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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역사 부록: 이스탄불, 동서양이 공존하는 ‘거대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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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동서양이 공존하는 ‘거대한 박물관’
독특한 매력 지닌 2600년 古都, 2010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
웅장한 돔과 하늘로 우뚝솟은 첨탑… 오스만제국의 영광 한눈에
  • ◇톱카프 궁전 뒤로 터키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정궁 역할을 한 톱카프 궁전에서는 금남의 공간인 ‘하렘’과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스푼 등 오스만 왕실의 내밀하면서 화려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스탄불시 제공
    터키 이스탄불은 독특한 매력을 지닌 2600년 고도(古都)다. 제각각의 이유로 찾아온 혹은 떠나온 여행객 모두를 만족시킨다. 이는 보스포루스해협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아시아를, 서쪽으로는 유럽을 동시에 품은 이스탄불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인 듯하다.

    이스탄불은 민족을 나누고 국경을 긋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던 신화 시절부터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비잔티움), 비잔틴 제국(콘스탄티노플), 오스만 제국(이스탄불)에 이르기까지 농경과 유목 문화가 만나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하고 유럽과 아시아 제국이 패권을 다투는 인류 문명과 역사의 중심지였다.
    ◇블루모스크로 더 많이 알려진 술탄아흐멧 사원 전경

    # 터키 국민 98%가 무슬림

    ◇보스포루스해협의 서편 유럽지구 쪽에 위치한 성채 루멜리 히사르. 초기 오스만 왕국은 이곳을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했다. 이스탄불시 제공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답게 이스탄불은 각기 다른 취향과 구미를 가진 방문객을 두루 아우른다. ‘형제국’이란 말 하나 믿고 찾아든 ‘코렐리’에겐 ‘돌궐’(투르크의 음차) 이전 함께 말을 타고 초원을 내달리던 머나먼 시절의 유대감을, 세계 4대 교회 건축물 중 하나인 아야소피아를 보러온 이에겐 초기 기독교의 박애 정신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문학적 연원을 캐고 싶은 이에겐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몰락이 교차하는 주변부 소설가의 비애’를 일깨운다. 때마침 이스탄불이 2010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됐다 하니 떠남의 설렘과 기분 좋은 만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최적의 도시로 감히 이스탄불을 추천한다.

    이스탄불을 처음 찾은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돔 지붕을 얹은 수많은 이슬람 사원(자미)과 뾰족한 첨탑(미나레)이다.

    터키는 국민의 98%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 1923년 공화정이 들어선 이후 강력한 세속화 정책을 폈지만 ‘이슬람이 가득한’이란 뜻의 이 도시 주요 길목에는 여전히 소박하고 때로는 웅대한 이슬람 사원들이 위치해 있다.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신을 향해 우뚝 솟은 첨탑에선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노래인 에잔이 울려퍼진다. 개인과 정부, 술탄(오스만 제국 최고 통치자) 등 사원 건립 주체에 따라 각각 1, 2, 4개의 첨탑이 세워진다.

    # 아야소피아 성당 뛰어난 예술성

    그런데 이스탄불 구시가지 한복판에는 이례적으로 6개의 첨탑을 가진 사원과 이와 비슷한 양식과 규모로 4개의 첨탑을 가진 사원이 마주하고 있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쪽 사원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2년 “아담이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사원”을 지을 목적으로 재건해 이후 1000년간 비잔틴 제국의 종교·정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다 이후 오스만 제국 시절엔 이슬람 사원으로, 최근엔 박물관으로 변화한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거대 돔과 중간 돔, 아치형 천장, 복도 전체를 황금빛 모자이크 성화로 수놓은 규모와 화려함도 놀랍지만 노약자를 위해 계단을 없애고 성당 모든 곳에서 신의 말씀을 명쾌하게 듣도록 한 고대 기독교의 배려와 박애 정신 또한 인상적인 ‘세계문화유산’이다. 하지만 군데군데 손상된 벽화와 아야소피아 지붕을 떠받치는 8개의 기둥에 걸린 ‘알라’ ‘무하마드’ 등의 커다란 아랍 글씨는 마르마르 해변을 따라 황량하게 방치된 로마 성벽과 함께 제국의 유한함을 실감케 한다.

    아야소피아가 비잔틴 제국의 흥망성쇠를 상징한다면 서편의 술탄아흐멧 사원은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담고 있다. 아야소피아를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는 것으로 콘스탄티노플 정복의 쾌감을 만끽한 오스만 제국은 150년이 지난 뒤 성당 바로 옆에 성당의 건축 양식을 응용한 이슬람 최대 규모의 사원을 짓기로 한다. 지름 27.5m, 높이 43m에 달하는 거대 돔을 4개의 중형 돔과 30개의 소형 돔이 기둥 없이 떠받치는 이 사원은 그 엄청난 규모와 뛰어난 예술성으로 보는 이의 숨을 막히게 한다.

    ‘블루모스크’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이곳의 진가는 내부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260개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빛이 2만장의 푸른색 이즈닉타일에 반사돼 내부를 경건하게 밝히는, 신비로운 종교적 기운이 감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첨탑이 6개인 이유는 술탄이 모든 돔에 “황금(altun·알툰)을 입혀라”고 명한게 발단이 됐다. 민초의 고혈을 염려한 건축가가 황금 대신 여섯(alti·알트) 개의 첨탑을 올리는 식으로 기지를 발휘, 술탄과 민초 모두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그랜드바자르. 수많은 인파와 즐비한 가게로 길을 잃는 일이 종종 생기니 주의해야 한다.

    # 민초의 피땀으로 건설된 제국

    민심을 떠난 절대권력은 늘 쇠락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그 상징적 공간이 우리에겐 ‘하렘’(터키어로 ‘금남’, ‘성스러운’이란 뜻)으로 친숙한 톱카프 궁전과 19세기 중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지었다는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아야소피아 뒤편의 톱카프 궁전은 약 400년 동안 25명의 술탄이 거주하고 집무를 보던 오스만 제국의 정궁이었다. 역대 술탄이 사용하던 화려한 침실과 집무실은 물론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스푼과 손잡이가 세 개의 커다란 에메랄드로 장식된 단검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들어온 진귀한 보물들이 전시돼 있다. 또한 복잡하게 얽힌 복도를 따라가면서 만나는 금남의 장소와 욕실 등은 술탄의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내외부 공격을 방어하는 데 효과적으로 배치된 방과 복도, 정원 등은 화려함으로 애써 두려움을 감추려고 몸부림쳤을 술탄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궁전 북쪽 건물 일부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모습을 담은 석관을 비롯해 기원전 2000년∼서기 500년 터키 유물을 전시한 고고학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보스포루스해협 유람선 이용 시 선상에서 맨처음 만나는 돌마바흐체 궁전은 왜 제국이 몰락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모든 것이 가득한 정원’이란 뜻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궁전은 화려함과 사치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각각 6개의 발코니와 목욕탕을 짓는 데 금 14t과 은 40t이 사용됐다.

    전등 750개가 2층 홀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무게 4.5t의 초대형 샹들리에를 비롯해 36개의 샹들리에와 고급 수제 카펫, 150여개의 벽시계 등 호화스럽게 내부를 꾸몄다. 제국이 공화정으로 바뀐 뒤 프랑스로 쫓겨간 마지막 황태자는 1992년 5박 6일의 아주 짧은 고국 방문 뒤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내가, 나의 부모가, 나의 선조가 나라를 잘 다스렸다면 여러분은 그 옛날의 부귀영화를 아직도 누릴 수 있을 텐데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성당과 앞 정원. 정원을 사이에 두고 술탄아흐멧 사원이 마주하고 있다. 이스탄불시 제공

    # 사람냄새 맡으려면 시장으로

    흘러온 역사와 대면할 수 있는 유적·유물을 만나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그래도 여행의 참맛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냄새를 맡는 데 있다. 특히 투르크족은 우리처럼 먼 옛날 아시아 대초원을 내달렸던 유목민족의 후예다. 말의 어순이 같을뿐더러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여전히 남아선호 사상이 있고 자존심을 중시하는 이들은 외모만 달랐지 영락없는 한국인 기질이라는 게 일년반 전쯤 LG전자 터키 지사장으로 부임한 김창후 상무의 설명이다. 김 상무는 “정서와 문화에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 마음만 맞으면 만난 지 5분 만에 포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람 구경하고 케밥(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과 차이(터키 전통 홍차) 등 터키만의 풍경을 만끽하는 데는 시장이 최고. 블루모스크 북쪽에 자리한 그랜드 바자르(점포 4000여개)와 보스포루스해협 유람선 출발항 근처의 이집트 바자르(점포 100여개)는 꼭 한 번 들를 가치가 충분한 실내 시장이다. 온갖 카펫과 귀금속, 터키석과 같은 기념품은 물론 향신료와 로쿰(터키식 젤리), 음식재료까지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코렐리? 안녕하세요? 원빈 알아요. 싸요”라는 서툰 우리말로 호객하는 상인 목소리는 마냥 반갑다. 남대문 시장이 아닌 명동 분위기를 선호하는 이라면 신시가지 탁심광장과 이어진 이스티크랄 거리를 걸어보자.

    세계적 유명 브랜드나 골동품, 구제품을 값싸게 살 수 있는 가게들이 많고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돌체(절인 피망 등에 밥이나 고기를 넣어 먹는 음식)와 홍합 등 마르마르해에서 갓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 알코올 도수 40도가 넘는 전통주 라크도 맛볼 수 있다.

    명소는 물론 사람 구경도 지겨울 만큼 해봤다면 갈라타 타워 전망대나 피에로티 카페촌에 올라가보길 권한다. 보르포루스해협 푸른 물결 사이로 함께 아시아와 유럽, 옛것과 새것이 어지러울 정도로 혼재한 이스탄불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터키를 사랑했던 프랑스 작가 피에로티처럼 차이 한 잔 시켜놓고 이스탄불의 경건함과 오래됨, 복잡함, 시끌벅적함을 찬찬히 되짚다 보면 왜 나폴레옹이 “이스탄불은 전 세계라는 한 국가의 수도”라고 했고 파묵이 “비애의 도시”로 명명했는지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이스탄불=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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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아야소피아 성당

이곳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호칭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고, 터키 지배 때에는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성스러운 예지(叡智)’(하기아 소피아)에 바친 구당(舊堂)(325) 대신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새로운 구상으로 재건되었다. 안 길이 81m, 너비 70m의 광대한 3랑(廊) 바실리카 플랜과, 지름 약 33m의 거대한 원개(圓蓋)를 교묘히 조합시킨 절충적인 원개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본당(nave) 중앙에 4개의 대지주를 세우고 그 위에 대형 아치와 펜덴티브 구법(構法)에 의한 대원개를 덮고 있다. 동서의 긴 방향으로 가해지는 횡압(橫壓)을 대소의 반원개(半圓蓋)로 받치고, 남북 방향의 횡압은 대지벽(大支壁)(563 증설)으로 받친 매우 독창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설계자는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와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라고 하는데, 그들의 재능이 만들어낸 풍부한 내부 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보고 헌당식(獻堂式)에 참석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감격하여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 이겼노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헌당 당시, 당내에 빛나고 있었을 6세기의 모자이크는 8∼9세기의 아이코노클래즘(성상 파괴운동) 때에 없어지고, 그 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15세기 이후, 이슬람교 투르크의 점거하에 거의 없어졌으나, 근년의 조사에 의하여 앞방[前室]과 2층 복도의 벽면에서, 석회칠 속에 그려져 있던 9∼13세기의 모자이크의 일부가 발견되어, 그 고도의 기술과 뛰어난 표현이 주목을 끌고 있다. 당내에는 대소의 주두(柱頭) 조각으로 대표되는 비잔틴의 세련된 장식 조각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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