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17. 슈고 다이묘(守護大命)의 성장과 무로마치 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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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17. 슈고 다이묘(守護大命)의 성장과 무로마치 막부
1] 시대개관
남북조시대에 막부의 주역이 된 것은 슈고 다이묘였다. 가마쿠라시대 당시의 슈고는 막부로부터 군사 및 경찰권을 위임받은 지방관으로, 지토. 고케닌과 주종관계를 맺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남북조의 내란이 시작되자 장원의 횡령이나 지토. 고케닌들을 부하로 삼는 경향이 강해졌다.
슈고가 국내지배를 강화해갈 무렵, 기나이지방을 위시한 선진지역의 농촌에서는 유력한 묘슈(名主) 층에서 성장해온 중소규모의 무사단을 구성하고 있던 고쿠진(國人)이라고 불리는 재지 영주들의 장원에 대한 침략도 강화되어가고 있었다. 슈고는 이러한 고쿠진들을 점차 가신들로 편입시켜가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조의 내란을 통하여 슈고는 일국 전체에 미치는 지배권을 확립시켜 갔다. 이처럼 영주화한 슈고를 다이묘라고 하며, 그 지배체제를 슈고 領國制라고 한다.
남북조의 합체를 달성한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스는 1378년에 교토의 무로마치(室町)라는 곳에 ‘하나노고쇼’라는 새로운 저택을 세웠는데, 훗날 이 건물이 위치한 지명을 따서 무로마치 막부라고 부르게 되었다. 통일정권의 실현을 이룬 아시카가 요시미스는, 이어서 쇼군 권력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유력한 슈고 다이묘들을 제압해야만 하였다.
2. 무로마치 막부의 기구와 법제
1) 三管과 四職 : 아시카가 요시미스는 쇼군의 권위를 높이고 차츰 전제적인 정치체제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막부의 정치기구를 갖추었다. 우선 쇼군을 보좌하는 직위로 관령을 두었다. 아시카가씨의 일족인 시바(斯波). 하타케야마. 호소카와(細川)의 3 집안의 인물이 관령직에 임명되었으므로 이를 三管領이라 하였다. 그 밑에 있는 만도토로. 몬추조. 사무라이도코로도 가마쿠라막부 때에 비해 그 권한이 축소되어 단순한 사무기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에 교토 내외의 경비나 형사소송을 관장하는 사무라이도코로가 가장 중요한 지위로 생각되어져, 그 장관에 야마나(山名). 아카마스(赤松). 교고쿠(京極). 잇시키(一色)의 4씨가 교대로 임명되어 이를 四職이라고 한다.
2) 지방기구 : 가마쿠라를 중시해, 가마쿠라후를 두고 간토지방의 10개국을 관할하게 하였다. 마치 가마쿠라막부가 교토를 중심으로 한 서쪽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 로쿠하라탄다이(六波羅深制)를 설치한 것과는 달리, 거꾸로 가마쿠라를 중심으로 한 동쪽 지방을 지배하기 위하여 가마쿠라후를 설치한 것이다. 그 장관을 쇼군을 의미하는 구보(公方)라는 명칭으로 불렀던 것처럼, 가마쿠라후는 동쪽에 있는 작은 막부와 같은 존재였다.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아들인 모토우지가 장관인 가마쿠라 구보에 최초로 임명된 이후, 모토우지의 자손이 이 직을 세습하였다. 나중에 그는 교토의 막부와 대립하게 된다.
3. 기타야마 문화
기타야마(北山文化)란 무로마치시대 초기, 아시카가 요시미스의 가타야마 산장으로 대표되는 문화이다. 전통적인 公家文化와 신흥 武家文化의 융합이 특징이다. 학문과 문학에서는 송과 원의 영향을 받은 五山文學이 주류를 점하고, 회화도 송원풍의 수묵화가 발달하였다.
건축에서는 와요(和樣)와 가라요(唐樣)를 융합한 金閣의 조영, 예능에서는 민족예능인 사루가쿠노(猿樂能)의 예술적인 완성을 보았다.
(아시카가 요시미스와 金閣) 무로마치막부의 제3대 쇼군 요시미스는 1369년 무로마치 저택을 지어 막부의 정청으로 삼았다. 1394년 쇼군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태정대신이 되었으며, 그 다음 해에는 출가해 승려의 신분이 되었다. 1397년 장대한 기타야마 저택을 지어 이주하게 된다. 그 저택은 그의 사후 로쿠온지(鹿苑寺)라는 선종사원으로 변한다. 현재의 금각은 1950년 소실되어 재건된 것이다. 금각은 3층으로 이루어 졌는데, 정상은 봉황을 장식한 화려한 것으로, 公家와 武家의 권력을 다 장악한 그의 강대한 권세를 잘 표현하고 있다. 1층은 신덴즈쿠리. 2층은 와요의 불당 형식. 3층은 선종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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