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12. 원정과 중세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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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12. 원정과 중세의 개막
1] 시대개관
헤이안 시대 후기 약 100년간의 특징은, 종전까지의 섭관정치와 달리 천황의 아버지인 상황이 실권을 장악하는 원정이 시작된 점에 있다. 섭관정치는 천황의 외가인 후지와라씨의 유력자가 섭정 또는 관백의 자격으로 정치실권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원정이 시작되자 천황의 외가에서 친가로 권력이 이동하였다.
무력행사를 특기로 하는 무사가 사회의 표면에 나타나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을 이 시대에 일어났던 큰 변화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다. ‘전구년. 후삼년의 역’ 등 지방사회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무사의 활동은 이윽고 수도인 교토로 파급되어 원이나 천황, 후지와라씨 섭관 가문의 내부 대립과 분쟁도 무사의 무력에 의해 결착을 보게 된다. 바로 ‘호겐. 헤이지의 난’이 그것이다.
그 결과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를 리더로 하는 헤이씨 일문이, 조정에서 세력을 떨쳐 무사집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 헤이씨는 기나이(畿內). 사이고쿠(西國) 지방의 무사단을 조직해 세토 內海. 북규슈에서 중국으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루트를 지배, 일.송무역을 발전시킨 점에 특색이 있었다. 무사가 정치의 표면에 등장했을 뿐아니라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이다.
2] 원정과 불교
원정의 上皇들은 모두 불교 신봉자였다. 대표적인 예로 시라카와 상황을 들 수 있는데, 1096년에 출가하여 법황이 되었다. 그는 교토에 法勝寺. 尊勝寺와 같은 사찰을, 그리고 고시라카와 법황은 교토에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를 건립했다. 특히 상황들이 열중한 것은 구마노 지방에 있는 신사로 참배하는 구마노모데(熊野詣)였다. 이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였으므로 막대한 비용이 들었는데, 그 비용을 부담한 것이 바로 지방의 국사들이었다.
이러한 상황들의 불교 신봉은 원정기에 들어와 사원세력이 더욱 커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사원세력은 조정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곧잘 교토로 몰려와 시위를 하였다. 즉 무장한 승려와 신도들이 2천~3천명씩 몰려와 시위를 하였다. 특히 유명한 것이 히에이산(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와 나라고후쿠지(興福寺)의 승병들이었다. 이들의 횡포에는 당시의 전제군주인 上皇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였다.
3] 호겐. 헤이지의 난
헤이안 시대 후기에 들어와 남도북령을 중심으로 한 승병들의 시위가 빈발하게 되자, 원은 무사단을 이끌고 있던 세이와 겐지와 간무 헤이시 세력을 이용하게 되었으며, 1156년에는 천황가및 섭관가 내분에 무사세력의 힘을 빌어 해결하기에 이르는데, 이를 ‘호겐(保元)의 난’이라 한다.
호겐의 난 이후 겐지 무사단의 수장인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대립이 표면화 되어 1159년 ‘헤이지(平治)의 난’이 일어났으며, 여기서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미나모토노 요시모토를 진압하고 헤이시 정권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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