르군이 1948년 4월9일, 예루살렘 서쪽의 조그만 마을인 데일 야신촌을 야밤에 습격하여 254명의 주민을 잔인하게 무차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전 이스라엘 수상인 메나헴 베긴이 테러 대장으로 진두지휘한 이 사건은 문명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흔히 제2의 나치 학살사건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기습만행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행되었으며, 비무장의 아랍 주민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심어 주어 100만 가까운 아랍인들이 도망가듯이 인근 국가로 도피해 감으로써 소위 팔레스타인 난민문제를 야기 했다. 이로부터 한 달여 후,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아랍인을 몰아낸 곳에 위대한 이스라엘 국가가 성립되었음을 공표했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국가들의 즉각적인 저항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을 유발시켰고, 1954년에는 제2차, 1967년에는 이스라엘이 기존 아랍 영토마저 점령하는 소위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전, 1973년에는 석유 무기화 조치로 석유파동을 유발했던 제4차 중동전, 1980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사건,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이르기 까지 빼앗긴 영토를 찾고자 하는 아랍인과 보금자리로 돌아가려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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