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15. 막부의 쇠퇴와 산업. 문화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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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15. 막부의 쇠퇴와 산업. 문화의 발전
1] 시대개관
대제국을 건설한 몽고 황제 쿠빌라이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원정을 단행한다. 그러나 몽고측은 압도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았던 폭풍우로 큰 피해를 입고 철수 한다. 이러한 몽고의 침공이 일본의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서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고, 그 결과 가마쿠라 막부는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
한편, 가마쿠라 시대는 산업이 발전한 시대였다. 우선 농업기술이 진보하고 토지 개간이 진전됨에 따라서 농업생산력이 현저하게 증대되었으며, 농업생산력이 상승함에 따라서 상업도 발달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의 발전이나, 장원 현지에서 바치는 세금인 연공을 동전으로 바치게 한 것 등은 모두 상업이 크게 발전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농업및 상공업의 발달을 토대로 하여 일.송과 일. 원 간에 대대적으로 무역이 이루어졌다. 이들 간의 무역은 단지 경제교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종교. 사상. 문화. 예술. 학문 등 많은 분야에 걸쳐서 대륙의 선진사회의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특히 송나라로부터 새로이 선종이 들어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송의 영향은 건축이나 조각 등의 조형미술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2] 가마쿠라 시대의 문화
(문화의 특색)
-문화면에서 公武의 이원적 성격(국풍문화 전통과 신흥무가사회 배경)이 강하게 남아있다.
-문화에 서민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적극적인 무사의 기풍을 반영한 생동감 있고 실용적인 문화가 생겨났다.
-송. 원나라 문화가 활발하게 도입 되었다.
(선종의 영향)
-특히 임제종이 막부의 보호를 받고 발전하였다.
-싯겐 호조 도키요리때 란케이 도류가 일본에 와서 겐초지를 세우고 싯켄 호조 도키무네 때에는 무가쿠 소겐이 초빙되어 엔가쿠지의 개조가 된다.
-가마쿠라 말기에 송나라를 모방하여 오산제도를 세우고 선종계열인 임제종 사원에 각각 지위를 부여함과 동시에 官寺的 성격을 부여하였다.
(문학)
<아즈마카가미>(東鑑) 가마쿠라 시대 사료로서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두에 편찬된 역사서이다.
<구칸쇼>(愚管抄) 승려 지엔이 1220년에 저술한 중세의 역사서로서 조큐의 난 이후 내용이 보충 되었다.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작자 미상의 軍紀物로 1240년 이전에 그 원형이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3] 가마쿠라 신불교의 출현
1) 호넨의 淨土宗
호넨(法然)은 처음에는 천태종을 배웠는데, 학문과 수행을 중시하는 구불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분. 성별과 현명함과 어리석음에 관계없이 오로지 아미타불을 믿고 ‘나무아비타불’이라고 염불을 외우기만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구제받을 수 있다고 했다.
2) 신란의 淨土眞宗
호넨의 제자인 신란(親鸞)은, 스승인 호넨이 구불교와 대립하여 유배를 당하게 되었을 때, 이에 연루되어 에치고(越後)지방으로 유배당하게 되었다. 그 뒤 신란은 간토(關東)지방으로 옮겨와, 거기서 수렵과 어로 등 살생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민중들의 생활을 보게 되었다. 신란은 이러한 민중들에게 염불을 외는 형식이나 횟수보다도 아미타에 대한 한결같은 신앙만이 왕생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스승의 가르침을 더욱 철저히 관철하여 어떤 악인이라 할지라도 아미타불을 믿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을 주장하였는데, 신란의 이러한 새로운 불교를 정토진종이라고 한다. 신란의 가르침은 이후 무로마치 중기에 렌뇨(蓮如)에 의해 전국 각지에 보급되어 갔다.
3) 잇펜의 時宗
정토종 계열에 속하는 잇펜(一遍)은, 사람은 모두 신앙심의 유무, 정(淨).부정(不淨)을 불문하고 염불로 인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잇펜과 그의 제자들은 춤추며 염불을 외는 오도리넨부쓰(誦念佛)를 전파하였는데, 그의 가르침을 시종이라고 한다.
4) 니치렌의 日蓮宗
니치렌(日蓮)은 석가의 참된 가르침은 <法華經>에 있으며, ‘나무묘법화연경’이라고 염불을 외는 것만으로 남녀 귀천의 차별없이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막부가 다른 종파를 금지하고 법화경 만을 신봉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야지만 국토나 민중들이 번영할 것이라는 ‘立正安國論’을 막부에 제출했다. 니치렌은 법화신앙에 입각하여 다른 종파를 철저하게 비판 했는데, 그 결과 막부나 여러 종파들의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간토지방의 무사나 상공업자들에 대한 포교를 계속하였는데, 이를 일련종 (일명 法華宗)이라고 한다.
5) 에이사이의 臨濟宗과 도겐의 曺洞宗
에이사이(榮西)와 도겐(道元)은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과 조동종을 송나라로부터 배워 전하였다. 계율과 좌선을 통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함으로써 깨우쳐야 한다는 선의 가르침은 무사들 사이에 크게 번졌다.
특히 에이사이는 송나라에 두 번이나 건너가서 선종을 배워 귀국한 뒤에,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이에. 미나모토노 사네토모. 그리고 두 쇼군의 어머니인 호조 마사코의 원조를 받아서 교토에 건인사(建仁寺), 가마쿠라에 수복사(壽福寺)를 세우고 임제종을 열었다.
에이사이는 <興禪護國論>을 저술하여 禪을 통한 호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임제종은 막부의 상층 무사나 일부 귀족들이 많이 믿었다.
이에 대하여, 도겐은 에치젠(越前)의 永平寺에서 오로지 엄격한 수행과 제자들의 양성에 주력하였는데, 그의 가르침은 점차로 지방 무사들 사이에 퍼져 갔다.
6) 신불교의 공통점
첫째, 남도(南都;奈良). 헤이안(京都)의 불교가 귀족적인 경향을 띤 것에 대한 반발로 생겨 났다.
둘째, 귀족들 만이 할 수 있었던 불경의 연구나 사원에 대한 기진(寄進) 등의 행동이 왕생이나 성불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했다.
셋째, 무사. 농민. 상공인. 여성도 출가하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왕생과 성불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넷째, 이를 위해서는 오로지 하나만 열심히 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가미카제(神風)
태평양전쟁 말기에 패배를 눈앞에 둔 일본군은 가미카제 특공대라고 하는 자살공격에 최후의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이 가미카제는 바로 고려. 몽고연합군의 일본 침공 당시에 있었던 폭풍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분에이노에키’ 즉 제1차 원정 때의 경우, 음력으로 11월 26일이므로 통상의 태풍 계절과는 일단 관계없는 폭풍우였으나, ‘고안노에키’즉 제2차 원정의 경우는 음력 8월 23일이므로 아마도 통상적인 태풍의 일종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가메야마(龜山) 上皇을 위시한 귀족들은 오로지 옛날부터 하던 대로, ‘적국이 항복할 것’을 기원하는 기도를 지방의 큰 신사와 사찰에서 행하는 데만 주력할 뿐이었다. 실제로 원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게 되자, 이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기도한 결과 폭풍우가 불어서 원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폭풍우를 ‘가미카제’로 생각하고, 또 일본은 신들이 지켜 주는 신국이라는, 소위 神國思想을 선전하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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