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14. 조큐의 난과 싯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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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14. 조큐의 난과 싯겐정치
1] 시대개관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사망한 뒤, 유력한 무사들 사이에는 막부의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투쟁이 계속되어 많은 유력한 무사들이 몰락 하였다. 그리고 겐지 쇼군의 적통을 계승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두 아들도 암살 당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세력을 증대시켜온 것이 바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처가인 호조씨(北條氏) 일족인데, 이들은 싯겐(執權)으로서 막부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막부의 내분을 알게 된 교토의 고토바(後鳥羽)上皇은, 서쪽 지방의 무사와 대사원의 승병, 호조씨의 세력 강화에 반발하고 있던 동부 일본의 무사세력들의 결집에 성공한 막부군에 대패하게 되고, 3명의 上皇들은 외딴 섬으로 유배 당하고 천황은 쫓겨나는 참담한 결과로 끝나고 말았으니, 이것이 곧 ‘조큐(承久)의 난’이다.
난이 평정된 다음에 막부는 교토에 ‘로구하라탄다이(六波羅探題)’를 설치하여 조정을 감시하고 서일본의 무사들을 통제하게 된다. 그리고 조정편에 가담한 귀족과 무사들의 영지 3천여 개소를 몰수해 새로이 지토를 설치하였다. 이렇게 하여 서부 일본에서도 막부의 세력이 퍼지게 된 것이다. 이후 막부 정치는 싯겐 호조씨의 주도하에 발전하게 된다.
2] 호조씨와 싯켄, 조큐의 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사후 막부의 실권은 요리토모의 처인 호조 마사코와 장인인 호조 도키마사가 장악하였다. 호조씨는 유력 고케닌과 손을 잡고 쇼군의 힘을 빼앗음과 동시에 싯겐이라는 지위에 앉아 이를 독점하였다. 한편 교토에서는 고토바 上皇이 원정을 행하며 조정의 세력을 회복하고자 꾀하였다.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살해되고 겐지의 쇼군이 3대에서 끊기자, 고토바 상황은 1221년 싯겐 호조 요시토키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전국에 내렸다. 그러나 고토바 상황은 막부군에 패배하고 오키에 유배되었다. 이를 ‘조큐의 난’이라 한다. 이후 막부는 교토에 로쿠하라탄다이를 설치하여 조정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였다. 또 상황 측에 가담했던 귀족 및 무사의 영지를 몰수하여 이를 고케닌에 나누어주고 막부의 지배력을 강화해 갔다.
3] 지토와 장원
가마쿠라 시대의 무사들의 대부분은 장원이나 국아령의 농촌에 거주하면서 지토나 장관직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집 주위에 호를 파거나 흙으로 벽을 쌓았고, 문 위에는 초소를 설치하고 방패나 화살을 준비하여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무사의 일족은 조상 대대로 전래되어온 소령을 지키고 일족을 강력하게 통솔하기 위하여, 종가의 적자를 소료로 섬기고 일족은 그의 통제에 따랐다. 소령은 분할 상속되어져 여자에게도 상속되었다.
한편 가마쿠라 시대의 장원은 토지 지배의 면에서 크게 변화했다. 그것은 장원 속에 장원영주가 임명한 장관 외에 막부가 임명한 지토가 설치되어 이른바 이원적인 지배구조를 지니게 된 것이다. 지토는 막부의 권위를 배경으로 장원영주인 공가. 사사에 반항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리하여 가마쿠라기의 장원에서는 영주측과 지토측의 토지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이 점차로 심각해졌다. 이러한 지토의 장원침략은 ‘조큐의 난’이후 특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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